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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기

LIFE : The Last Print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1/07/25

라이프 사진전 : 더 라스트 프린트 /
LIFE : The Last Print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에칭이나 사진을 오롯이 예술의 한 갈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는 대량생산적 특성을 지우지 못하고 자꾸 함께 보는 것도 한 몫 하는 듯하다.

악기 연습 스터디의 어느 분께서 먼저 다녀오시고는 음악과 관련된 사진만 추려 소개해주셨는데 그 중 하나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지라 급작스럽게 관심갖게 되었다.


사진에는 비스듬하게 솟은 거대한 단층을 병풍삼아 건설한 Red Rock Amphitheatre 라는 공연장을 배경으로 스트라빈스키 부자가 함께 담겨있었다.

유명한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집안은 3대가 모두 음악가이다. 둘째 아들은 유명한 피아니스트, 그리고 이고르의 아버지도 굉장히 유명한 오페라 극작가였다고 한다.

아들 스트라빈스키는 무대 리허설 중이고, 아버지 스트라빈스키는 그 높고 거대한 청중석 맨 꼭대기에 멀찌감치 앉아 아들의 연주를 바라보고 있다.

개미같이 보일 정도로 끝이 아득한 맨 꼭대기의 아버지. 그로부터 흘러나와 밑에서 무대에 닿는 거대한 암석층 그리고 맨 밑에서 피아노를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중인 아들.
구도에서 피아니스트 스트라빈스키가 느꼈을 헤리티지와 함께 선대를 이어서 예술혼을 태우는 상황 속 중압감 등 긍정과 부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이 부자의 배경 설명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청중석 옆으로 비스듬하게 솟은채 무게를 아래로 흘려보내는 암반은 위압감과 무게를 뿜어내고 있었고
작고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찍힌 맨 꼭대기의 하얀 점은 세상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절대적 권위를 보여주는 듯했다. 거기에 더해 암반의 방향은 피아노 리드의 방향과 암반의 방향도 일치했다. 음악이라고 적힌 단어 표시가 바위에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구도며 흑백의 농한 밀도며 상징을 가지는 대상이며 모든게 완벽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멋진 사진이었다. 멋진 예술이었다.

문득 다른 작품들도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주말에 얼른 다녀왔다.

마침 지난주에 방문했던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도 만났던 LIFE 라는 사진잡지에 올랐던 사진 작품들을 모아서 전시를 진행중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 처럼 '짧고, 덧없고, 위협받는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다'라는 모토로 사진을 싣는다고 한다.

이번 전시의 취지 역시 메마른 순간이나 기계적인 삶이 아닌 다층적이고 개인적인 삶, 시대의 모습을 웅변으로 증명하려고 했다고 한다. 과연 사진들 속 유명인사들은 모두 평소 그들을 감싸는 명성이라는 아우라는 벗어던지고 개인 자체로서 나타나 있었다. 우리가 못 보았던 이면의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크게 5가지 부분에서 느낀 바가 있어 남겨왔다.

1. 영상매체가 등장했음에도 사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존재의의에 대해

어떤 가면극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이 초반부에 소개되었다. 나래이션은 만약 이 찰나를 사진이 아닌 동영상으로 촬영했더라면 어땠을지를 물었다.
아마 저 다양한 반응 속 표정 중 가장 자극적이거나 비중이 큰 한 두구석만을 흘끗 보고 흘려보냈을 것이다.
사진이라서야 우리는 가운데 아이, 얼굴 큰 아이의 표정을 지나 그 뒤로 펼쳐진 입막은 아이, 멀어서 입만 본 아이들의 표정에까지 시선이 닿는 것이다.
영상매체와 사진 매체의 용량 비교는 불가할 정도로 영상에 우위가 있다. 하지만 인간이 시간당 받아들이는 용량은 제한적이므로(입이 작아 한 입에 초밥 하나만 먹는 것처럼) + 한 찰나에 집중하여 모든걸 바라볼 수 있다는 점으로 사진은 영상매체가 등장했음에도 존재의의를 가지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마치 UHD 화질이나 3D, 4D 180D 영화가 나와도 상상의 영역을 담는 건 다른 영역의 일이기에 애니메이션이 존속하는 것과 같다.



2. 흑백 사진의 표현력

대부분의 작품이 흑백이었고 극히 일부는 컬러였다. 대상의 절대적 이미지야 당연히 컬러에 고화질일수록 생생한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단순히 이미지가 아닌 장면을 담는데에는 (이미지 + 감성 + 스토리 등등) 오히려 흑백이 더 몰입력 있고 완성도가 높다고 느꼈다.
흑이 주인공이 되어 백이 감싸는 경우도, 거꾸로 빈 공간이 주인공이 되고 흑이 주변을 감싸는 경우도 모두 색감의 풍부함에 관계 없이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배경으로 사용되는 저 검정 부분이나 흰 부분을 모두 걷어내고 주제만 남겨두면 어떨까를 상상해보았는데 분명 빈 공간을 지운 것 같은데도 결과는 형편없어졌다.



3. 주제를 품는 데 있어서 구도의 역할

승자와 패자를 비추는 데 있어서 각자가 처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방법 중에 구도를 통해 대상의 작품 속 비중을 조정할 수도 있다.
나래이션에서는 승자 vs 패자의 관점 외에 사회 vs 사회의 편견에 맞서 싸우려 숱하게 노력했지만 결국 현실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한 사내의 관점도 소개해주었는데 듣고 다시 보니 정 반대의 이미지로 느껴진다. 두 관점 모두 잘 느낄 수 있었던 데에는 구도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 생각한다.



4. 단편소설과의 접점

행군중인 이 부대는 무동력 글라이더를 통해 적진 깊숙히 침투하는 글라이더 공수부대원들이라고 한다. 보직 특성상 강하작전 후 생존율이 굉장히 낮은 편이다. 사진에 담긴 부대원 중 그 누구도 이 다음 순간 중 얼마만큼을 더 존속할 수 있을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행진 와중 일순간 맞은 편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성조기가 드러나는데 이는 그들의 운명을 상징한다.

최근에 접했던 단편소설들이 이 장면에서 문득 떠올랐다. '슬픔', '착잡', 어수선한 분위기 등의 관념을 이번에 접했던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돌리고 함축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럼으로서 훨씬 우아하고 전달도 훨씬 가슴에 잘 와 닿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행진의 순간 중 열의 빈 공간으로 건너편의 성조기가 나부끼는데 그 대상이 구도의 한 가운데에서 군인들의 알 수 없는 운명을 말하고 있다. 사진의 용량은 이제까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컸다.


소설, 에세이, 문학 작품을 볼 때 이따금 문장의 내용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더라도 무언가 미묘한 갈림길 여럿을 지레짐작으로 선택해서 도착한 골목의 끝에서 느끼는 짜릿함이 있다. 작가와 감상자의 시선이 완벽히 일치하는 순간. 서로 같은 서정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 때는 글의 표현에 상관없는 찡한 교감을 느낄 수 있다. 굉장히 아름다운 순간.
이 느낌을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이 사진에서 느꼈다. 고인이 작고하기 전날 밤까지 음악으로 교류하던 가까운 친구가 그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슬픔. 상실이 오롯이 느껴져서 보는 순간 나도 동할 뻔했다.



5. 일부 작품에서 느낀 종속적 속성(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한)

혹자에게는 단순한 영감님 사진일 수도 있다.
둘은 각각 유명한 소설가 로버트 프로스트 / 화가 에드워드 호퍼 이다.

각자의 작품 속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분위기가 가득 담겨있게끔 찍힌 사진이라고 한다. 작가가 누군지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사족이 필요한 종속적인 작품같다고 느꼈다.

다만, 처음에는 주인공의 분위기를 함께 담도록 작가가 구도며 기획에 공을 많이 들였겠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쓰면서 생각해보니 저 정도 연륜과 명성에 다다른 사람들은 굳이 인위적으로 꾸미려들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그들의 작품 속 이미지가 절로 풍기겠다 싶었다.



그 외에..

+ 현대미술을 뛰어넘을 정도로 물리적 작업이라는 중간절차가 생략된 효율적인 예술의 갈래라는 관점을 얻었다.
물론 효율이라고 칭한 건 물리적 작업에만 해당된다.
구도며 기다리는 시간이며 기획하는 노력은 여타 장르와 견줄 수 있을 것이다.

+ 대량생산적인 특성을 지우고 드디어 사진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비록 뒷면 어딘가에는 코닥 마크가 붙었을 지라도,
작가가 직접 땀흘려 만들어낸 게 아닌 숱하게 찍혀서 세상에 번져나갔을 지라도
그 화면 안에 담긴 내용에는 깊은 뜻이 절묘한 구성으로 함축된 채 가득했다.


어느 예술이라도 실체와 본질로 양분하여 둘의 가치를 비교해본다면 당연히 후자 쪽으로 저울이 기울어질 것이다. 사진에서 풍겨져 나온 인상 외에도 설명에서 얻은 소개에서도 진득하게 멋진 사실들, 표현들을 많이 얻기도 했다.

사진에 대해 으레 낮게 바라보아왔던 것은 요란하게 찍어봐야 결국 통용되는 구도며 대상을 공장빵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일부의 풍토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녀온 후 얻은 사색이며 감상 덕분에 내가 바라보았던 사진 장르에 대한 초점이 굉장히 좁았다고 느꼈다. 아름다운 것들을 너무 많이 보고 와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되뇌이게 된다.


담아온 글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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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진지한 태도로 꽃을 보지 않는다. 꽃은 너무 작아서 보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현대인은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을 거대하게 그리면 사람들은 그 크기에 놀라 천천히 그리고 진지하게 보게 된다.

조지아 오키프
-> 큰 캔버스에 담긴 작품들이 많은 이유에 대해 뜻밖의 장소에서 납득되는 답을 얻었다.



1940년대 이르러 사람들은 그의 명성은 이해하기를 바랄 수도 없는 이론으로 우주를 만들어 낸 사람이 아니라 인간 정신과 인류의 가장 높은 높은 포부를 상징하는 세계시민으로서 인식했다. ' 성스러운' 고결한, 그리고 사랑스러운 같은 친근한 단어가 그를 묘사하는데 쓰였지만 정작 본인은 '나는 개인적인 사람이지 공동체를 위한 사람이 아니었다. 국가나 지역, 친구들, 심지어 내 가족에게도 진심정으로 속한 적은 없었다.' 라는 글을 남길 정도로 인간 존재의 독립성과 그에 따르는 자유와 고독에 대해 깊이 천착했다.
- 아인슈타인 -



누가 이 백신의 특허를 가지고 있나요? 글쎼요 여러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특허는 없습니다. 누가 태양에도 특허를 낼 수 있나요?
- 조너스 소크 박사 -



To see life:
to see the world:
to eye-witness great events:
to watch the faces of the poor and the gestures of the proud:
to see strange things - machines, armies, multitudes, shadows in the jungle and on the moon:
to see man’s work - his paintings, towers and discoveries:
to see things thousands of miles away, things hidden behind walls and within rooms,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he women than men love and many children:
to see and to take pleasure in seeing:
to see and be amazed:
to see and be instructed...

- Henry Luce-
Publisher of time, fortune and life magazine.



우리는 이 두 개의 전쟁에서 취재한 사진을 무시하거나 없애버릴 수 없다.
그것들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서 편집자의 방침이나 독자의 결백성보다 무거운 권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 사진들을 제한된 지면에 보다 사실에 가깝게 보일 수 있도록 선택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못된다.
중요한 것은 전쟁이 일어날 때 사물이나 인간들이 파괴되고 죽는다는 사실이다.
가장 뛰어난 사진도 전쟁이 만들어내는 무서움과 추악함을 모두 표현할 순 없다.
피, 육체, 폭력, 파괴의 일부는 보여줄 수 있지만 인간을 죽이겠다는 의지, 아니 그것보다는 어떻게 하든지 살아남아야 겠다는 격려한 의지, 길고 외로운 아픔, 전쟁을 통해서 흐르고 있는 인간의 비통한 감정 같은 것은 기록될 수 없다.
어떤 뛰어난 전생 사진도 병사들이 질러대는 고통과 죽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염원했던 생의 의지를 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은 전쟁의 공포를 딛고 있을 때의 사회적인 이이과 인간이 누리는 행복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또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의 모습과 그 이유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면 죽은 사람은 죽었어도 결코 죽지 못하는 것이다.

- 잔인한 보도사진에 대한 독자의 불만이 빗발치자 편집부에서 낸 입장문 -
(결연한 취지, 곧은 사상, 단호한 문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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