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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기

모험, 나의 선택 by 헤르난 바스 @ 스페이스K

21/05/23

 

 마곡의 스페이스k 라는 곳에서 진행중인 헤르난 바스의 개인전을 보고 왔습니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화가인데 너무 현대미술스럽지 않은 데다가 명성도 꽤 많이 쌓은 작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굉장히 드물기에 기대가 컸습니다. 
마침 다녀온 분들의 평이 굉장히 좋더군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다녀오고 나서 개운하지 않은 여운이 남긴 했지만요.

미술관 건물에 대해 : 

 제가 다루는 건물들은 돈돈돈 거리는 바람에 초고효율을 추구하여 공간의 여유가 거의 빵에 가까운데 반해 미술관 건물은 빈 공간들이 굉장히 많아서 왜인지 모를 질투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빈 공간들에서는 낭비라는 느낌 대신 아우라가 느껴졌어요. 그 왜 선물 포장하는 얇고 가벼운 포장지에서 묻어나는 속에 무엇이 담겼을까 상상하게 되는 기대감정도? 
 품은 공간의 컨셉은 저번에 다녀온 환기미술관과 비슷하게도 했지만, 자유로운 외형 덕분인지 유독 건물 자체가 아름답다고까지 느끼기도 했습니다. 환기미술관도 내부는 굉장히 여유로웠지만 창고같은 외관이 내부와 너무 이질적이었거든요..

 소개에 따르면 그는 그간 직접 경험했던 것들 / 영감받은 종교, 신화, 문학 등의 요소들을 재구성하여 스토리텔링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등장하는 소재 하나하나를 힌트 삼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내야 하는, 퀴즈 느낌이 났습니다. 다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미드를 중간 에피소드부터 시청하게 되면 전후사정을 모르는 까닭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작품들이 사족을 접해야 취지가 이해되는 암호같은 속성이 있어서 답답했습니다. 그렇다고 테크닉에 (물론 엄청 대충 그린 작품은 절대 아니지만) 굉장히 집중해야 하는 부류의 그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이도저도 아닌 느낌을 받아 아쉬웠습니다.

 홍보 포스터에 등장했던 분홍색 새가 등장하던 그림만 큐레이터의 설명을 곁들여 감상해보았는데  긴 시간동안 큐레이터의 말을 들어야 내용이 요소별로 취지가 이해되더라구요. 음… 작품 감상을 위해서 작품보다 큐레이터의 입에 더 집중해야 하는 모습이 제게는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너무 비뚤게 바라보는걸까요?

  그래서 이내 작가의 본의를 알아차리려는 시도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나름의 상상을 통해서 저만의 시각으로 작품 감상을 한참 하다 돌아왔습니다. 다행이 굉장히 열린 결말처럼 요소들이 가득가득해서 그렇게 혼자 짐작하는 방식의 감상도 재밌더군요!

요컨대 후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누구든지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보편적 미, 또는 주제가 작품 속에서 보였나?
 -> 노우. 배경지식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관대한 폐쇄적인 성격을 나는 느꼈다. 고유한 특성 vs 보편성에서 전자에 비중이 상당히 쏠린 느낌이었다. 이 관점에서는 좋은 인상을 느끼지 못했다.


2. 주요 주제부 외에 나머지 공간은 어떻게 채워졌는가
 -> 태그에 제목과 함께 적힌 제작 시기를 함께 참고하면서 보다가 한 가지 재밌는 시점에 따른 변화를 발견했는데, 초기작품에는 주제부 외 나머지 부분을 군복의 카모플라쥬와 같이 얼룩덜룩한 무늬로 상당 부분을 채웠다가 나중 가면 갈 수록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은 소재라고 하더라도 무언가 유의미한 형태로 칸을 채웠다는 점이었다. 둘 중 차라리 나는 초창기의 얼룩덜룩한 채색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빈 공간을 없애려고 억지로 연관이 덜한 요소들을 배치해서 전체적으로 산만해지는 것보다는  비록 형태가 담기지 않았더라도, 울긋불긋한 패턴과 색조합에서 풍기는 뉘앙스를 이용하는 동시에 배경의 역할을 통해 주요 소재에 집중할 수 있게끔 도움주는 방식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특징을  초반에 찾았을 때는 꼼수같이 보였는데 나중에 둘을 다시 비교해보니 굉장히 멋진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3. 기타 주목할 만한 상황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 의도가 잇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제목이 불명확한 점, 등장인물의 표정이 애매모호한 점, 알 듯 말 듯한 느낌에서 생기는 여지가 그나마 그의 작품에서 내가 느낀 매력이었다. 뭔가 명확한 사물이 담겼지만,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그래서 현대미술의 추상적인 부분을, 그리고  인상주의의 정물화에서 사실적 표현을 일부씩 뗴어와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합한 듯한 감자토마토(뿌리는 감자, 과육은 토마토!)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음에 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되게 신선했다.

나의 취향과 같은 방향인지에 관계없이 새로운 시도를 볼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