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0
덤덤하게 적힌 소설이다. 다 읽고 나서야 표지에 시선이 닿았는데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가 표지에도 잘 담겨있다. 잘 어울린다.
몇년 전 존윌리엄스의 스토너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차분한 분위기로 단조롭고 억압받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저항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담당하게 적혀있는 모습에서 이 소설과 공통점을 느꼈다.
이웃집에 살지만 40년이 넘도록 직접 교류를 해본 적이 없는 두 남녀가 친분을 쌓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뽑는다면 맨 처음에 에디가 루이스에게 찾아가 동침을 제안하는 장면이다.
제안한 이유에 대해서는 왜가 없이 그냥 '좋은 사람 같아서요' 라고만 대답한다.
처음에는 이게 굉장히 어색했는데 나중에 차츰 이야기를 하나 둘 해 나가면서 드러나는 그의 인간됨됨이를 통해 에디가 과거 루이스의 아내와 친하게 지내면서 전해들은 이야기로 루이스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다가간 게 아닐까 짐작해볼 수 있었다.
이것까지 헤아린다면 두 사람의 관계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내용이 되는 소설의 맨처음으로 아주 적절한 도입부라고 느껴졌다.
감성적 교류가 잘 맞는데서 오는 짠함이 있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사랑보다는 진정한 우정으로 내겐 느껴졌다. 교류를 통해 트라우마를 털어놓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 아팠을 때의 도움, 본인의 삶을 회고해보는 시간을 갖는 모습에서 그렇게 느낀 듯하다.
서로 비슷한 모습 덕분에 가까워지고, 서로 비어있던 공간이 교류를 통해서 해소되는 모습, 서로에게 좋은 역할을 하는 모습이 짠하게 좋았다.
만약 둘이 안 만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해보면 대비되어서 좀 더 느껴볼 수 있다.
에디의 경우 영영 아들과는 더 가까워지지 못했을 테고 손자도 집에 어찌되었던 맡겨지더라도 강아지를 만나지 못한 채 + 할머니와의 교류다운 교류도 하지 못했고 이 관계도, 둘의 변화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최근에 사귀는 친구들은 이제까지 교류해왔던 방식과 정반대의 경우가 많다. 안면을 먼저 트고, 직접경험을 함께 공유하면서 그 경험을 통해 이 사람이 누군지를 느끼면서 친분을 쌓았던 과거와는 달리 취미나 상황, 배경 등의 공통점을 전제로 만나서 거꾸로 상대방의 배경에 대해 어느정도 아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교류가 요즘에는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굉장히 빨리 친해지기도 하고 빨리 사이가 틀어지기도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경우도 내가 최근에 친구를 사귀는 방법과 비슷해보였는데 성공적인 사례로 보여서 부러웠다.
다 읽고 작가가 담고 싶었던 메시지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예전에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본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인간에게 인간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
서로에게 도움되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삶을 더 확장시키는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내가 얼만큼 발전할 수 있는지 새삼 한번 돌이켜 보게 되었다.
배울 점
처음에는 플롯이 너무 뒤죽박죽 섞여있는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 보고 나서 다시 구조를 살펴보니 외부 이야기와 주인공 간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나와서 그렇게 느껴진 거였다.
결혼 초기 이야기 - 직장 이야기 - 동시에 두사람의 관계가 주변에 알려진 이야기 - 자식들에게 한 소리 들은 이야기 - 제이미가 온 이야기 -꿈 이야기 - 제이미가 하나 둘 배우는 이야기
외부 이야기와 내부 이야기를 피아노 흑건 백건 배열하듯이 적절하게 섞어두었는데 좋은 방식이라고 느꼈다.
결말에 대하여 : 서로가 상황적 교류를 통해서 의지하는 모습에 주제의 무게가 있다. 그렇기에 두 주인공의 관계가 어떻게 끝나는지는 사실 주제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래서 열린 결말처럼 거기도 추운지를 물으며 소설이 끝난 모습도 아주 적절한 곳에 방점이 잘 찍혔다고 느꼈다.
문학적인 소설책, 시는 주제감각이 없다. 이런 부류의 책은 둘러보기 위해 보는 것이다. 두루 살펴보기 위해 보는 것이다. 인생은 앞만 보고 가서는 잘 이루어질 수 없다. 소설을 통해 그간 미치지 못하던 부분에 시선이 닿아 위로받기도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도움이 되게된다.
목적 지향에 젖다 보면 인간 교류에서 이야기하면서 핵심만 찾으려고 하는 모습에 닿게 된다.
우리에게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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