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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수상록 - 베이컨

21/01/13

 

 순발력이 나쁜 까닭에 의사를 표현할 적에 글로 제시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더 선호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전 여러번 뜯어보면서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정리하고, 강조할 곳을 짚는 등 말로 했으면 순식간에 해결해야 할 것들을 큰 호흡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정성을 쏟는 만큼 상대에게 전해질 나의 진지함도 구술보다는 훨씬 더 많이 쌓을 수 있다.

 철학적이거나 진지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교류할 기회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아무리 많이 생각해본 주제를 말하더라도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표상을 두서없이 뱉어내고 나면 내가 복기해봐도 이해되지 않기 일쑤다. 그래서 지금 기준으로 내가 꼽는 주요한 주제에 대한 나의 입장을 진지하게 일목요연하게 적어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참고차 저명한 사람들의 수상록을 찾아다가 읽고 있다.

이번에 본 수상록의 저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16세기 인물로, 대법관을 지냈으며 철학자이기도 과학자이기도 하다. 경험주의로 명성이 높다. 말년의 시점에서 한 번에 모든 주제를 담았던 몽테뉴 수상록과 달리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있다고 한다. 주제별로 시점이 매우 다르다. 가령 교육에 대해서라는 내용은 그의 청년시절 적힌거라고 전하며, 정치에 관하여, 인간관계에 관하여 등은 은퇴 이후 노년에 이르러 추가되었다고 한다.

다음의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진리 / 죽음 / 종교의 통합 / 복수 / 역경 / 위장과 가식 / 어버이와 자녀 / 결혼과 독신생활 / 질투 / 연애 / 높은 지위 / 대담성 / 선과 천성의 착함에 관하여 / 귀족에 관하여 / 반란과 소동에 관하여 / 무신론에 관하여 / 미신에 관하여 / 여행 / 통치 / 충고 / 지연 / 교활 / 자기 자신을 위한 지혜 / 혁신 / 사무의 신속 / 현명하게 보이는 것에 관하여 / 우정 / 지출 / 왕국과 국가의 참된 위대성에 관하여 / 건강법 / 시의심 / 담화 / 식민 / 부 / 예언 / 야심 / 가면극과 축하행렬 / 인간의 본성 / 습관과 교육 / 행운에 / 이자 / 청년과 노인 / 미 / 불구자 / 건축 / 정원 / 교섭 / 추종자와 친구 / 청원자 / 학문 / 당파 / 의식과 예의 / 칭찬 / 허세 / 명예와 평판 / 사법 / 분노 / 사물의 변천 / 풍문에 관한 수상의 단면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 여행에 있어서 사전 준비의 필요성 등에서 공감했고,  노년과 유년시절을 안정과 창의성 두 특성이 각기 우세하는 시기로 구분하는 점에서는 신선한 관점으로 느끼기도 했다. 충고를 신뢰의 최고점으로 짚어내는 부분에서는 마침 골몰하고 있던 주제였던지라 반갑기도 했다. 그 외에 담론을 이야기하는 항목에서는 내가 가벼운 이야기를 너무 낮게 보았던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해보기도 했다.

그가 인생동안 쌓은 여러 의견을 참고할 수 있었다. 다만 기법적인 면에서는 특정 주제에 대해 본인의  의견이 뚜렷하지 않고, 근거 제시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다음 수상록으로는 친한 친구에게 빌려둔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읽어보려고 한다. 잠깐 읽었는데 주제로 묶여진게 없이 산발적인 인상과 함께 굉장히 깊은 감정이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그전 것들과는 방식이 매우 달라보여서 기대된다.


책갈피 ---------------------------------------------------------

죽음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을 수반하는 것들이 우리를 겁내게 한다. 신음소리, 오뇌, 창백한 얼굴 등등이 죽음을 무서운 것으로 보이게 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은 죽음의 공포를 눌러 극복할 수 없을 만큼 약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 둘 만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죽음과의 싸움에 이길 수 있는 수행원을 많이 거느리고 있을 대에는 죽음은 그처럼 두려운 적은 아니다. 예컨대 복수심은 죽음을 극복하며, 사랑은 죽음을 가볍게 생각케 하며, 명예심은 죽음을 영망케 하며, 바탄은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게 하며, 공포는 죽음을 앞질러 누리는 것이다.



충고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의 최대의 신뢰는 충고를 주는 신뢰이다. 그러므로 충고자는 어디까지나 신의와 정직을 견지해야 한다.





나는 선을 타인의 행복을 바란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담화에 대하여

분별 있는 담화는 웅변 이상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에 들도록 말을 하는 것은 달콤한 말이나 순서 있게 말하는 것보다 낫다. 좋은 이야기도 오래 계속되어 좋은 대구가 없으면 자기의 둔감함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좋은 대답을 하거나 맞장구를 치더라도 이야기가 잘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자기의 천박함과 박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치 우리들이 짐승들에게서 보는 것처럼. 즉 달리는 데는 가장 약한 것들이 방향을 바꾸는 데 있어서는 가장 재빠른 그레이하운드 사냥개와 토끼와의 관계와 흡사하다.
 이야기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지루한 일이지만 전연 늘어놓지 않는 것도 퉁명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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