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02
슈베르트 D.839를 리스트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S. 558을 연습중입니다. 아베마리아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이지요.
조수미씨가 아버님의 장례식이 열리는 와중에도 아버님의 뜻대로 공연을 진행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영상을 통해 접하게 되었어요. 죽음으로서 완성된 한 삶과 그 결과로 남은 예술가를 표현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죽음으로 끝이 막혀있는 유한한 나의 시간을 인생을 완성하는데 오롯이 집중해서 마지막에 닿을 때 즈음 삶이 완성되고, 결과물을 둘러보면서 뿌듯해할 수 있는 느낌. 이 느낌에 끌려서 갖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습니다.
진지하지 않게 혼자 재미삼아서 오랫동안 쳤기 때문에 기본기가 탄탄하지 못해서 한참을 고생중입니다. 그 중에 피아노 포르테를 표현하는 부분, 그리고 모티브에만 강세를 주어 살리고 나머지는 배경으로 남기는, 손가락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곳에서 막혀서 지금 한참을 여길 고치는 중입니다.
이 고충에 가끔씩 쳄발로는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쳄발로는 건반에 강약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은연중에 약간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쳄발로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롯데콘서트홀에 다녀왔습니다.
바흐, 헨델, 쿠프랭 등의 바로크 음악을 플룻과 쳄발로의 합으로 듣고 왔습니다. 물론 아는 작품은 하나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악기 특성이나 두 악기 조합을 편견 없이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했습니다.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 / 플루트와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라장조, Wq.83
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
Sonate für Flöte und Cembalo in D-dur Wq.83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 플루트와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제5번 사장조, HWV 363b
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
Sonate für Flöte und Basso continuo in G-dur, HWV 363b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 플루트와 쳄발로 오블리가토를 위한 소나타 나단조, BWV 1030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Sonate für Flöte und obligates Cembalo in h-moll, BWV 1030
- Intermission -
조제프 보댕 드 브와모르티에 / 모음곡 제6번 가장조, Op.35
Joseph Bodin de Boismortier (1689-1755), Sixième Suite en La majeur Op.35
프랑스와 쿠프랭 / 왕궁의 협주곡 제1번 사장조
François Couperin (1668-1733), Concerts Royaux - Premier concert en Sol majeur
자크-마르탱 오트테르 / 모음곡 제3번 사장조, Op. 2
Jacques-Martin Hotteterre (1674-1763), Troisième Suite en Sol majeur Op.2
음악 감상후감
푸가나 대위법 가득한 작품들은 너무 날것 같은 느낌에 그간 가까이 하지 못했는데 최근에서야 바흐 작품 몇개에서 마음에 드는 방식의 웅장함, 결연함을 느끼고 즐겨 듣기 시작했어요.
BWV 847, 1043, 1065 정도가 있겠어요.
그 중 특히 제가 주로 듣는 버전의 BWV 1065에는 쳄발로 4대가 한번에 나오는데 뾰족뾰족한 소리들이 가득 차서 굉장히 웅장하고 북적북적한 느낌도 들고 매끄럽게 계속해서 진행되는 느낌이 굉장히 좋게 와 닿더군요.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하고 방문했습니다.
https://youtu.be/CGVL5j6BEKs
https://youtu.be/3xwMXjYgXzM
https://youtu.be/emkJ0A7IfkY
그렇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 접한 작품들 중에서는 전처럼 뭔가 계속 생각날 것 같은 작품을 얻진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곡가들이나 작품들 간 특색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전에 소개받기로는 프랑스 음악의 특징이라 함은 보편적이라서 누구나 들어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고, 독일의 경우 진중하고 메시지가 저 깊이 숨어있다고 했는데 이런 점을 이번에도 느껴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실패.
모든 곡에서 공통적으로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고 이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으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단조로울 수 있는 멜로디를 트릴을 엄청나게 집어넣어서 극복한 모습도 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판소리에 등장하는 꺾는 소리도 단조로운 멜로디를 극복하기 위해서 생긴 스킬일 수도 있겠어요.
플룻과 쳄발로의 조합은 형돈이와 대준이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둘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될지 궁금했는데 들어보니 한쪽이 상대방을 받쳐주는관계가 아닌 서로 동등하게 공존하는 듯했습니다. 파트별로 한 쪽만 등장하는 듀엣가수처럼 동등한 게 아니라 둘의 소리 세기가 일관적으로 동등하게 존재하는, 같은 노래를 동시에 독립적으로 동등하게 부르는 느낌이었어요.
부조화가 나기 쉽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건 서로 음색이 달랐기 때문인 것 같구요.
화려하고 말 많고 넉살 좋은 플룻, 그리고 가끔씩 무게있는 말을 조금씩 던지는 하지만 보통은 플룻 버금갈 정도로 수다스러운 쳄발로.
덕분에 재밌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쳄발로에 대해 알게 된 내용
쳄발로 소리를 직접 들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소리세기가 훨씬 작았습니다. 뾰족뾰족한 소리가 나길래 소리 자체도 엄청 클 줄 알았거든요. 플룻보다도 작았습니다.
소리는 음 피아노 소리에 익숙해져있어서 그런지 단조로웠습니다. 아마 그래서 트릴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다만 트릴이 왜 오른손에만 집중되어있는지 아니면 왼손도 트릴이 많았는데 묻혀서 못 들은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쳄발로 소리를 듣고 나니 왜 롯데콘서트홀의 오르간이 68개나 되는 음색을 동시에 내려고 했는지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음이라도 음색을 여러개 섞어내는게 훨씬 다채로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오르간과 쳄발로 소리를 비교해본 덕분에 이번에 직접 느낄 수 있었어요.
연주 전 튜닝하는 방식도 신기했습니다.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느낌? 두분만의 습관일 수도 있는데 쳄발로는 1357531, 플룻은 876543212345678 요런식으로 각 곡 시작 전에 코드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쓱 훑더군요.
중간중간 뾰족한 소리가 아니라 하프처럼 부드럽게 소리가 나길래 자세히 보니 뭔가 버튼 같은걸 조작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류트스톱이라는 가죽조각이 부착된 막대가 있는데 이걸 사용해서 현 진동을 일찍 멎게 만들어 부드러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바로크 음악은 아는게 거의 없어서 좀 더 찾아보았는데 의외로 이번에 서로간 너무 비슷하다고 느낀 것과 다르게 바로크라는 단어의 어원은‘불규칙적인 도형’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해요.
바로크시대는 창작자마다 자율성과 즉흥성이 중시되는 시대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작곡가가 쳄발로 주자로 직접 공연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서 당시의 악보를 보면 자세하게 표현되어있지 않고 참고용으로만 보게끔 아주 단순히만 적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해요. 그리고 나머지는 연주자가 알아서 꾸리구요.
지금 제가 주로 즐겨듣는 후대 작곡가들보다 연대상 100년 정도는 앞선 사람들의 작품이다보니 당시만 해도 엄청난 차이라고 여겨지던 것들이 100년 새에 간극이 훨씬 더 벌어지게 된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이렇게 한참 후의 시점에서 과거 연대별 음악 특징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도 어떻게 보면 행운이라고 하겠어요. 동시에 400년도 더 된 작곡가의 작품이 아직도 사랑받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구요.
새로운 걸 경험해보는 건 중요한 시도라고 항상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비록 지금 기준의 제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번에 접한 내용 덕분에 취향이 변침할 수도 있겠지요?
그간 관심이 닿지 않던 악기와 작품들을 소개받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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