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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기

부천필 283회 정기연주회 - 흑해의 별 @ 예술의전당


21/11/26

쇼팽 콩쿨에서 보았던 김수연씨가 부천필하모닉과 협연한다고 해서 만나보고 왔다.

프로그램

Night on Bald Mountain - M. Mussorgsky

Piano Concerto No. 1 B-flat minor Op. 23
- P. Tchaikovsky

Scheherazade Op. 35 - N. Rimsky-Korsakov


작품 자체에 대해 느낀 점

독서야 나와 맞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비슷한 작품들을 소개받는 식으로 책은 저변을 넓힐 수 있지만 지금 방식의 음악감상에서는 이러한 상호소통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공연을 통해 새로운 작품들을 소개받고 있다.
차이코프스키 3악장 외에는 모두 이번에 처음 접해본 작품이었는데 나머지 2작품도 마음에 쏙 들어서 거의 보름째 두 곡을 반복해서 듣는 중인데 정말 즐겁다.

이번에 새로 소개받은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진행에서 옴니버스식 구성을 느꼈다.
주 선율 하나를 매개로 이런저런 버전들이 병렬로 소개되는데 보통 가요나 일반적인 피아노 곡 등에서 느낄 수 있는 기승전결식의 전형적인 스토리적인 흐름은 전혀 느끼지 못했고 악장끼리 위계 없이 동등한 지위에서 각자 독창적인 시도를 수평적으로 소개받는 느낌이었다. 약간 딸기뷔페같은 느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차이코프스키 넛크래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느꼈는데 러시아의 특징일까 싶다.
문득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무소르스키에 대한 평을 찾아보니 해군 장교 출신인데다가 별다른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던 까닭에 곡의 구성이 다소 아쉽다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내겐 오히려 뜬금없는 구성이 정말 신선하게 느껴졌다. 약간 슬리퍼 좌우를 뒤집어 신을 때 느끼는 묘한 안정감 같은 느낌? 이질적이어서 인상적인 느낌.

민둥산의 밤에서 들리는 그라데이션으로 후룰룰루 하는 소리는 정말 진짜 깜깜한 밤에 홀로 삭막한 산등성이에 있다면 느낄 무서운 느낌들, 휑한 바람들이 굉장히 공감되게 묘사되어 있었다.

세헤라자데는 간드러짐이 너무 마음에 든다 ㅠㅠ 작고 빤짝이는 소리와 더해서 스트링들이 작은 소리 위주로 작다 크다 하는 그라데이션도 좋고 동시에 바순 클라리넷의 고즈넉한 소리와 왔다갔다하는 진동이 정말 아름답다.

앞으로 최소 세달은 빠져 살 것 같다. 이번에도 다시 금 느꼈지만 소련 동무들은 정말 관악기를 잘 쓰는 것 같다.


김수연씨와 부천필에서 느낀 점

우선 필하모닉은 굉장히 섬세한 느낌이었다. 눈 감고 들으면 바이올린은 한 사람이 컨 것으로 착각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통일감을 이뤄주었다. 게다가 음색도 되게 빤짝빤짝 거리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통일성 덕분에 처음으로 비올라 파트에도 시선이 가기도 했다. 다만.. 소리가 너무 작았다.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는데 나중에 솔로파트때 제1주자의 소리가 되게 섬세하고 빤짝빤짝했는 데 이 영향이 미치지 않았을까 싶었다.
바이올린 뿐 만이 아니라 현의 전반적인 소리가 너무 작아서 금관에 묻히고 말았다. 처음 듣는 작품이라서 원래 작품 스타일이 그런지, 아니면 실제로 밸런스가 아쉬웠을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라데이션을 굉장히 잘 하는 팀으로 느꼈다. 조그맣게 시작해서 팀파니의 진동과 함께 굉장히 빠른 진동수로 쿠쿠쿵 올리는 부분은 정말 소름이 돋았다.

이번에는 확대경을 챙겨가서 주자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감상했는데 지휘자와 끊임없이 눈으로 의사소통하면서 진행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보통 눈을 감고 듣곤 했는데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또 다르게 감상할 수 있었다. 준비하는 모습, 마치고 안도하는 모습, 준비하면서 관 내부 불어내다가 실수로 소리가 나서 스스로 놀래는 모습 등등 못 보던 광경들이 보여서 좀 더 복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양안으로 볼 수 있는 쌍안경을 준비해야겠다. 하마터면 사시 올 뻔 했다.

차이코프스키 3악장은 뭔가 오케스트라와 김수연씨의 호흡이 잘 안 맞는 듯했다.
중후반부 클라이막스에서 피아노가 점점 올라가다가 끝에서 잠시 쉬고서 뽬!!!!!! 하면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터뜨리는 곳이 있는데 보기 좋게 어긋나버리는 바람에 내가 괜히 민망해서 자리에서 너무 크게 용틀임을 했다... 뒷자리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많이 방해되었을 것 같아서 공연 끝나고 나올때 민망해서 후다닥 서둘러 나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