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8
시는 그래도 이병률씨가 신간을 내거나 친구가 소개해주는 작품 몇을 가끔씩이라도 접하는 반면 단편 소설은 좀체 접할 기회가 없었다.
소설 집필에 관한 클래스를 수강중인데 덕분에 연달아 2권의 단편 소설집을 읽게 되었다.
아마 이런 기회 없이 혼자 읽었더라면 중간에 덮어버리거나 혹평만 뱉어내고 그 어떤 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수업 전 먼저 읽고 나서는 머릿속에 물음표가 얼마나 많았는지 세지도 못하겠다.
이야기가 다 끝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다음장을 펼치니 난데없이 끝나기도 했고 몇몇은 제목이 내용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수업을 통해 작가님의 해설과 다른 분들이 나누어 준 후감을 듣고 나서야 이해한 내용들, 숨겨진 의미들이 굉장히 많았다.
전체적인 평
명성이 자자한 작가라는 배경을 듣긴 했지만 도대체 어떤 의의로 칭송받는 작가인지가 굉장히 궁금했다. 클래스에 참여하신 몇 분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어쩌면 번역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아무래도 문화권이 다르다보니 손실되는 내용이 있는 듯하다.
일상이라고 하기엔 특이한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여렵지 않은 문체로 적혀있어서 쉽게 읽힌다. 다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기가 나로서는 너무 어려웠다. 뜬금없는 전개와 대사들.
읽는 내내 작가가 어떤걸 표현하려고 한 건지 너무 궁금했다.
인상 깊었던 작품, 장면
1.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한 부부가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고서 큰 상실에 빠져있다. 사고가 난 날은 아이의 생일이었기에 이를 위해 엄마는 케잌을 주문해두었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빵가게 주인은 계속해서 부부에게 거듭 독촉 전화를 걸지만 소통 오류로 서로 불화만 쌓인다.
돈을 받지 못한 가게주인 / 그런걸 챙길 경황이 없는 와중에 자꾸 전화를 걸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대는 빵가게 주인에게 감정이 쌓인 부부. 둘 모두 이해가 된다.
결국 아이는 죽게 되고 분풀이라도 하듯 부부는 죽일 기세로 빵가게에 달려든다.
빵가게 주인은 부부의 사연을 듣더니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갓 구운 롤케잌을 내 오고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준다. 점차 갈등이 풀리고 둘은 다음날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2. 열
주인공의 아내는 별안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서겠다면서 남편에게 아이 둘을 남겨두고 남편의 동료와 함께 훌쩍 떠나버린다. 이 황당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무너지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가정을 꾸려 나간다. 하지만 운이 도와주지 않는지 이상한 보모들을 연달아 만나 숱한 고생을 겪는다.
이 와중에 아내는 연락을 이따금 해오면서 그래도 우리는 연락을 계속해서 주고 받아야 한다는 이해되지 않는 소리를 해댄다. 이에 대해 웬일인지 주인공은 아내에게 속마음대로 화를 내뱉지 못한다.
보모로 고생하는 이야기를 듣더니 아내는 어떤 할머니를 보모로 추천해주었고, 다행이 괜찮은 사람이라서 6주 정도 고용한다.
집이 안정되고 나서 주인공은 열병에 잠깐 고생한다. 다행이 보모가 잘 보살펴준 덕에 그는 결국 낫게 되는데 병에서 회복되면서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며, 아내에게 하지 못했던 푸념이며 모든걸 보모에게 풀어낸다. 정리가 되는 모양새이다.
그리고 보모는 다른 일이 생겨 일을 그만두고 떠나는데 서로 작별인사를 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3. 대성당
주인공의 아내는 시각장애인들과 취미로 교류를 해왔다. 그를 만나기 전부터 알고 지냈던 시각장애인이 있었는데, 직접 대면한 적은 없고 대신 녹음 테잎을 주고 받는 식으로 교류했다. 어느날 아내는 남편에게 그 시각장애인을 초대했다고 통보한다.
자신보다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잘 알고 있는 듯한 이 사내에게 남편은 묘한 감정을 느낀다. 얼마 뒤 시각장애인은 예정대로 집에 도착하고 며칠을 머무른다.
한 번은 아내가 집을 비우게 되고 둘은 함께 티비를 보게 되는데 문득 주인공은 티비 내용을 그에게 설명해주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에 티비 장면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시각장애인은 사실 티비를 귀로 엄청 많이 들어왔던지라 각 사물에 대한 관념이 개인적으로 몇몇 있다.
마침 대성당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뾰족한 첨탑이며 회려한 장식등을 설명하다가 그들은 손을 맞붙잡고 펜으로 종이에 대성당의 윤곽을 함께 그린다. 이 공감하는 경험에서 무언가를 느낀 주인공이 'Wow. that's something.'이라고 말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세 작품 모두 제목에 등장하는 하나의 매개체 덕분에 기존 상황에서 전환을 맞게 되는데 상기 작품들의 경우 모두 긍정적인 도움이다.
이 세 작품 덕분에 단편소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상황 표현 등이 직접적이지 않고 모두 매개체나 장치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나와 맞지 않는다면 수수께끼가 되어버리지만 이해할 만 하다면 내용 외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자체도 굉장히 우아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기차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교류가 끊겼던 아들을 만나러 가는 주인공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기차는 본인이 살아왔던 방식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목적지가 각기 다른 두 객차를 연결해서 운행하다가 갈림길에서 둘을 분리하게 되는데 그 순간 하필 다른 객차에 있었던 탓에 정상 여정에서 벗어나고 짐마저 모두 잃는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불안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그 뒤로는 좀 더 적극적이고 편안한 모습을 보인다.
원래 여정은 정해진 길, 남들이 가니 따르는 길의 이미지라면 우연히 잘못 타게 된 차편은 예상하지 못한 미지의 길을 표현한 듯하다. 그리고 각자의 상황에서 보인 주인공의 모습은 처음엔 의외다가도 나의 과거 경험에 비춰본다면 공감되기도 한다.
이 외에 비타민, 조심, 깃털, 이런 것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공감을 이루지 못했다.
배운 점
대부분의 작품이 굉장히 함축적이고, 메시지가 유독 숨어있었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대단히 애를 먹었다. 그나마 이해한 작품들도 사실 내가 직접 알아챈 것보다 다른 분들께서 나눠주시는 것들을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이 더 많았다.
왜 메시지를 읽는데 실패했을까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변명이지만)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결론내렸다.
작품을 쓸 때는 읽게 되는 대상의 문화권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국제화가 많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장면적 배경이나 관습 등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공감되지 못한다면 다른 문화권의 사람에게는 이러한 부분들도 방해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 실제로 스테이션 왜건이라던지, 대합실 내의 풍경이나 간이역, 레지던스 내의 삶의 방식 등 배경에서 오는 생소함 때문에 잠시 집중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서 등장하는 집안 속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다 겹쳐서 한참 혼동되었던 때와 비슷했다.
일반적인 의사소통으로는 담을 수 없는 어떤 특정 관념에 대한 내 시선이나, 서정등을 남들과 나누려고 하는 목적으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이 때 여기에 담기는 메시지 자체는 나만의 고유한 걸 다루는 게 당연하지만 이 메시지를 담는 그릇 (시대적 배경이나, 장소적 배경, 장치 등)은 너무 고유하게 하지 않게, 오히려 보편적으로 적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작가님께서 소개시켜주신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은 리얼리즘, 미니멀리즘이라는 관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의 작품은 리듬감이 있다. 속도감 있게 빨리 쓴다. 서사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중간에 생략하는게 많다. 어떤 장면의 어떤 순간은 되게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전체가 아니라 굉장히 일부에만 담겨있다.
단편 소설적 메시지 전달 방식은 장단이 뚜렷하다고 느꼈다. 아주 효과적이고 깊은 공감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어떤 상대방에게는 아예 전달이 안 되고 수수꼐끼만 남는 통신오류만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방식 자체가 가진 매력을 이번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적절한 중간점을 잘 찾아서 연습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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