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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반고흐, 영혼의 편지 - 반고흐

21/08/16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명성을 얻은 작품들에서 때로는 그 속의 내용보다 그 주변을 빛내는 후광이 훨씬 커져버린 사례를 본다. 분명 근거 있는 명성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본의는 온데간데 없고 모르면 사회에 끼지 못하는 유행이 되어버린 작품들, 유명하기 때문에 유명한 작품들.

작품들을 그렇게 대하지 않기 위해 나는 되도록 간접배경을 지우고 본질을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배경을 아무리 지워보아도 명성에 걸맞게 공감을 많이 느끼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아름다움을 쉽게 느끼는 보편미 가득한 작가들을 이따금 만나는데, 고흐의 작품들도 그 중 하나였다. (어쩌면 학창시절부터 주입된 취향의 영향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고흐의 일상이 직접적으로 담긴 그의 편지글들을 소개한다. 그동안은 그의 그림들 속에 담겨있는 그의 미적 관점을 간접적으로 헤아려보려고 했다면 이번엔 거꾸로 그의 글 속에 담겨있는 관점을 통해 그림에서 보았던 것들의 근원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관찰자는 대부분 대상의 굉장히 단적인 면 만을 보게 된다. 하지만 만약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다른 면을 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그는 작품의 굉장히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창작 당시 앉아있던 방향의 시점을 교류할 수 있다면 이는 예술품의 거의 모든 장면을 볼 수 있는 진귀한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는 작가와 직접 교류를 하거나 취지에 대한 깊은 설명을 접한다는 뜻이기에 접근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자리이다.


이 어려운 자리는 작가의 일상을 비추는 것들을 통해 대신할 수도 있다. 그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지켜봄으로서 설명을 들어볼 수 있고, 작고한 작가의 경우 작품과 관련되지 않더라도 그가 일상에서 지인과 주고받은 필담이나, 어록, 일화등을 통해서 참고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앉았던 자리를 어느정도 헤아려보게 된다. 그리고 그와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추고 그 관점으로 다시 작품을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그의 글은 그의 작품을 기존에 단적으로 시각적인 감각을 통해서만 접해오던 것을 벗어나 다양한 방향으로 추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삶의 목적에 대한 그의 관점 / 사회에 공헌해야겠다는 생각 / 삶과 예술의 관계성 / 죽음의 시점을 정해두고 남은 유한한 삶을 헤아리는 자세 / 결과보다 과정에 비중을 두는 관점 등등에서 무척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 외에 굉장히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 / 정신병으로 부를 만큼의 증세가 있었던 불안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글 속에서는 고도의 사고와 사색을 느낄 수 있었던 점 / 그를 평생 후원했던 동생이 그를 선망했던 근원이 단순 형제애를 넘어선 지성인을 향한 동경 비슷한 느낌이었다는 점 / (+인터넷에 찾아보니 고흐에게 물감을 팔았던 잔 칼망이라는 할머니가 장수해서 최근까지 살아계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렇게 오래된 사람은 아니겠구나 느꼈던 점 등등의 재밌는 사실도 접할 수 있었다.


그가 주변 인물과 남긴 편지는 총 수가 꽤 된다고 한다. 그 중 이 책을 엮은 번역가가 마음에 들었던 것들을 일부 모아서 이렇게 책으로 펴 냈다고 하는데, 문득 글과 말을 비교해보게 되었다.


말과 글 중 우리는 말에서 더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짧은 순간의 관점에서야 그렇지만 단순히 진동으로, 다른 매질에 얹혀서 수동적으로 존재하므로, 비물질이라는 특성에 기인하기에 극히 짧은 순간동안만 존속한다. 419혁명, 815해방, 전쟁, 종전 등등. 그 때의 함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힘찼을 것이다. 천지를 진동할 정도로 엄청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때의 함성 자체보다도 그 당시 사람들이 남긴 글이 전해져서 그 정보에 의존해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려내볼 뿐이다.

글은 반면 소리없이 뇌를 통해 받아들인다. 자극적이지도 않다. 다만 형태를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동안 존속이 가능하다. 심지어 직계하지 않은 인류를 서로 이어주기도 한다. 고흐의 이야기도 그의 편지가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말로서 전해지는 와중에 도깨비 뿔이 붙고, 빨간 엉덩이가 되고, 털이 덥수룩하게 붙었을 것이다.

결론으로 글을 자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읽히는 매력적인 글을 낳을 수 있도록 연습해야겠다는 생각도 이어서 들었다. 그리고 그에 앞서서 글로 남길 만한 것이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보았다.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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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이다.


최종 목표(꿈으로 이해) : 초벌 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감에 따라 그리고 덧없이 지나가는 최초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될 것이다.


이른 아침, 지붕과 지붕의 선이 엮어내는 굴곡과 그 사이에 자라는 풀들을 바라본다. 잠에서 깨어났다는 걸 느끼게 하는 삶의 신호들(날아오르는 새,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 저 멀리 아래쪽에서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작업중인 수채화의 주제다. 네가 그걸 좋아했으면 한다.


유화를 그리면서 얻게 되는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은 데생에 쏟는 것과 같은 정도의 노력으로, 더 유쾌한 인상을 주는 그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동시에 그 그림이 데생보다 더 사실적이라는 점에 있다. 그러나 그전에, 정확한 비례에 맞춰 데생하고 대상을 자신 있게 적절히 배치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밀레의 감동적인 면은, ‘그럼에도 나는 이런저런 일을 꼭 해야 한다.’는 분명한 태도이다. 빌더스는 아주 재치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구입할 형편이 안 되는 고급 시가나 양복 재단사의 요금청구서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한숨을 내쉬면서도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다.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요즘 내가 몰두하고 있는 인물화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아주 궁금하다. 여기에도 또 하나의 닭과 달걀의 문제가 있다. 즉, 미리 설정된 구성에 따라 인물을 그려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각각 따로 그려진 인물을 모아놓으면 하나의 구성을 이루게 되는 것일까? 이 문제는 계속해서 작업하다 보면 결국 같은 것임이 밝혀진다.


나는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지고 있다. 나는 30년간이나 이 땅 위를 걸어오지 않았나!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이런 생각에 집중하면 해야 할 일이 분명해져서, 더 이상 혼란스러울 게 없다. 요즘은 작업이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으니, 더욱더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겠다.


문제는 사람부터 그리기 시작해야 할 지 옷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리고 형식을 세부적인 것이 하나로 보이게끔 그려야 할지, 혹은 형식으 ㄹ인상과 감정ㅇ르 드러내는 수단으로 간주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대상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오직 그것을 부각하기 위해서 그려야 할 지 판단하기 어렵다. 첫번째 생각을 따라 그린다면 덧없는 그림이 나오겠지만, 두번째, 세번째를 따른다면 수준 높은 작품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두가지 이상의 일(예술적 삶과 현실적 삶)을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쑬이 신성하거나 좋은 것이라는 사실이 불분명해지는 때도 있다.


피사로는 색채가 서로 조화를 이루거나 부조화를 이루면서 만들어내는 효과를 대담하게 과장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정말 옳은 말이다. 그건 데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실제와 똑같이 그리고 색칠하는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이 아니다. 설령 현실을 거울로 비추는 것처럼 색이나 다른 모든 것을 그대로 그리는 일이 가능할지라도, 그렇게 만들어낸 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사랑하는 동생아, 내가 늘 말해 왔고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나는 네가 단순한 화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너는 나를 통해서 직접 그림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도 그 그림들은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너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죽은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 살아있는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 사이에는 아주 긴장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너도 자연 속에서 많은 꽃들이 발에 짖밟히고, 얼어버리거나 시드는 걸 직접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잘 익은 곡식이라고 모두 흙으로 돌아가 싹을 틔우고 잎을 피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도 곡식에 비유할 수 있다. 한 알의 곡식에도 싹을 틔울 힘이 있는 것처럼,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에게도 그런 힘이 있따. 자연스러운 삶이란 싹을 틔우는 것이거든. 사람들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싹을 틔우지 못한 곡식알이 힘없이 맷돌 사이에 놓이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자연스러운 성장이 저지되고 아무런 희망 없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곤 하지.

자연스러운 생명활동이 저지되었을 때, 어쩔 수 없다고 굴복해 버리기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문제가 무엇인지, 또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아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처럼 훌륭한 의지로 세상의 어둠을 밝혀온 소중한 위인을 책 속에서 찾아볼 수 있지….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니 네 스스로 퇴보하길 바라지 않는 이상 공부는 필요하지 않다. 많이 즐기고 많은 재미를 느껴라.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에서 요구하는 것은 강렬한 색채와 강한 힘을 가진 살아있는 어떤 것임을 명심해라. 네 건강을 돌보고 힘을 기르고 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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