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

달과 6펜스 / 인간실격 - 서머싯 몸, 다자이 오사무

21/04/11

 

 주로 정보를 얻는 목적으로 책을 본다. 이따금씩 염증이 느껴져 효율이 곤두박질 칠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그간 주변에서 들은 에세이나 소설을 가볍게 읽는다. 무엇인가를 얻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은 채 후속적인 무언가를 해도 되지 않는다는 자유로움으로 가볍게 읽는데, 최근에 추천을 받게 되어 읽은 이 두 소설들은 기대하지 않은 여운이 굉장히 짙었다. 

 내 삶을 멀찌감치 서서 가만 보면 매 순간 끊임없이 2~3갈래길을 만나고 그 중 한 가지 길을 골라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학생시절 비슷한 경험과 생활을 하던 친구들에게 당시에는 크게 이질감을 느끼지 못 하다가 최근에 이따금씩 예전 친구를 만나면 그간 선택했던 갈림길의 차이가 그간 워낙 커진 탓에 굉장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취향, 삶의 환경, 사상 등 서로 가진 개인적 가치들이 굉장히 뚜렷해지고 각각 매우 다양해진 모습을 본다. 물론 갈래길에서 멈춰버린 사람, 잘못된 선택을 거듭하여 변변치 않은 길로 접어들어 뚜렷하지 않고 탁한 색을 지닌 사람들도 많이 본다.
 두 소설에서 본 스트릭랜드와 요조에게서는 유년시절 또는 사회 초년생 시절 즈음 선택했던 어떤 갈림길 대신 다른 갈림길을 선택했더라면 나의 모습이 되었겠다 싶은 느낌을 받았다. 가끔씩 궁지에 몰리거나, 골몰중인 일이 있으면 한 번쯤 굉장히 극적인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미래를 상상해보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더라면 살았을 삶을 이 둘이 사는 듯 싶었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돌연 현실적인 것들을 모두 집어던지고 (6펜스) 자신이 꿈꾸던 것만을 좇아 (달) 추구하고, 만족스럽게 삶을 사는 모습에서 내가 언젠가 해외현장에서 복귀한 시점에 충동적으로 퇴사하고 내가 하고싶던 것들을 해버릴까 잠깐 고민하던 나를 발견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만)에 집중하던 그의 모습, 남들의 시선에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당당히 달려 나가려는 자세 등등에서도 나와의 공통점을 느꼈기에 더 몰입했나보다.
 요조에게서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면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선택 하나하나를 바라볼 때마다 남일같지 않았다. 거기에 남들을 웃기기 위해서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일부러 하는 등의 모습에서도 동질감을 느꼈다.
 인간실격을 읽고 나서 뭔가 이유를 명확히 댈 수 없는 심란함을 느꼈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심리학적으로 요조의 상태를 분석하는 학술지도 몇 가지 보여 추가로 읽어 보았다. 가장 절대적이고 깊어야 할 유대를 제공할 가족의 부재로 인해 유년시절부터 인간과의 관계에서 고립된 탓에 사람 자체를 믿지 못하게 되어 결국 저렇게 나쁜 길에 접어들었다고, 어린 시절 응석의 부재로 인해 그렇게 된 거라고 분석하고 있었는데, 일리가 있다.

 주변 사람들을 크게 거울과 풍경화 두 부류로 나눈다. 내가 이전에 벌였다거나 아니면 앞으로 벌일 수 있는 과오를 내게 보여주는 사람은 내게 거울의 역할을, 반대로 선망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내게 멋진 선례가 되어주는 사람은 내게 멋진 풍경화 같은 역할을 하는 식이다. 두 경우 모두를 간접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주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 가상의 인물에서 각각 거울과 풍경화를 발견하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