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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Whanki in new york - 김환기

21/04/27

 

김환기씨 작품을 맨 처음 접할 때는 굉장히 고지식하고, 엄한, 완벽주의자일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뿔테 안경에 희끗하고 곧은 표정, 단호해보이는 외형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전시관에서 자주 접하는 그의 작품 속 평온한 느낌을 받은데다가 언젠가 한번 지인과 나눈 편지글을 보았을 때 느낀 그의 온기에서 굉장히 깊은 감수성을 느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의 글을 몇 점 접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는데 마침 주말에 방문한 환기미술관에서 그의 에세이를 접할 수 있었다.

에세이 외에도 그가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시절 남긴 일기가 있었는데, 홀린듯 잠깐 훑어보고는 가격도 안 보고 바로 집어서 결제를 해버렸다.

 

63년 10월 뉴욕에 도착할 당시부터 부터 74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남긴 그의 일상을 담은 소중한 기록이다. 

 

낯익은 지명(베어마운틴, 51번가, 소호 등등)과 뉴욕에서 쉽사리 접할 수 있는 물건, 그리고 외국인으로서 뉴욕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동시에 그 와중에 만나는 친한 지인들과 나누는 시간에서 느끼는 친밀감 등 모두가 내가 예전에 잠시 지낼 동안 느끼던 그것들과 굉장히 닮은 탓인지 마치 그를 언젠가 한번 지나면서 마주쳤을 것 같은 느낌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작품에 대한 내용은 자세한 내용 대신 아교 prime작업을 했다거나, 캔버스를 얼마 길이만큼 뗴 왔다던가, 며칠을 밤을 새 연달아 작업을 했다던가 하는 내용까지만 적혀있었지만, 일상에서 그가 느끼던 것들이 가공 없이 담겨 있었고 덕분에 마치 막역한 지인과 일상을 나누는 듯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손목시계 시간을 맞추다가 다이얼을 고장낸 것을 두고 깊이 자책한 일, 애완묘 노랑이와의 일상, 등산이나 할까 해서 다녀온 베어마운틴, 지인들과 저녁식사 나눈 일 등등)

 

초창기 일기에서는 굉장히 자세하고 깊은 감성이 드러나다가 나중에 갈 수록 피로감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단조로운 일상에 젖어들어서인지 점점 기록이 줄어드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잇었다.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내용도 볼 수 있었는데 74년 7월에 가까울 수록 이가 점점 빠지고, 피로를 회복하지 못하고 내리 쉬어야 했던 날들 등 점차 노쇠하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면서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7월 12일 오후에 수술이 잡혀있다고 적은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데, 그 뒤의 여백도 마치 결론을 스포당한 드라마의 결말을 보는 느낌이라서 슬펐다.

 

당대 작가와 교류하며 기록한 내용(로스코와 교류하던 내용, 그가 골초라는 이야기 등) 자신의 작품이 미술관으로부터 판매되었는지를 계속해서 체크하는 모습, 안도하는 모습 등등, 자신의 작품에 대해 길가던 사람으로부터 칭찬받았을 때 인정받은 느낌에 대해 굉장히 흡족하던 모습 등도 굉장히 친숙했고,

 

아폴로호의 달 착륙 소식,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샤를 드골, 로스코,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등 유명 인사의 죽음 등의 역사적 기록이 적혀있는 것도 살펴보는 재미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