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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기

모네에서 세잔까지 @ 예술의 전당

20/02/18

인상파는 주류파 밀려 파리 살롱전에 번번히 낙선하던 와중, 당시에 낙선을 거듭했던 자들끼리 전시를 연 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인상주의 화풍에는 클라우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프란시스코 피사로, 에드가 드가 등이 작가가 포함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을 물리치고 살롱을 채웠다는 당대의 주류를 알고 싶어 검색해보니 아카데미 화풍이라는 정밀한 묘사에 집중한 화풍이라고 했다. 정교하고 부드러운 붓질을 통해 신화적 소재를 다뤘으나, 실제로 보지 않은 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면 등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점차 나중에 인상주의로 변화한 것 같다.

수많은 작품 중 눈에 붙는 작품에 붙어서 집중해서 관람했다.

폴 세잔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을 연결하는 중간화석 격의 인물이라고 한다. 연달아서 그의 작품이 전시가 되어있었는데 실제로 인상주의를 벗어나려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카소가 선호한 화가였다고 한다니 이해가 갔다.
‘햇살을 마주본 레스타크의 아침 풍경' 이라는 작품에는 사물의 경계면이 의도적으로 굵은 선으로 구분이 가 있었고, 건물의 벽면은 빛의 효과는 무시되고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강하게 담겨있었다. 특히 측면 창문이 벽을 따라 비스듬하게가 아닌 네모반듯하고 그려져 있었다. 보이는 대로가 아닌, 인식하는 대로 그렸구나 하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클로드 모네
모네 하면 생각나는 내가 느낀 모네 특유의 색이 있다. 약간 우리나라의 청색 비슷한 이미지랄까 보라색이 주를 이루고 그 안에 초록색 느낌, 어두운 하늘색 느낌이 조금씩 섞인? 마침 ‘자베르니의 젊은 여인들, 햇빛 풍경'이라는 작품에는 사람이 덜 있어서 가만히 풀밭에 표현된 모네색을 오래동안 바라보며 색깔별 빈도, 도트의 배치가 어디까지가 의식적인 의도일까를 한참 생각해보았다. 내 생각에는 과거로 돌아가 모네에게 채색 의도를 묻는다면 아마 장금이처럼 그렇게 보였길래 그렇게 그렸노라라고 대답할 것 같다.
채도 차이가 있는 다른 종류의 초록색들이 많이 보였는데 가만히 보니 같은 초록색에 흰색을 나중에 섞어 쓴 것 같았다. 모네 색에는 흰색도 포함되어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카미유 파사로
고갱의 스승이었다고 한다. 웅장한 기교 없이 자연 배경으로 일몰을 그리는 것을 선호했고, 가장주의를 보통 흐리게 표현하였으며 원근법을 보통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인상주의 답게 순간적 감각 경험에 집중했다고 한다. ‘에라니의 일몰'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하늘의 빛의 묘함이 정말 엄청 아름답게 표현이 되어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수많은 노란색 점이 하늘에 표현되어있었는데 이게 멀리에서 보면 주변의 메인 색에 흡수되어 노란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변모했다. 정말 절묘하고 아름다웠다. 인터넷으로 찾은 사진에서는 그 아우라가 1도 느껴지지 않아 너무 아쉽다. 다시 보러 가고 싶다. 그의 작품을 더 찾아보게 되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인상파 색체를 탐구하다가 나중에 아카데믹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관람하면서 본 그림 순서대로 인상깊은 작품의 제목을 적는 도중 르누아르라는 이름이 자꾸 나와서 처음에는 느와르 영화처럼 무슨 장르 이름인가보다~ (느와르 영화가 무슨 뜻인지 모름) 생각했는데 그림별로 스타일도 너무 다르고 설명에 의인화가 되어있길래 나중 되서 찾아보니 정말 사람 이름이었다. 정말 다양한 스타일로 시도를 많이 한 듯한 사람이었다. ‘사과와 꿩', ‘꽃병의 장미' 에서 인상 정물화의 정의를 느꼈다. 시각적인 감상보다는 인지적인 인상을 위주로 불어넣은 듯한 느낌들이었다.

아르맹 기요맹
‘ 센 강의 풍경' 구름을 표현할 적에 붓질이 수직으로 노골적으로 표현되어있었는데 신선했다.

폴 고갱
부동산 중개업자였다는 배경이 의외였다.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대단하다고 느낌과 동시에 재능과 취미의 방향이 같았음에 부러움을 느꼈다. ‘우파우파’, ‘개가 있는 풍경' 등 색채가 강렬했지만 인상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도 다수 있었다. 역시 작품의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레세르 우리
‘포츠담 광장의 밤'에서는 비 오는 누런 가로등이 켜진 어두운 도시 골목이 너무나도 잘 표현되어있었다. 젖은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 느껴졌다. 바닥 물웅덩이에 반사된 빛, 흐릿흐릿 번지는 이미지 등에서 공감각적인 냄새가 느껴졌다. 굉장히 세련된 느낌이었다.

결론

생각했던 것보다 작품이 많아서 잠깐 당황했고, 평일 퇴근시간 교대역을 방불케하는 인파에 더 당황했다. 동시에 관심이 이곳까지 닿아있는 동지들이 많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림을 보면서 사람들이 많이 머무는 작품, 감상하는 방식을 느껴볼 수도 있었다. 특히 에라니의 일몰이라는 카미유 피사로라는 작품, 모네의 작품은 계속해서 교통체증이 발생했는데 모네는 차치하더라도 피사로의 작품에서는 과연 미에 대한 범인류적 보편성이 존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만 모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작가여서일 수도 있겠구나) Google Art & Culture라는 어플을 통해서 그림 작품을 많이 보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그림은 확실히 제아무리 좋은 조건에서 디지털라이징을 했다 하더라도 원작에 닿지 못하는 제한이 너무나도 명백하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는 자주 전시회에 가 보아야 겠다.
인상주의가 꽃을 피우던 시기에 사진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상주의 초상화는 오히려 사진 덕에 사실보다도 관상, 자세, 몸짓에 주목하여 더 추상적으로, 심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적힌 설명에서 최근에 보았던 라이온킹이 떠올랐다. 티몬과 품바가 하와이안 티셔츠를 입고 하이애나를 꾀내어 내려는 장면은 8천만k 화질 할아버지가 와도 다룰 수 없는 시각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감각의 영역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은 화질 기술의 발전에 관계 없이 나름의 경쟁력으로 존속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이 생각을 인상주의 초상화에서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무 배경 없이 순수한 기호 만으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달리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퀘스트를 깨고 능력을 올리는 것과 같이 차곡차곡 정보를 모아 그 위에 올라서 더 높은 곳에 놓인 정보를 모으는 듯한 점진적인 재미가 느껴지는 것 같다. 다만 아직도 에칭을 왜 하는건지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된다. 다음 퀘스트는 여기인가보다. (여러번 찍으려고 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