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6
길 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가장 유명한 화가(좋아하는 화가 말고)를 물어본다면 아마 상당수의 사람이 피카소를 꼽지 않을까?
그의 작품을 직접 보는 경우는 흔치 않기에 +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없었지만 유명하다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갖고서 예매를 한 것 같다. 보통은 관심이 있는 방식이라던가 취지에만 반응알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포장지에만 사실상 모든 초점을 맞추고 방문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 출발하면서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 것은 이 때문인 듯하다. 큐비즘의 창시자라는 점 외에 달리 아는 바가 없었기에 한가람 미술관에 도착하기 전 이전 기록을 뒤져보면서 피카소에 대한 배경 지식을 최대한 찾아보았다. 몇 번 스쳤던 기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즈음 김환기씨의 에세이를 읽고 있었는데 그의 피카소에 대한 우상같은 존경심과 함께 그의 존재에 대한 의의를 소개받았다. 현대미술의 선구자. 각 계파를 만들어내고 후대에게 씨앗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했다. 거기에 더해서 전시관 입구의 설명을 통해 고전주의와 아방가르드가 만나는 혼란기에서 둘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 사람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이고서 전시 관람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베토벤과 역할이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다리 역할을 한 베토벤과 고전주의(인상주의)와 아방가르드 사이에서 교두보 역할을 한 피카소.
전시에서는 그의 입체파 적인 작품을 많이 접했다. 에칭 작품도 많이 보였고, 그 전에는 접한 적 없던 도자기를 이용한 작품들도 많이 소개받았다. 다만 작품을 묶은 주제별 구성과 순서가 약간 모호했다. 시대별로 흐름을 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따로 놀고 있었다. 예전 모네에서 세잔까지 전시에서 보았던 중간화석 같은 시점별 과도기적 작품이나, 연대별로의 설명을 소개받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런 게 없어서 아쉬웠다.
입체적인 작품에서 요소 별 의미를 상상하거나, 색깔이 상징하는 내용 등을 짚어보는 재미가 좋았다. 물론 나만의 답까지 찾고 돌아왔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진 못했고 오히려 막판의 작품은 일행이 기다리던 까닭에 전부 감상하지 못하고 나왔다. 하지만 다시 가서 볼 만큼 아쉽지는 않다.
다양한 시도를 했던 사람. 그리고 의미 없이 휘갈겨둔 것처럼 보이는 구성 요소들이 사실은 치밀한 기획으로 가득차 있는, 그런 북적북적한 요소가 가득 담기게끔 구성할 줄 아는 천재성을 지닌 사람 정도를 전시를 통해 느끼고 돌아왔다.
미술관에서 적어온 메모들
그의 업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에는 입체주의 발명 / 아방가르드 무질서함으로부터 예술의 죽음을 방지하고 고전주의를 부활시킴 / 초현실주의와 교류함으로써 시대정신과 호흡함
그는 1946 발도리스 에서 도기 작품을 처음 접했다. 도예의 수공업적인 측면에서 순수 창작에 대한 의의를 발견했고, 이를 통해 특권층만이 향유하던 예술을 대중적 예술로 바꾸고자 노력했다. 특히 도자기는 조각도, 회화도 아니지만 조각이기도, 회화이기도 했기 때문에 장르 간 경계 무너뜨리는 통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미 만들어진 형태에 유약 바르고 -> 그림 그려 넣으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오브제 탄생했다.
좀 더 눈길이 갔던 작품들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적어둔 제목을 토대로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데 같은 제목으로 작품이 여럿인지 정확히 그 작품이 아닌 경우도 많은듯하다.)
T. Nu couche avec personnage
기본 구성요소는 면. 면 속의 통일성은 없음. 풋결도 다양하고 색도 균일하지 않음.
하지만 한 색조로서 통일감을 기루고 있음. + 일관된 방향을 붓 흐름이 보임.
면 간 경계는 선으로 이루어짐. 말하자면 요소의 대전제는 면인데, 그 사이의 일부는 선으로 구분지어짐.
T. verre et pipe
삼각형이 주된 요소임. 그런데 어떤 규칙이 있는건지 모든 요소들이 원형에서 삼각형으로 변환된 것은 아님. 그 규칙을 정확히 모르겠음. 바깥쪽에 위치한 2겹의 네모는 각각 바닥과 탁상을 표현한건지, 아니면 이마저도 유리잔과 파이프의 일부인지 알 수 없었음. 오랫동안 바라보고 규칙을 알아보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거기까지 닿지 못함.
T. instruments de musique sur une table
전의 작품과 달리 대체로 큰 틀의 대상을 파악하는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요소별 자세하게 파고 들어가는 경우, 또다시 막히게 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 명확함과 불명확함의 비중, 밸런스가 참 잘 잡힌 듯하다.
T. portrait de marie-therse
질문에 질문이 자꾸 생겨남. 왜 방을 이렇게 비틀었을까.
파란 피부, 금색 손톱, 초록색 머릿결, 어떤 감정을 담은 것인가. 눈의 색은 왜 각각 갈색, 바랑일까?
심리적인 분위기를 색으로 투영한 걸까.
+고전주의와 입체가 섞여있는 과도기적 작품은 아쉽게 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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