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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기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 롯데뮤지엄

20/11/22

내가 판단하는 예술의 가장 큰 의의는 메시지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역할이다. 이 기준으로 대부분을 바라보고, 앞으로 내가 가지게 될 나만의 그릇을 만드는데 참고하고 있다.

희귀한 기회로 누구나 봐도 아름답게 어울리는 메시지와 그릇 쌍을 만날 때도 있고, 메시지에 비해 그릇이 너무도 작아 장황해지거나, 지루하거나, 아니면 어울리지 않아서 조화롭지 못한 사례들도 무척 많이 본다. 이 조합의 적절함 여부를 나만의 잣대로 비교해보는 재미가 굉장하다.

최근 현대에 제작된 미술작품들을 보면서 하나 더 느낀 것이 있는데 바로 그릇의 높이가 높은 작품들의 경우에는 그만큼 나도 키가 높아야 속에 시선이 닿는다는 점이었다. 그릇의 옆구리에 가려 내용물을 볼 수 없다면 나에게 작품은 그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여느 값어치 없는 사물과 다름 없고, 예술품에게도 나는 되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될 뿐이다.

바스키아전은 아마 친구들의 제안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 스스로 찾아가진 못했을 것이다. 나와 맞지 않을 거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어놓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본질보다 주변 명성에 의해 너무 부풀려진 상업성이 노골적인 작가로만 내게는 보였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비춰진 낙서와 같은 그림에서는 진지함도, 기법도, 특히 메시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편견은 내 키가 짧은 탓이었다. 관람 전후의 평가가 이렇게 크게 뒤바뀌었던 작가들이 그 전까지 있었는지 모르겠다.

전시전 초입부터 마구 어지러진 작품들이 펼쳐져 있었고, 그리고 대부분 굉장히 거칠고 즉흥적으로 보였다. 특히 문자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어있었다. 개중에는 아예 문장이 적혀있는 경우도 있었다. 대개의 추상미술은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저마다의 방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저며두는데, 그 기법이 없는 노골적인 작품으로 처음엔 오해를 하고 가벼이 보았다.

SAMO for an urban redneck / SAMO as an end to the neon fantasy called life

A, O, I 등 알파벳이 허공에 빽빽하게 들어차있는 모습 등.

눈여겨보지 않다가 문장들을 하나 둘 읽어보았는데, 예전 조선시대 서화를 보던 날이 갑자기 떠올랐다.

~~중략~~
'최고 가는 반찬이란 두부나 오이생강과 나물'

이라는 의미로 직역되는 글씨를 보고 한참을 웃었는데 (김밥천국 메뉴판을 허세 가득하게 적어둔 건줄 오해했다.) 그 옆 작은 글씨에 적힌 설명에 참뜻이 적혀있는걸 보고서 비웃었던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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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고, 최상의 즐거움이다. 비록 허리춤에 말만큼 큰 황금 인장을 차고, 식사 때 앞에 차려진 음식이 사방 한 길이나 되며, 시중 드는 첩이 수백 명이라도, 이런 맛을 향유할 수 있는 이가 몇 사람일까?
행농을 위해 쓰다. 일흔 한 살 과천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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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문자를 문자의 용도로 쓴 게 아니라, 그 너머의 다른 뜻이 숨겨진 채로 적혀있었던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마치 vigenere cipher 와 같은 느낌. 특히 A, O, I 를 빈 공간에 무작위로 배치한 것은 도시의 소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는데, 신박했다. 정말 신박했다.

또한 한가지 특이한 느낌을 받았는데 보통 그 전까지 보았던 추상미술들은 메시지는 해설이 따로 없다면 나로서는 본의를 절대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려져 있었는데, 바스키아 작품의 대부분은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보였다. 다만 이 메시지를 왜 내가 느끼는지에 대한 걸 이해하려고 거꾸로 보면 그게 어려웠다. 보통 메시지에 걸맞는 화려한 그릇을 준비하는데 예술가들이 굉장히 노력을 하지만, 그리고 그 그릇의 모양에서 자신의 방식이 가지는 독창성을 메시지만큼 비중을 두지만, 바스키아의 작품에는 그릇이 없거나 있어도 한참 작거나, 정말 담는 역할만 하는 투명한 느낌이었다. 효율적이었다고 하면 어느 정도 표현이 되는 것 같다.

또한 의미가 담긴 부분은 전체 공간에서 정말 일부였고 무의미한 내용도 경중을 따지지 않고 산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든 것에서 의미를 다 찾아내려고 한참 보느라 굉장한 헛걸음을 한 느낌이었다. 마침 내가 그리고 싶은 작품에서 빈 공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굉장히 고민하고 있는데, 바스키아처럼 그냥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방법도 나쁘지 않구나 라는 사례를 보게 되어서 용기를 얻기도 했다.


어록들 중 눈길 가는 것들도 많았다.

I cross at words so you will see them more : the fact that they are obscured makes you want to read them.

He loathed the idea that art was appreciated by an elite group. He used to say he is jealous of me because music is more accessible art and it reaches more people. - Madonna

인터뷰 장면이 비디오로 상영되고 있었는데, 나중에 꼭 따로 구해볼 생각으로 작품만 보았다.


내가 생각하던 방식과 너무 동떨어진 작가의 작품을 실컷 보았다. 신선했다. 다만 몇몇은 아직 수수께끼를 완벽하게 풀지 못한 느낌으로 남아있는데, 소와 주인이라는 작품이 그렇다.
인간만의 풍요를 위해 희생당하는 자연을 풍자하기 위해 비꽈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소를 끌고 가는 피골이 상접한 주인을 담은 그림이 있었다. 사람의 몰골은 이해가 되었으나, 통통하고 풍요로운 소를 왜 저렇게 표현했는지, 저렇게 그리면 사람들이 어느 부분에서 긍정적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를 느껴보고 싶어서 소를 한참을 바라보았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와 서정이 많이 다른 사람이구나를 여기서 제일 크게 느꼈다.

예술만을 추구했던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굉장히 불 같이 짧은 시절만을 머물다 사라지며 댓가로 남은 그 자취는 굉장히 강렬하다. 우리는 그 강렬한 불길만을 보고서 나의 삶이 얼마나 초라한 지를 자꾸 비교하게 되는데, 그 짧은 삶의 대가성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점과 함께 비록 남의 불꽃이지만 나와 맞닿는 여러 불꽃들을 긴 시간동안 여유로운 호흡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우리의 입장도 어떻게 보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