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6
내게 여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하나만으로는 대답할 수 없는 범주가 무척 넓은 주제다.
각각의 여행 당시 내 상황이나 동행한 사람과의 관계, 그 여행지를 선택한 이유, 여행하게 된 배경 등에 따라 각자 지니는 의미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친구는 이젠 직접 하는 여행과 남들이 글, 동영상 등의 매체를 통해 소개 받는 여행을 구분하는게 헷갈린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직접 가서 경험할 만한 여행이 있기도 하지만, 실제 수고를 들이는 것에 비해 수확이 크게 없어서 차라리 매체를 통해 소개받는 간접 여행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비록 시점이 좋지 않은 까닭에 가서 즐기지 못하고 되려 불편함과 안 좋은 인상만 잔뜩 짊어지고 오는 경우가 있을 지언정 간접 경험보다 더 나쁜 직접 여행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경중을 떠나 이제까지 살면서 이룬 모든 경험 하나하나가, 심지어 극히 사소한 어떤 것이라도 한데 모여서 나를 이룬다. 그리고 이 경험들을 겪은 시점을 기준으로 나의 영혼은 변화한다. 그 시점 전후의 나는 서로 다른 존재인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경험 외에 간접적인 경험 역시도 굉장한 영향을 미치지만, 어떤 실질적 현상을 내가 직접 받아들여 얻는 경험과, 실질적 현상에 대해 느낀 바를 정갈하게 적은 남의 감상을 통해서 얻은 간접 경험은 비단 양의 문제가 아닌 방향성 관점의 문제로 굉장히 일부의 편중된 감상만 얻게 되는 위험이 따른다.
편견을 지니고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셈이다.
물론 경험 자체도 취향이 어느정도 굳어진 상태에서는 실체에서 느끼는 직접적 경험이더라도 실체 자체를 내 취향에 맞게 가려내기에 한쪽으로 쏠릴 수도 있지만,
편중되더라도 실체를 통해 직접 경험하는 것과 실체에 대하여 남이 가공해둔 기록을 간접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차이가 크다. 전자가 훨씬 다채롭다.
따라서 나는 무엇이든지 직접 경험을 이루어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공간적 여행 뿐 만 아니라 관념적 여행_이를테면 독서, 영화감상, 미술 관람, 타인과의 의견 교류 등) 무조건적으로 직접 날것을 경험해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에게 여행이란, 기존에 접해본 적이 없는, 내가 지니고 있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에 나를 부딪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오감, 육감을 통해 이를 받아들여 나를 살찌우는데 가장 큰 목적이 있다.
여행, 휴가에 대해서 어원 등을 인용하여 의도를 지니지 않고 비우는 것, 의도를 크게 들이지 않고 쉬는 것 등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여행은 해본 적이 없다. 내게 아무 의미도 없을 뿐더러 효용성이 없기 때문에 할 예정도 없다. 다만 이는 내 기준이므로 다르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용도가 맞을 수도 있다. 격하할 생각은 없다. 내게는 맞지 않을 뿐이다.
여행의 이유 - 김영하
나와 갈래가 맞아서 유난히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 직접적 대화가 아닌, 간접적인 뉘앙스에서 동질감이 느껴지는 그런 교류는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아주 가끔씩 마주칠 때마다 굉장히 반가움을 느낀다.
이는 일상의 교류에서는 거의 보기 드물고, 보통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느낀다.
그런 점에서 나와 잘 맞다고 생각하는 작가 중 방송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유독 반갑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의 투명피부를 가진 인간처럼 내가 그들의 예술적 언어가 어떻게 탄생하게 된건지 나름 해설해볼 수 있도록 답안들을 굉장히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은꽃이라는 그의 소설을 본 적이 있다. 수 많은 그의 사상이 간접적인 언어로 가득 담겨있었다. 또한 그가 추천하는 책을 통해서 보는 그의 인생관에서도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마침 회사 북카페를 둘러보던 중 그의 산문집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여행의 이유라는 제목의 책이다. 그 전에 접했던 작품과는 달리 그의 인생 경험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그의 예술이 어떤 연유로 오늘까지 이어졌는지를 대략적으로 감상해볼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의 배경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가 이태껏 해온 경험을 통해 여행의 정의가 조금씩 바뀌는 서술이 담겨있다.
서두에 소개된 그의 아버지의 유럽 여행 / 본인의 중국 여행 등에서는 여행을 통해 꼭 무엇인가 사전에 의도한 것을 얻어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그의 입장이 적혀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나 역시도 비단 여행 뿐 만 아니라 어떤 계획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면 항상 A에서 기획해서 T정도로 예쌍한 진로가 결국에는 입실론 정도에서 마무리되는 모습을 많이 본다. 머릿속으로 계획할 때에는 실제로 어떤 결과에 닿을 지 아무도 모른다. 경험을 하기 전 나는 내 능력 내에서만 짐작을 통하여 진로를 짐작하자만 경험하던 와중마다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이슈들이 쉴새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 모토는 바로 기업가정신, entrepreneur, 다시 말해서 일단 하자 이다. 이 점에 초반에는 공감했다.
작가 말대로 너무 무언가 의도를 지니고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다.
이렇게 무작위의 경험에서 내가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과정이 어쩌면 순리일 수 있을 수 있다.
다만 고효율 위주의 사회에서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없도록 대부분 정제되고 의도가 고안된 경험만 고집하는 현대사회는 이 본질을 따질 여유가 아무래도 모자란 듯하다.
이 점에서 보면 나가 어떻게 성장할지는 결국 내가 주변에서 마주치는 것들을 얼마만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지의 능력에만 따라서도 개개인별 차이가 클 수 있겠구나 싶다. 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은 그들이 '문을 열어주어야'한다. 처음 방문하는 그 낯선 세계에서 나는 허용된 시간만큼만 머물 수 있다. 그들이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 나는 떠나야 한다. 더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또다시 낯선 인물들로 가득한 세계를 찾아 방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자 마음이 참 편해졌다.'
글로 생각 적으면서 이것을 굳히고 있는 요즘인데, 이에 대한 그의 동의도 얻었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유통되지 않고 재고로 남은 기억은 창고 깊숙한 곳에 묻혀 잊혀진다. 고대 그리스와 달리 이제는 생각을 들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것은 책으로 묶여 도매상과 서점을 통해 스스로 돌아다닌다. '
내가 낮게 보았던 간접 여행 경험도 좋은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소개받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시켜 대신 여행하게 하고 자신이 나중에 그것을 재구성하는 데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바야르에 의하면 그것은 어떤 타자를 감수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여행했을 때에는 놓칠 수 있는 것을 타인을 통해 경험하는 것. 타인이 놓쳤을 어떤 것을 상상력을 동원해 복원하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럼자를 판 사나이의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어렸을 적부터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매번 돌아다니는 삶을 살아야 했던 그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자란 그가 원래 속해있던 지리적인 아이덴티티정도로 이해가 가능할 것 같은데, 해외의 시위를 보던 중 그 아젠다에 직접 관여하는, 그곳에 그럼자가 있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림자가 없어서 일정 선 이상으로 관여가 불가능한 그를 그 기준으로 구분지어두었다.
요컨대 그가 여행하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1. 내게 결핍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것
2.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
여행이라는 것에 담긴 여러 의미를 정의하면서 그의 인생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진 듯하다.
중간에 기술되었듯 어떤 관념에 대해 숱하게 생각해 보았다고 한들 이는 맺히지 못한 무형의 알맹이일 뿐이다.
생각해보았다는 주목해보았다는 뜻이지 결론내련 실체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유를 글로 정리하는 과정을 작품으로 제작한 시도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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