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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기

한국의 수묵채색화 @ 인사 아트센터

20/02/14

한국 수묵채색화라는 주제로 가나문화재단에서 소장중인 한국 근현대사를 꿰뚫는 동양화 미술품들을 3개 층에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전시품이 굉장히 많아 제대로 보려면 2시간은 잡고 가야 할 것 같다.

1층:’청전 이상범’(그의 산수화 전시),
2층:’한국화의 전성기’(김기창, 박래현, 장우성, 박노수 화백의 수묵담채화 전시),
3층:’한국화의 새로운 모색’(박생광, 권영우, 이응노 화백의 추상화 작품 전시)

1층
최소한의 색깔로 표현된 산촌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걸려있다. 경계가 없게끔 처리하여 경계를 그린 모습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첫 작품은 운무가 습기를 가득 뿜은 장마철 지리산에서 본 듯한 구름에 드문드문 가린 산의 분위기를 굉장히 잘 담고 있었다. 기와지붕의 경계는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계가 굉장히 울퉁불퉁하고 불규칙적으로 보였는데, 흐린 날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거나 먼 발치에서 굵직한 선 위주로 보이는 모습을 표현한 듯했다. 가까이서 보면 침엽수를 표현하는 날카로운 느낌의 붓자취가 의미없는 글씨처럼 보였지만 두걸음 뒤에서 보면 경사지에 자란 소나무가 되었다.
계류의 물결을 표현할 적에 얇게 검정 선을 불규칙적으로 표현해두었는데 예전 모마에서 보았던 전시품이 하나 떠올랐다. 빨간색을 표현하는 법 이었던가 하는 제목이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빨간색은 그냥 평범한 빨간 바탕 위에 레이스 무늬 흰 천을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빨간색의 색감이 아닌 배치와 무늬 등 다른 요소를 통해 표현하는 방법에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이 계류의 물결에서도 검정색 불규칙적인 선을 통해 하얀 물결이 더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병풍 작품 중 하나는 보통 산을 채색하고 하늘을 비워두는 것을 반대로 하여 하늘을 검게, 산의 윤곽과 골짜기 외에는 공백으로 두었는데 기억에 남는다. 산의 빈 공간에서 이미지가 표현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어쩌면 집에도 하나쯤은 걸려있었을 그림이지만 이제까지 이렇게 조곤조곤 뜯어보면서 감상한 적이 없었기에 낯선 느낌을 받았다. 정교한 표현을 뽐내는 작품 만큼 순간적인 특징을 단색과 여백을 통해 극대화 하여 그 때의 시각적 특징보다도 분위기를 가두어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왼 쪽 또는 오른쪽에 치우친 산 배경으로 가운데 집을 품으며 앞으로는 계류가 흐르는 공통적인 구조도 눈에 띄었고, 조명을 통해서인지 더욱 더 하얗게 보이는 사람의 옷이 굉장히 신기해서 칠을 한 것인지, 조명 이펙트인지를 한참 쳐다보았지만 구분하지 못했다.

2층
박노수 화백의 채색된 그림을 보는데 이런 종류에 동양화가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놀라웠다. 파란색과 청색이 옅게 감도는 작품들을 연달아 만났다. ‘세상만사 천변만화 하는 구름 같으니 뜬 구름 같은 인생이 한바탕 꿈이로다.’ 라는 글귀가 적힌 작품에서는 글귀를 읽기 전에는 의미 파악이 되지 않던게 무언가 공감대가 닿을까말까하는 느낌이 글귀를 읽고서 느껴지기도 했다. 기마행이라는 말을 타는 모습의 작품은 작가의 자화상이라고 하는데 용량이 큰 이미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야만성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다는 장우성 화백의 춤추는 유인원이라는 작품에서는 침팬지를 동양화의 소재로 사용되었더다는 점에 신선한 느낌이었고 동시에 세밀하게 표현된 각 부분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그 뒤로 운보 김기창 화백의 작품이 있었다. 그 분의 작품을 직접 보는 것은 만원권 지폐 이후 처음이었다. 김기창 화백의 작품은 이 전에 봤던 작가들보다 픽셀이 훨씬 큰 느낌이었다. 오밀조밀보다는 크고 선명했다. 그림이 잘 생겼다라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그 분의 추상화에서는 설명을 통해 작업 순서까지는 이해했지만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신건지 이해하는데는 실패해서 아쉬웠다.
우향 박래현 화백 역시도 이전까지는 알지 못하던 분이었다. 동양화로 추상의 영역을 시도하신 선구자이신 듯했다. 작품16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이 전시회 통틀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책으로 배우기를 현대미술을 보며 무엇을 그린건지를 묻는 것은 큰 실례라고, 왜냐하면 미술품 자체가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인상깊게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 설명을 보지 않고서 작품을 보았을 때는 번지고, 엉뚱한 주황색 무늬가 산재되어있는 독이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작품이었는데, 먹을 아교에 녹여 퍼지는 무늬를 표현한 것과, 주요 선들 간 간격을 적당히 두기 위해 배치한 주황색, 검정색, 흰색 선 그리고 순수한 추상성에 대한 설명을 보고서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하는 모습,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 아교를 사용하는 신선함에서 감탄스러웠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3층
박생광 화백의 불교 풍 그림부터 소개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일본화를 배우셨다고 하고, 그 화풍에 불교, 설화, 민화 등 우리나라스러운 것들을 소재로 다루었다고 한다. 퓨전의 느낌이었다. 선명하게 경계를 선으로, 그것도 굉장히 눈에 띄는 경계를 만드는 점이 이번 전시에서 본 작품과 가장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색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하여서 같은 색 별로 레이어가 이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절의 벽화 등에서 보던 양식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단기로 작품마다 작업년도를 적어둔 것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권영우 화백의 단색화를 만난 시점에는 전시 마감에서 15분 전이었다. 서둘러 사진을 남기고 다시 바라보는데 일단 예상치 못하게 작품이 굉장히 커서 압도되었다. 잠깐 다니던 미술학원 선생님께서 사이즈가 그래도 좀 커야 작품이 있어보인다고 농담삼아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와 닿았다. 배경이 커야 요소도 커지고, 그리고 아무래도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니 더 표현할 수 있는 걸음이 커질 수 있는 것 같았다. 단색을 사용하되, 입체적인 방식_종이를 뚫거나, 찢거나 하는 등_을 표현하는 느낌이었다. 오래 바라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다시 올까를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그 뒤로 만난 이응노 화백의 작품 중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예전에 만났던 군중 작품의 비슷한 갈래를 다시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추상적인 패턴들을 보면서 집의 텅 빈 벽지가 이러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첫 작품을 보는데 스피커에서 내가 오랫동안 찾아온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덕분에 더 극적으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서 전시를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색화 한번 보고싶은 생각에 가볍게 가서는 왕 보물을 만나고 온 느 낌에 너무 만족스럽다. 특히 여백을 어떻게 채우는 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동양화가 다루는 범위의 폭이 내가 인식하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매력을 많이 느끼기도 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