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9
잊고 지냈던 까뮈의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내게 이방인은 마치 흑산도산 홍어를 씹으면 씹을수록 계속해서 더 짙은 자극이 느껴지는 것처럼 항상 다시 볼 때마다 그 전에는 눈길을 두지 못한 장치나 표현법 등을 항상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중간에 지나는 사건도 많도 장치들도 많아 굉장히 복잡하지만 작품 전반에 거쳐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여 다른 것들에게 방해받지 않는, 밸런스가 완벽한 예술로 나는 꼽는다.
이번에는 작품 해설에 더 관심을 두고 보았다.
의미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구조적으로 소설 1부와 2부가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대칭형 구조를 지녔다는 것도 덕분에 짚어볼 수 있었고, 까뮈가 생전 이방인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들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카뮈는 노벨상을 받으면서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나는 처음 시작 때부터 내 작품 세계의 정확한 계획을 세워 가지고 있었다. 나는 우선 부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세 가지 형식으로. 그것이 소설로는 이방인, 극으로는 칼리굴라와 오해, 사상적으로는 시지프 신화였다. 나는 또 세가지 형식으로 긍정을 표현하기로 예정하고 있었다. 소설로는 페스트, 극으로는 계엄령, 정의의 사람들,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반항하는 인간이 그것이었다.’
까뮈를 떠올리면 부조리, 죽음 등 인생에서 씁쓸한 부분에 관한 내용만을 떠올렸는데, 긍정에 관한 작품도 남겼다는 사실을 새로 접했다.
주인공 뫼르소는 보통의 사람과 굉장히 동떨어져 있다. 늘상 사회적으로 봤을 때 특정 상황에서 남들이 무언가를 느껴야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어머니의 죽음에서도, 어머니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강도살해를 한 후 나중에 알아차려 목을 맨 비화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형 집행날 당일도 그는 일반적으로 기대하기 힘든 엉뚱한 곳에 시선과 생각이 닿아있다.
비록 살인사건으로 인해 사형을 받는 것이지만, 판결 결과에는 사회의 틀 안에서 공감대를 받지 못했다는, 대다수와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점도 죄목으로서 상당한 비중이 있다.
굉장히 극적으로 표현해두었지만 사회적으로 돌아봄직한 생각에 대해 접근할 수 있도록 카뮈는 유도를 잘 해두었다.
뫼르소는 거의 매 순간 비주류였으나, 순간순간 찰나로 자르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일상 모습과 닮은 것들을 많이 발견한다.
우리는 대체로 주류이나 이따금씩 비주류일 때가 있다.
이 순간은 내 주관이 굉장히 강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순간은 각자에 있어서 본인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사회의 객체로서의 굉장히 소중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다양한 반짝거리는 보석이 모여 이루는 합성색이 바로 사회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한 색이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전체는 결코 한 색이 아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뫼르소를 비단 살인을 저지르고, 어머니를 외면하는 몰상식한 사람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우리를 비추는 거울로서, 우리를 돌아보아야 하고, 주변에서 이제껏 보았던 다른 뫼르소들의 사정을 한번쯤 생각해보았어야 하지 않나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책갈피
—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에 비긴다면 어쩌면 생활의 안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결정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불확실과 가난 속에서 남아 있는 것을 선택한다.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삶의 절망적이고 부조리한 면을 의식할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시지프 신화는 이 질문에 대답하려는 시도이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곧 철학의 근본 문제에 대답하는 것이다. 그 나머지의 것, 세계가 세 개의 차원을 가지고 있는가, 정신이 아홉 아니면 열 두 개의 범주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다음의 일이다. 그것은 장난이다. 먼저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지프의 신화 중에서)
—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엥케이리디온 - 에픽테토스 (0) | 2020.11.11 |
---|---|
결 : 거침에 대하여 - 홍세화 (0) | 2020.11.11 |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0) | 2020.11.11 |
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0) | 2020.11.11 |
이 망할놈의 현대미술 - 조영남 (0) | 2020.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