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3
청년 쇼팽이 파리로 진출한 계기중에는 피아니스트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던 당시 상황도 한 몫 한 듯하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1830년대 파리의 인구가 100만여명이었을 당시 파리 내의 피아노는 7만대가 넘었다고 한다.
녹음기의 등장 전이었기 때문에 대중들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공연장으로 발걸음해야 했다.
당시 피아니스트는 지금의 아이팟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이 말을 접하고서는 더 뜸하게 공연장을 찾게 된 것 같다.
왜냐하면 소리 뿐 만 아니라 영상까지 더해진 매체들 덕분에 굳이 공연장을 가지 않고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리시차가 오랜만에 방한한다고 하여 관람하게 되었다. 그녀의 공연은 2011년 뉴욕, 2013년 여수 예울마루 다음으로 세번째이다.
마침 올해 안으로 어느정도 완성도를 목표로 Chopin Op 10 No 1 / Op. 25 No. 1 / Rachmaninoff Prelude Op. 23 No. 5 세 곡을 다시 연습중이었는데 유튜브에서 보던 발렌티나 특유의 피도 눈물도 없는 칼박자와 포드 머스탱같은 충분한 힘 기반으로 꾸미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지라, 페달링, 타건 방법 등을 눈여겨보기로 하고 예약하게 되었다.
건반과 함께 페달을 보고싶은 마음에 합창석 중앙에 가까운 좌측 제일 높은 좌석에 단망경을 들고 갔다.
합창석 맨 윗줄 기준으로 23번에서 29번정도 까지는 페달과 건반 모두가 충분히 보이는 듯하다.
사실 좌측 좌석 전부 건반은 어느정도 보인다.
하지만 페달은 저 6자리와 그 앞 3줄 정도에서만 볼 수 있다.
소프트 페달은 특히 드레스를 입은 여자 피아니스트의 경우 발이 가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페달이 아닌 페달 끝부분에 연결된 Rod 밑바닥이 들리는지 아닌지를 자세히 봐야 하는데 그 시야가 나오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G-4-25. 최고의 자리였다.
2009년도 즈음 어쩌다가 발렌티나가 예술의 전당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고 앵콜곡으로 프렐루드 5번을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인간 메트로놈처럼 강렬한 세기의 변화가 전혀 없이 4분여의 시간 동안 폭격기 소리를 굉장한 속도로 쳐 내는 모습이 그녀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게는 클래식 곡을 맨 처음 접할 때 들은 곡이 그 뒤에 듣게 될 다른 모든 곡들을 판단하는 잣대, 편견이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덕분에 내게 라흐마니노프 = 발렌티나 리시차 = 빠르고쾅쾅쾅 이라는 공식이 이때부터 성립된 것 같다.
그 후 작은 소리의 음역을 또 다시 쪼개서 미묘하게 피아노 소리로 만들어내는 쇼팽류 곡들 쪽으로 취향이 변하기 전 까지 나는 거의 항상 발렌티나의 실황 연주만을 듣게 되었다.
- 타건 관찰
연주 시간 내내 거의 손에 집중을 거의 했는데, 팔목과 손바닥은 시종일관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손가락 끝 두 마디가 주로 열심히 움직였다. 그러다가 여린 음을 표현할때는 손가락 끝부터 손바닥 끝까지 하나가 되어 살포시 타건했다.
흔히들 달걀 쥔 모양을 유지하라고 하는데 여린 음 표현시에는 손 전체가 거의 건반에 붙다시피 했다.
모티브가 아닌 옥타브는 마치 건반을 반만 누르는 듯한 모습이 보였는데, 분명 반만 누르면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을텐데 어떻게 소리가 난 건지 신기했다. 동시에 소리의 균일함에서 느껴지는 연습량에 경의감이 들었다.
타건시에는 타건을 위해 손가락을 건반 표면에 붙이는 단계, 그리고 실제로 힘을 주어 타건하는 단계로 철저히 나눠졌다.
붙이지 않고 타건하면 소리가 균일하지 않게 들리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이음줄로 표현되는 곳에서 손가락은 타음 타건할 위치를 미리 대고 있거나, 이미 발현했음에도 잔음을 위해서 떼지 않고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구절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주 선율인 모티브에만 힘이 들어가고, 나머지에는 존재감만 느껴질 뿐 모티브를 위해서 배경사진같은 역할만 할 수 있게 조용하게 처리되는데 음의 크기 조화가 굉장히 조화롭게 잘 이루어졌다.
이건 아무래도 천천히 손가락 손가락별로 템포를 천천히 해서 오랫동안 다듬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쿠스틱으로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다만, 템포가 빠른 부분에서는 음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빛나지 못하고 굉장히 뭉개졌다.
유튜브에서 보던 것과는 차이가 너무 커서 의외였다. (내가 정제설탕을 너무 많이 먹었나보다.)
무대 반대편이라서 피아노 반사판에 가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은건가 싶었는데, 그 원인은 아닌 것 같다.
- 페달 관찰
잔음을 제거하기 위해 마디 중간중간마다 마지막 음이 끝나고 다음 음이 시작하기 직전에 얼른 떼었다가 다시 붙이느라 오른발은 댐퍼 페달에서 거의 내려오지 못했다. 짐작했던 순간과 실제로 발렌티나가 페달을 떼는 순간이 어느 정도 맞았던 것 같다.(으쓱했다)
소리 크기를 죽이는 소프트 페달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빈번히 사용해서 의외였다. 댐퍼 페달에 비해 살살 밟고, 또 드레스에 가려 있어서 뒤에 rod가 움직이는 걸로 간신히 확인이 가능했다. 페달이 들어가는 부분 나오는 부분을 관찰하는 재미가 좋았다.
후감
목적을 띄고서 공연장을 가보니 굉장히 유익했다.
새롭게 접하는 작품도 더 진지하게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스타인웨이의 아름다운 소리도 오랜만에 직접 보면서 들으니 반가웠다.
중간에 발렌티나가 마스크 쓰고 공연하는 자신의 처지에 슬픔이 차올랐는지 오열하며 잠시 무대 바깥으로 나갔다 돌아왔는데 (키예프에 어머니께서 혼자 계시는데 뵈러 갈 수가 없어서 걱정에 격한 감정이 솟아올랐다고 기사에서 전해들었다.) 이런 요소들도 직접 보는 공연에서만 겪을 수 있는 요소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연에 대해 다른 분께서 느낀 점을 여쭙고 나눌 수 있었던 경험이 굉장히 소중했다.
올해는 공연장을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햄머클라비어는 사실 거의 들어보지 않은 곡이었는데, 중간 중간의 멜로디가 가요 발라드 등에서 몇 번 들어본 듯한 것들이 몇개 느껴져서 관심이 갔다. 베토벤의 소나타는 줄거리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제까지 거의 즐겨듣지 않았었는데, 당분간은 계속 돌려서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러닝타임이 50분 되는 듯하던데 얼마동안 들어야 줄거리가 느껴질지 기대된다.
www.sac.or.kr/SacHome/perform/seatGuide2?place=concertHall#none
(공연장 좌석 소개 : 뷰도 따로 제공을 해주는데, 갔다오고 나서 알게 되었다.)
www.youtube.com/watch?v=4QB7ugJnHgs
(발렌티나를 처음 접하게 된 프렐루드 영상)
www.youtube.com/watch?v=ROVy9PC8_8A
(발렌티나의 에튀드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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