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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20/03/27

 

2000년대 초에 나온 소설인데 가볍지 않고 작가의 실생활이 많이 가미된 어쩌면 수필로도 보이는 정성스럽고 전문적인 느낌이 짙게 나는 작품이었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주인공이 집에 피아노를 들이게 되면서 피아노 구매처인 공방의 주인과 친분을 쌓으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소설은 ‘일어났을 법한 사건에 대한 글’이라고 대체로 정의되는데, 이 소설은 왠지 작가의 경험담이 거의 98%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하다.

피아노에 대한 그의 방대한 지식이 돋보이며 소설 내용과 잘 어울려있다. 
피아노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30 ~ 2000헤르츠의 음역대를 쓴다는 점, 7과 ⅓ 옥타브 등) 에라르, 플레옐, 브로드우드, 스타인웽, 슈팅글, 파울리니 등의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어 반갑다. 
나는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줄거리 외에도 소재를 통해 얻는 정보들도 재밌게 보는 편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피아노에 관심이 크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이게 웬 자기가 피아노 잘 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담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드라마, 광고, 소설 등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서양 - 한국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인물-oriented인지, 사건-oriented인지이다.
내가 접했던 한국 작품들은 대개 따옴표로 시작하는 인물간의 대화가 주를 이루고, 사건 전개도 그 대화를 통해 이어나가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요 흐름이 인물 개개인의 마음 속 심정에 의해 진행되는, 그래서 1인칭 시점이 되게 많은 느낌인 반면, 
서양의 미드들과 소설은 사람 역시도 부제 중의 한 종류일 뿐 전체적 흐름은 감독(작가)에 의해 서사되는 듯한, 그래서 읽는 내내 헬리캠에 타서 저~ 위에서 무대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의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다. 이 소설도 아무래도 이 분위기를 많이 느꼈다.
심리가 동화되는 느낌과 마음속의 감동을 위해서라면 전자가 더 효과적이겠지만, 난 그럼에도 대체로 이 소설과 같은 전지적 관점이 더 맞는 것 같다. (예전에 소설 작문 교양 수업때 단편 소설을 써본 적이 있는데, 따옴표를 이용해서 대화를 실제 대화처럼 적는게 나는 너무  가려워서 결국은 대사 한 마디 없는 소설을 써내기도 했다. 쓰는 취향 읽는 취향끼리도 닮나보다.)

되돌려보면 막상 묘사 등이 아주 상세한 것 같지 않은데 이미 내 머릿속에는 피아노 공방의 내부 구조와 뒷방에 늘어진 수리된 피아노들이 훤히 그려져 있다. 주인공의 삶은 안락한 가정과 본인이 희망했던 직업 (심지어 글쓰는 직업이다.), 피아노 연주가 취미인데다 집에 그랜드피아노도 있으며, 친한 지인들 중에 피아노 전문가들이 다수 있는 삶 등 내가 꿈꾸던 완벽한 삶이다. 그 덕분에 더 몰입해서 주인공에 나를 투영하며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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