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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기

배동신, 양수아 - 100년의 유산 @ 광주시립미술관

21/05/08

 

 광주에 들른 김에 시립미술관을 가 보니 배동신, 양수아 두 작가의 특별전이 진행중이었다. 서양화를 그린 작가들로 국내 2세대 화가에 속한다고 한다. (1세대인 김기창, 김환기씨 이후의 세대)

 먼저 배동신씨의 작품을 감상했다. 수채화를 주로 그린 그는 동양적인 요소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과 물의 비율을 통해 농담을 잘 조절하여 이용했다고 한다. 최근에 보았던 수채화 작품들은 굉장히 정교하고 치밀한 느낌이었는데, 그의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작품이 수채화로 시도한 추상화였는데 덕분에 여운, 여지가 많이 느껴졌다. 비워져 있는, 또는 물이 마른 공간의 옅은 물감 덕분에 그렇게 느낀 듯하다. + 붓 지난 자리가 굉장히 굵은 편이었다. 

 대체로 그의 작품은 선이 기본요소 역할을 했다. 다양한 선들이 모여서 그림을 이룬 느낌. 종래에 점이나 면 중심의 작품은 많이 보았는데,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처음 본 것 같다. 신선했다. 
 선들이 모인 방식은 특히 무등산을 그린 작품에서 각지고 복잡한 골짜기를 표현하는데 굉장히 효과적으로 느껴졌다. 대상의 특성과 기본 구성 요소가 잘 어울렸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모든 요소가 각진 것들은 아니었다. 

'한국의 정서는 기름보다는 물. 동양적 체질은 물이 많고 적음에 따라 무수히 변화하는 농담에 있다.'

무등산의 같은 구도를 60 ~89년까지 30여년에 거쳐 그렸다고 하는데 그 기간 사이의 작품 열두점 정도를 비교해서 볼 수 있었다. 
 먼저 60년대 작품은 하나로, 단단히 모인 느낌을 받았다. 이후로 70년, 78년 작품들은 여러개로 나누어 보이는데, 중간에 선이 아닌 점 등도 섞여서 물론 나쁘진 않지만 과도기인게 보였고, 84, 85년의 약간 개선을 거쳐 마침내 89년 작품에서는 대상이 하나인 동시에 그 속에 여럿의 구성요소를 아우르고 있는 듯한 완숙된 느낌을 받았다. 자연히 그릴 수록 더 멋진 작품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맨 초기의 단단한 이미지를 지닌 작품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양수아씨는 추상화로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다고 한다. 스케치 과정에서 단순화된 조형과 그 속에 담으려던 그의 생각을 매칭해볼 수 있는 전시품이 있었는데, 덕분에 관념에 대한 그가 바라보는 형상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마치 건물의 상세도와 건물을 함께 보고서 구조를 이해하는 느낌. 흔치 않은 드문 기회라서 반갑고 고맙게 보았다. 

그가 남긴 어록도 인상깊었다.

'예술, 인류의 조형 본능에는 두 가지의 흐름이 있다. 그 하나는 인간의 주위에 있는 물건, 또는 인간의 꿈이나 상사에서 나오는 물건을 재현하려는 요구에 근원을 둔 것이고 또 하나는 물체 대신에 기호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우주나 인간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요구이다.
 이 두개의 흐름은 아주 대조를 이루면서 동시에 나타나 수시로 일방에서 타방으로 급격한 전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구상과 추상이라는 오늘의 편의적 분류로서 이 광대현 조형 본능의 진폭을 걷잡을 수 있을까는 의문이다.'

일대기를 한 자리에서 다 훑을 수 있는, 작품 수가 아닌 내용으로 방대한 전시였다. 함께 속뜻을 소개받고, 속뜻이 어떤 과정으로 투영되었는지까지 투명하게 다 본 느낌이라서 전시를 본 하루 종일 머릿속에 작품들이 맴돌았다.

 숨어있던 보석들을 소개받은 느낌을 받아 오랜만에 굉장한 흡족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