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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기

한국 미술의 어제와 오늘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1/07/31


덕수궁관에서 미술과 문화재의 연관성을 조명하는 전시가 진행중입니다. 서로 영향주고 영향받는 모습을 4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하는데,
궁극적으로 둘의 비교를 통해 공통적으로 담긴 한국의 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려는 의도가 담긴듯 합니다.

야외활동이 제한받는 까닭에 미술관이 예전보다 훨씬 더 붐비는 것을 느껴요. 덕수궁관은 위치 덕분인지 평소에도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었는데, 작년부터는 주말에 가려면 거의 한달 전부터 예약해야 겨우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좀 더 진지하게 볼 수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우연히 예약 사이트를 살펴보다가 때마침 나온 취소표를 운 좋게 얻어 다녀왔습니다.

보통 예술품에는 메시지가 담기는데 이걸 민족의 갈래로 묶고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아마도 같은 뿌리에 근원이 닿겠지요? 저도 이번 기회 덕분에 공통적으로 모두가 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근대부터 현대에까지 이르는 미술품과 그 근원이 닿아있는 문화재를 함께 묶어서 전시하고 있는데 덕분에 김환기 작가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 패턴의 근원이 되는 특이한 패턴을 가진 도자기도 보았고, 일월오봉도의 단색 조합에 영향받은 미술 작품이 그 단색 조합을 어떻게 표현해냈는지도 소개받았습니다.
이중섭씨의 작품과 불상, 자기간의 연관성을 살펴볼 기회도 있었는데 글쎄, 아쉽게도 둥굴둥글한 부분 외에는 딱히 무언가를 느끼진 못했습니다.


주제 1. (성) 성스럽고 숭고하다

1관에는 종교적 성스러움, 숭고한 가치, 이상주의 등을 담으려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창조론을 믿지 않아서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절대자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에서 비롯되어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대략적으로 그들의 감성을 어느정도 헤아려보기도 합니다.
그 전까지 대위법이 영 거슬려서 전혀 듣지 않다가 최근들어 바흐의 작품들을 하나 둘 듣기 시작했어요.
특히 BWV 847, 1007, 1043, 1065에서는 절대자의 도움을 받아 올바른 방식으로 자신이 갈 길을 진지하게 걸어가려는 듯한 엄숙한 자세등을 엿보기도 하고,
슈베르트 D.839에서 느껴지는 절대자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이에 호응하기 위해 죽기 전까지 인생을 통틀어 인생 목표를 완성짓겠다는 다짐 등에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공통적으로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숭고한 절대적 선을 의식하고 있음을 표현하려는 듯한 자세들. 이번 주제에서는 예술품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 고분의 현무도를 재해석한 작품을 먼저 소개받았습니다.
배경이 주황색인 데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있을까요?



김환기 작가님의 우주 시리즈를 보면 전 도자기 안에 누워서 둥그런 주둥이와 그 끝에 다다르는 하늘을 보는 구도를 상상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둥근 모습에서 떠올린 것도 있지만 아마 작가님 에세이를 통해 한국의 고유한 것을 소재로 삼기 위해 항아리를 많이 등장시켰다는 걸 소개받았기 때문일거에요. 그렇지만 저 무수한 점의 패턴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지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유사한 패턴을 가진 문화재를 함께 소개받은 덕분에 드디어 출처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저 무수한 점들이 모여 하나의 규칙을 이루는 김환기 작가님의 작품에서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개인이 각자의 고유한 특성을 잘 간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읽습니다.



궁궐에서 자주 보는 일월오봉도가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기둥이나 의자에 전혀 가려지지 않고 온전히 소개된 그림은 처음 보는거라서 오랫동안 구석구석 뜯어보았어요.
세밀하게 표현된 파도의 포말과 소나무 줄기에 피어있는 송진일까요? 그리고 푸른 바위테와 녹음. 이제 보니 파도는 청록색을 띄고 있었네요.

사용된 색의 수는 굉장히 적지만,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그 덕분에 위엄있고 웅장한 모습에 더욱 집중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최근의 추세를 보면 모든 기업이나 기관의 로고가 단순화되기 시작했더군요. 구글 크롬등의 IT 기업도, BMW 등의 자동차 기업들도 모두 로고를 단순화하고 무엇보다 음영조차 모두 날리고 단색만을 이용해서 새롭게 꾸몄는데, 신기했던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초라해보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미 널리 알려진 상징이기에 그전까지는 알려지는 과정에서 크게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눈에 띄는 반면 이제는 굳이 그렇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그런 명성을 얻은 뒤라서가 아닐까 해요. 비슷한 이치가 이 일월오봉도에 담겨있어서, 제가 상징을 의식하고 있기에 제 머릿속에서 자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을 추가해서 바라보는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에 소개된 부직포 위의 패턴 작품은 굉장히 친숙했는데, 아마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갈색과 노랑, 청색 등의 색조합에서 기인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한참 생각해보다가 얻은 결론이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청색에 담는 푸른색들이 서로 닮아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 생각인데 아마 초록색 파란색 모두 초반에는 파란색으로 덮었다가 나중 되어서 일부만 노란색을 덧발라 초록색으로 변환한게 아닐까 해요. 따뜻한 노랑을 매개체로 이어지는 두 색.





기와집의 형상을 곡선, 직선만을 이용해서 표현한 작품과 화려한 단청을 가진 기와집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미술품에서 주황색이 담는 의미와, 둥근 처마 밑의 공간에 담긴 의미를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눈이 아파서 오래 볼 수 없었습니다.


1관에는 불상 또한 굉장히 많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지금은 가까이서 볼 수 없는 석굴암 내부의 모습도 사진으로 자세히 비추고 있었구요. 둥굴둥굴한 표면, 알 듯 말듯 한 표정, 거친 표면 등등을 보노라니 작년즈음 그리스 보물전에서 보았던 세상 세밀한 조각상들이 떠올랐습니다. 사실주의적 특성 하나만으로 최근까지도 서양 작품들을 우리나라의 느슨한 정밀도를 지닌 유물들보다 은연중에 상대적으로 더 높게 평가해왔었거든요.
최근에는 거꾸로 눈으로 보이는 것들은 사실 빛의 장난일 뿐 실제로는 허구의 색상에 허구의 표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인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담겨있는 본질들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인지 관점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취향이 바뀌고 나서 제일 먼저 다시 보게 된 것들이 불상과 자기, 그리고 2관 '아'에서 볼 법한 어딘가 명쾌하지 못한 작품들이었어요.
무언가 명확하지 않은 틈새 하나로 상상을 해볼 수 있는, 그래서 작가의 수수께끼를 맞춰보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가끔씩 만나는 정답과 조우했을 때 느끼는 반가움을 얻는 재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반에는 외부적 특성에 주로 관심을 두다가 점차 내면으로 시선을 쏟게 되는 흐름은 누구나 성장하면서 겪는 변화겠지요?




주제 2. (아)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

이 다음의 주제인 속과 정 반대편에 있는 주제로 순수함, 무 등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아' 라는 주제 소개를 보면서 백자를 떠올렸는데 역시 굉장히 많은 수의 조선 자기들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언젠가 고려청자보다 조선 백자를 더 높이 평가하는 분들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는데, 청자와 같이 색을 입히는 것보다 자연에서 잡티 없이 순백의 하얀 자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높은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라 하시더군요. 그 기억을 두고 자기들을 보니 담겨있는 의미가 어느정도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윤형근 화백의 청다색이라는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청다색을 내기 위해 노력한 과정이 그림에 잘 담겨있는 느낌과 보일 듯 말듯한 은은한 청색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주제 3. (속)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다.

주제 4. (화) 조화로움으로 통일에 이르다.



‘속’ 에서는 이전 주제와 정반대되는 소재로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의 사회 풍습이나 세태를 가득 담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고, ‘화’에서 만난 작품들은 문화재와 미술품의 간격이 많이 좁아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만 1, 2주제를 너무 오래 본 탓에 깊이 볼 수 없었습니다.

나전칠기를 이용한 그림, 풍속도에 나온 당대 사람들의 활동모습, 의복 모습, 공예품 등을 만났습니다.




문화재를 미술품으로 최근부터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마냥 거리감을 두던 것들도 이 관점으로 보니 다르게 보이기도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더라구요.
장흥의 보림사 철불이 그러했습니다. 확인된 제작 연대가 870년 정도로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절의 유물이었습니다. 보림사에 가면 이 철불을 코 앞에 두고 바라볼 수 있어요. 문화재라는 인식을 지우고 다시 바라보면 어느 순간 지난 1100여년간 저와 같은 위치에 서서 이 철불을 마주보았을 신라대부터 고려대, 조선시대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듯한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철불의 손짓, 눈매, 머리모양, 앉은 자세 등에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 시대상, 그 시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던 권위적인 모습, 아름다움 등을 유추해볼 수 있지요.

문화재와 미술품을 동일선상에 올려두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하는 멋진 취지의 전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문화재의 영향을 받은 미술품을 보다가 거꾸로인 경우는 없을까 궁금증이 생겼는데, 어느정도 최근에 제작된 미술품중에 문화재로 등록된 사례가 있는지도 궁금해져서 알아보는 중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문화재라고 해서 굳이 국보나 보물로 등록된 경우 중에서만 찾으라는 법은 없겠어요. 마침 번호체계도 다 지우고 있는걸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세번째 주제 속에서 바라보았던 풍속도나, 공예품 등을 미술품이 문화(재)에 영향을 미친, 그러니깐 당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던 양식들이 실생활에 적용된 사례를 제가 궁금해했던 것에 대한 답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