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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기

투탕카멘 - 파라오의 비밀 @ 전쟁기념관

21/08/08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물들을 정교하게 복제하여 전세계를 돌며 전시가 진행중인데, 이번에는 한국에 방문했다. 전쟁기념관에서 진행하길래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가 섞여있나 싶었는데 딱히 그런 접점은 없나보다.

사전 예매 티켓을 예매해 두었기에 대기줄 없이 바로 입장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확인해보니 이와 상관 없이 가서 입장 대기를 해야 했다. 인기가 굉장히 많은 전시라서 주말의 경우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왠지 그럴 것 같아서 기다리는 시간동안 미리 예매해둔 전쟁기념관을 관람했다. 625 기념관에서 전쟁 당시 목숨을 바치신 수많은 분들의 모습을 접하고 오니 마음가짐이 새롭다. 다시금 자유의 무거운 책임을 상기했다.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들 자체보다도 현대미술과 닿아있는 그들의 표현에 관심이 생겨 관람하게 되었다.
현대의 추상화들을 보면 더이상 눈으로 보이는, 가시계의 영역이 아닌 내가 인식하고 있는 상들, 가지계의 영역에서 대상을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피카소의 작품에서는 눈으로 이 방향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이더라도(이를테면 뺨의 반대편, 뒤통수 등) 모두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이집트 상형문 역시 그러하다. 가만히 보면 평면이나 조각에 드러나있는 대상들은 단순히 눈의로 보이는 모습대로가 아닌 인식한 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만 그 본의나 취지를 알아보는데까지는 노력이 닿지 못하던 중 이번에 소개받은 많은 설명을 통해 궁금증을 여럿 해결할 수 있었다.

사망한 왕을 무사히 망자들의 세계로 보내는 것을 신민들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여겼다고 한다. 망자들의 세계에 도달한 왕은 신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왕의 장례를 담당하는 장인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도시까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룩소르가 그곳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발전한 다양한 의식이 있었고, 왕이 왕좌에 오르자마자 그의 무덤을 준비하고 장례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죽기 위해 태어난 삶으로 느꼈다.

부장품에는 제수 음식에 관한 조각이나 벽화가 가득한데 이는 살아있는 자들이 더 이상 고인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무덤이 도굴당하더라도 , 벽화와 부조에 평면적을 묘사됐거나 입체적인 모형으로 무덤에 안치된 것들을 통해서도 고인들이 사후세계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자양물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왕국의 모든 구성원들이 제사에 관한 취지에 의문을 품지 않고 자신들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따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했다. 엄격한 수직신분구조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부장품에서도 엿보이는 충분한 부를 통한 격려였을까.
전시를 통해 바라본 그들이 믿던 세상의 이치는 화려한 모습이 무색히게 순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금은 보편화된 지식이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의문조차 품지 못하고 동화와 같은 이야기에 진지하게 임해 평생을 바치는 모습을 보기 떄문인 듯하다.
동시에 현시대에서도 반복중인 내가 보는 것만, 내가 아는 것만을 전체로 판단짓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례와도 겹쳐 보면서 삶의 행동방식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다만 모든 절차들과 양식, 각 물건들에 깃든 일관된 의미들과 정성, 체계에서는 굉장한 힘을 느꼈다. 단순히 화려함을 좇아 위세를 떨기 위한 시도보다는 그들이 믿던 것들이 참인지 여부는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그들이 믿는 방향을 추구하기 위해 일관적이고 정직한 방향으로 노력한 그들이 남긴 유산에서는 존경심을 느꼈다. 이 점에서는 과연 나도 내가 내 삶을 바치면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숭고함을 지닌 뜻이나 관념이 있는지 한번 돌아보았다.

모조품 전시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꽤 보였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물들이 가치를 인정받는 진정한 사유는 물건 자체의 만듦새나 귀한 금속이 얼마나 많이 쓰였는지가 아니다. 그 물건을 제작할때 담았던 마음이나, 관념, 투영된 당대상 등의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는 후대와 소통을 통해 영향력이 행사되어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사례를 우리는 많이 발견한다.
그렇지 않고 원래 표현을 최대한 재현하여 좀 더 가까이에서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그래서 비록 지금은 명맥이 끊겼지만 굉장히 선대의 인류가 이루어둔 문명을 이어 무언가 재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알게 된 사실들

*투탕카멘의 재위기간 당시의 기록은 남은 것이 거의 없다. 재위 이후 시기의 혼란으로 해당 시기의 사료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본래 지상에 지어지던 무덤들은 도굴을 피해 후대에 이르러서는 모두 지하로 이동되었다고 한다.

*투탕카멘의 본래 이름은 투탕카텐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기존 신의 체계를 개혁했다고 하는데, 왕의 사후 타 세력에 의해 그의 아버지의 시도는 모두 기록이 지워졌고, 투탕카멘의 이름 역시 후대에 의해 바뀌었다고 한다.
그의 동상이나 관, 유물 곳곳에 미처 지워지지 않은 과거의 이름이 빈번히 보인다고 한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독수리는 상이집트를 / 코브라는 하 이집트를 상징한다고 한다.


*황금왕관은 영혼불멸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집트는 태양신을 섬겼는데, 빛의 상징으로 황금을 사용했다고한다. 또한 가면에는 파란색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햇빛에 비치는 푸른 하늘을 의미한다.



*왕의 이름을 기록할 때는 카르투쉬(cartouches)라는 타원형의 기호 안에 썼다.


*우샤브티는 대답하는 자라는 뜻으로 명령을 수행하는 하인들이다. 내세의 왕을 위한 충실한 하인들로 왕자가 부르기만 하면 오는 이들이라는 뜻에서 이렇게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1년치용으로 365개가 부장되어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의 중심이 심장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미라화 과정에서 뇌는 코를 통해 모두 빼버리고 송진으로 채웠으며 대신 심장은 보존처리 후 원래 자리에 다시 집어넣었다고 한다.


*왕이 신던 신발 한쌍이 있었는데 신발 바닥에 아프리카 아시아인을 새겨두었다. 밟아서 진압하자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