20/09/09
아마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알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전까지는 프로이트 이후로 정신분석학의 발전이 답보 상태에 놓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추가적인 계파를 통해 많은 이론적, 그리고 기법의 측면에서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빅터 프랭클 외에도 다니엘 카네만, 조너선 화이트 등이 거론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빅터 프랭클은 로고테라피라는 기법을 고안해낸 것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는데, ‘의미'라는 그리스어인 로고에서 알 수 있듯,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춰서 혼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신치료기법이다.
꿈을 통해 발현하는 욕망을 정제하여 본 뜻을 알아낸 후 이를 정신분석에 활용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기법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여기의 계보를 잇는 정신분석 계통의 최신 기법을 다룰 것으로 기대하고 그의 저서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가 겪었던 홀로코스트 당대의 기록으로 시작된다. 난데없이 끌려가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와중에 곁의 한 두사람이 지쳐 쓰러지고 죽어가는 등 각박한 상황이 굉장히 덤덤하게 적혀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본인의 의지대로 삶을 이어나간 그의 자취가 보인다.
그리고 로고테라피를 소개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서두부터 빅터 프랭클은 로고테라피를 정신 분석기법이라기보다는 정신 치료기법으로 불리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드, 이고, 슈퍼이고가 이루는 정신세계나, 욕망이 꿈에서 발현하는 방식 등 정신분석의 구성면에서 새로운 관점을 기대하고 읽은 건데 온통 내용이 상투적으로 삶의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아쉬웠다.
읽기를 마치고서 큰 감상을 느끼지 못하다가 우연히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이병철씨의 인생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그가 남긴 다음의 말을 접하고는 마음속으로 느껴지는 바가 있어 책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이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에 있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다.’
말을 남긴 사람의 배경을 지우더라도 저 문장과, 그리고 말년에 그가 천주교 신부에게 질의했다는 삶과 종교에 대한 그의 질문(질문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가 나름대로 내린 삶에 대한 결론으로 읽힌다.) 들을 보고 있자니 삶의 의미를 명확히 인식하고 삶을 살아온 사람의 자부심이 담긴 문장에서도, 삶의 깊은 통찰에서도, 그리고 그 결과물에서도 참 멋진 인생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관념적으로 주어진 목표가 있었던 시절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뭔가 항상 조바심같은 불안 초조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침마다 이걸 느끼는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이제 더이상 외부로부터 요구받는 인위적 목표가 없는 지금은 이따금씩 과거의 두근거림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과연 책을 읽고서 그 떄를 떠올려보니,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고 현재의 나를 이루어내기도 했구나 싶다.
지금의 내가 가끔씩 허전함을 느끼고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을 느끼는 이유에 대한 대답을 우연히 얻을 수 있었다. 옅게 유지하고 있는 목표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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