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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기

시대의 얼굴 @ 국립중앙박물관

21/06/14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온 초상화들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입니다.
다양한 시점의 유명인사의 초상을 전시한다길래 시대별 구도나 악세사리, 자세 등 담는 특징의 트렌드를 느껴보는 재미가 있겠다 싶어서 관심두고 있다가 다녀왔습니다.

명성 - 권력 - 사랑과 상실 - 혁신 - 정체성과 자화상

위의 순서로 작품들을 모아두었습니다.


1. 명성

초상화가 남아있다는 자체만으로 명성으로 연결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설립 취지 자체도 단순히 초상화를 보관하는 것보다 대영 제국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얼굴로 남기고자 하는 명예의 전당 같은 역할이 더 컸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명한 사람들의 얼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뉴턴, 엘리자베스 테일러, 다이애나비 등등. 특이하다고 느꼈던 점 한가지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정면의 구도는 존재하지 않고 약간 얼굴을 좌측으로 기울여서 그렸다는 점이었습니다.
우측도 아니고 좌측면을 고집한 것은 관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왜 기울였을까를 잠깐 생각해보았는데, 정면으로 그리면 코나 눈두덩이, 뺨 등의 특징이 살지 않아 입체적으로 그릴 수 없기 때문에 더 분간이 안 가는 까닭인 듯 싶었습니다.
그렇게 두고 보면 피카소가 입체파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막연히 우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입체적인 특징을 포함하고 싶은 욕구를 한 걸음 더 내딛어서 반대편까지 보여줘버리는 그런 시도가 어쩌면 초상화 그리던 시절부터 이어진 걸 수도 있겠어요.




2. 권력

먼저의 명성 편에서는 초상화가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명성의 반증이 되었다고 한다면 다음의 권력 편에서는 거꾸로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위상을 세우려고 시도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헨리8세의 초상화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데, 그림의 사이즈는 작지만 그 화폭을 모두 담는 위압적인 풍채를 보자마자 아 이사람은 위압감, 압도감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싸우면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다음의 엘리자베스 1세의 경우 공작같이 화려한 드레스와 새침한 표정을 통해 자신의 특징을 우아함, 깔끔함 등의 화려함에서 표현하고싶어했던 것으로 느꼈습니다.



찰스 1세는 반면 부드럽고 유한 이미지를 자신의 초상화에 담고 있었습니다. 위엄을 세울 일이 없었기도 했고 항상 여유롭고 고민 없이 자란 그의 배경이 한 몫을 한 듯합니다.




반면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드 왕자의 경우 추방되어 로마에서 지내는 동안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는데, 자신의 지지세력의 지원을 바라는 듯한, 왕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잔뜩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뻘겋고 화려한 옷과 장식이 설명을 보기도 전에 의도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3편의 사랑과 상실에서는 크게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넬슨 제독의 얼굴만 덕분에 확인해볼 수 있었구요.



4편의 혁신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초상화를 담는 시도들을 조금 보았는데, 조각으로 남기는 경우, 티비 화면으로 남기는 경우등이 신기했습니다. 다만 좀 더 외향보다 추상적 특징을 담는 시도에 관한 작품이 더 많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 해 아쉬웠습니다.


마지막 5 정체성과 자화상에 대한 편에서는 작품 속에 상징이나, 간접적 메시지가 담긴 것들을 보여주었는데, 이 역시도 아주 깊이 메시지를 담지 않고 있는 모습이라서 크게 의미있게 보진 못했습니다.




다 보고 다시 입구를 통해서 나오는데 다시 한 번 다음의 질문이 눈에 담겼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나요?

여러분이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모습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오래도록 교류하던 사람들과의 헤어짐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잃는 실질적 죽음으로 헤어지기도 하고, 교류를 끊게 되어 정서적으로 죽음을 겪기도 하는데, 상실의 슬픔 속에서 앞으로 맞이하게 될 나의 죽음을(실질적 죽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문득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이미 떠난 사람들이고 마치 성적표처럼 초상화가 느껴지면서 나의 성적표는 어떻게 될 것인가도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연초마다 올해의 계획을 세우다 보면 대다수가 작년에 마무리되지 못하고 스르르 밀려넘어오는 것을 봅니다. 물론 그 중에는 아직 시점이 되지 않아서 좀 더 노력이 필요하여 다음년에는 자연스레 순리에 맞게 완성되게끔 기다리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게으름으로 치일피일 미루다가 고여있는 것도 많습니다. 지금 급작스럽게 삶이 마무리된다고 가정해본다면 지금 펼쳐진 페이지가 마지막 페이지로 인식될텐데 그렇다면 저는 저 미루다가 고여있는 부끄러운 미완성된 계획들이 굉장히 아쉬울 것 같아요. 제 것이 되었을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은 것들이니깐요.

그래서 이번 기회로 자극을 받아 좀 더 매진하여 풍성한 결과로 마무리하자라는 의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