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4
수화 김환기 화백의 독립된 전시관이 부암동에 있다고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북악 스카이웨이에 자전거 타러 가면서 맨날 지나던 길 바로 근처여서 관심이 갔지만 여차저차 한참을 방문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주말 빈 시간대를 검색해보니 오전 첫타임에 한 자리가 마침 남아있길래 낼름 예약하고 다녀왔다.
코로나 떄문에 시간 예약제로 운영중인데 덕분에 큰 실에 나 혼자 차지하고서 조용히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92년도에 재단에서 지었다는 건물은 구조가 굉장히 독특하다. 가운데 홀이 지붕 끝까지 뻥 뚫려있고, 가장자리로 계단이 나선형으로 올라가며 층 별 전시실에 닿는다. 옥상에는 정원이 있고 외부와 연결되어있다.
1층 - 2층 - 3층으로 올라설 수록 전시관의 층고가 높으며, 동시에 전시된 작품의 규모도 위로 갈 수록 점차 커지게끔 배치했다.
굉장히 비실용적인 공간 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작품 사이즈의 시퀀스와 맞춰져 있는 걸 보니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고려한 의도일 수 있겠구나 싶다. 생각해보니 뉴욕 MOMA 도 공간 구성이 비슷했던 것 같다.
김환기 화백은 56넌부터 4년여간 파리로 문화 경험차 여행을 떠났다. 새로운 환경에서 타 작가들과 교류도 하고, 틈틈히 작품 출품도 하고, 여행도 즐기면서 자신의 정체성, 예술의 본질에 대한 성찰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이의 결과로 고국에서 애장하던 도자와 전통기물에 대한 그리움을 본인의 고유한 예술 정체성으로 삼았다.
달, 새, 우리나라 고유의 소재들이 작가의 작품에서 지니는 의의를 이번에 알게 되었다.
1층에는 그가 남긴 스케치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작품의 태초부터 완성되는 단계까지 어떻게 작품이 채워져 가면서 결국에 마무리가 되는지를 타임랩스와 같이 엿볼 수 있다.
이번에 집중한 그의 작품의 특징은 입자가 거칠다는 것이다.
큰 바탕을 메꾸는 데 있어서 멀리서, 또는 거시적으로 볼 때는 부드러운 통일된 느낌을 내뿜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다양한 색, 붓 방향, 그 와중에 틈틈히 보이는 채색되지 않은 빈 공간, 물감 두께 등에서 각자 입자간 차이가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다양하고 고유한 개성을 갖는 입자들이 한데 모여 거시적으로 하나의 부드러운 색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조화로우면서도 아이러니하다. (특히 환기 블루)
마치 연음에서는 부드럽지만 찰나로 잘라 잘 들어보면 날카로운 치찰음의 연속으로 구성된 바이올린 소리나 테일러 스위프트 목소리와도 같은 특성이라고 느꼈다.
또 그가 작품 속에서 면을 이루는 방식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다.
(통일된 색채를 뿜는 넓은 공간이되, 속의 객체들은 다양해야 면으로 보았다. 이렇지 않고 속이 균일하다면 아무리 굵더라도 나는 이를 선으로 보았다.)
가장 자주 보는 방식은 물감에 볼륨을 얹어서 울툴불퉁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조명이 없는 본 적이 없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이 기법 이후 조명을 비춤으로써 지는 그림자 등으로 대비가 더 노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듯하다.
두번째로는 옅은 색으로 시작해서 점차 어두운 색으로 반복해서 여러번 채색하는 방식이었다. 동시에 점차 얇은 붓을 쓰는 듯 하다. 그래서 짙은 색일수록 입자가 좁았다. 대신 마지막 너비가 제법 굵은 것으로 마무리 되는 작품도 굉장히 많았다.
마지막으로 캔버스 자체의 결이 거친 것을 사용해서 채색에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작가 특유의 면이 잘 표현되도록 했다.
고유한 요소들이 수없이 모여있는 모습은 나중에 전시관에서 소개된 그의 어록과, 기념품점에서 사온 그의 일기장 속 글에서 의도를 어렴풋이 가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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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본질과 고유성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그게 담겨야 한다.
68.1.23
나는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걸 계속 해보자.
68.1.26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 모두 다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68.05.01
오늘의 미술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가질 수 있는 모든 형태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서정적인 구상 표현에서 나아가 보다 보편적이고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새로운 비전의 예술적 실현이 목말랐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형상이 사라지고 응축되고 함축된 점, 선, 면의 추상으로 구성된 보편적이면서 심화된 서정의 세계가 표현되었다. 살아있는 세포처럼 부유하며 증식되는 전면점화의 점들은 명상의 무수한 편린이거나 강렬한 태양의 떨림이자 영롱한 성좌의 명멸하는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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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통해 국내 작품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 국내 화가롤 꼽으면 자주 언급되는 사람 중 한 분이기에 막연히 은연중에 높이 평가했던게 사실이다. 이번에 미술관에서 소개받은 작품과 설명 그리고 기념품점에서 구매한 그의 에세이집, 일기에서 알게 된 사실 덕분에 깊이 그와 소통한 느낌을 받아 만족스럽다.
앞으로 그의 작품을 마주하면 의미가 담긴 반가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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