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6
회사 로비에 북카페가 생겼다. 점심시간에 들러 가볍게 읽을게 뭐 있나~ 보던 중 언젠가 친구가 읽었다고 하던 책이 눈에 띄어 집어보았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법관이다. 본인의 인생경험에 비추어 우리나라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을 말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독서 내내 보았던 그의 행적은 국가 구성원으로서 공동체를 위해 선뜻 투신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개인을 위해서 전체에 헌신하고 다시 이게 개인에게 돌아오는 선순환을 바라는 의도인 듯하다.
법관으로 근무하며 접한 여러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사회가 더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해서 개인의 어떤 행동가짐이 필요한지에 대해 평소 많이 고민해보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그가 보는 바람직한 국가관은 아마 모네의 점묘법 같이 존재감 있고 바른 객체 하나하나가 모여 조화를 이루는 인상주의 작품 정도가 아닐까 상상해봤다.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많은 인용 서적, 체계적인 논거, 깊은 고찰에 존경심이 들 정도이다.
내가 머리속으로 대략적으로 흘끗 스케치만 잠깐 해 보았던 개념들이 그의 책에 모두 정갈하게 문장화되고 정리되어 있다.
일부 나와 반하는 견해에서는 마치 좀 더 식견을 쌓은 미래의 내가 차분히 지금의 나를 조곤조곤 타이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와 비슷한 이념을 가진 자가 먼저 이루어둔 사고의 결론과 이걸 표현해둔 문장을 도구삼아 그간 불분명한 형태로 내 머리속을 떠 다니던 내 철학을 체계화하도록 도움을 받는 일.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의의 중 하나인데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껴보게 되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책에서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아 기쁘다.
책 글귀 중 인상깊었던 내용들. --------
p119
내 주변의 친밀한 세계와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p133
‘선비’가 모멸적 용어인 세상이다. 위선 떨지 말라는 뜻이다. 속시원한 본능의 배설은 찬양받고,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위선과 가식으로 증오받는다. 그러나 본능을 자제하는 것이 문명이다. 저열한 본능을 당당히 내뱉는 위악이 위선보다 나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p136
데이의 세 황금문. :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p151
법관의 사명은 그 어떤 피고인에게도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국민과 함께 공분하는 것을 경계하고, 엄정하게 증거로 입증되는 사실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 결과로 국민의 분노가 법원을 불태운다 해도 말이다. 분노가 결론의 엄정함을 좌우한다면, 이는 문명국가로서의 이 나라의 침몰을 의미한다.
p154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그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다.
육하원칙에 의거한 신문기사보다 주관적인 내면고백 덩어리로 보이는 문학이 실제 인간이 저지르는 일들을 더 잘 설명해 줄 때가 많다. 최소한 한 인간의 심층적인 내면세계를 관찰해서 쓰기 때문이다.
p201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은 비극이다. 역사의 두 측면을 있었던 그대로 직시하면서도 얼마든지 지금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림자를 강조하기 위해 빛을 애써 지울 필요도 없고, 빛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를 외면할 필요도 없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출발점이다.
p208
탈이념의 시대에는 보수 진보 자체보다 양자가 교대하는 동태적 과정이 더 중요하다. 치우치면 부작용이 생긴다.
이념 문제 아닌 것을 이념 문제화 하는 강박증은 두 가지 점에서 위험하다. 첫째, 실제적으로 필요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둘째 착시현상이 생긴다.
p274
비합리적일지라도 대중의 공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공포 자체가 고통스럽고 심신을 쇠약하게 만드는 또다른 위험 요소이므로 정책 결정자들은 대중을 실질적 위험 뿐 만 아니라 심리적 공포로부터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p276
낯선 것에 대한 공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사회가 보여준 것은 과학적 판단을 존중하는 합리주의, 어떠 한 여론의 비난을 받더라도 합리적 근거와 소신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들,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함부로 책임자와 대응 방식을 바꾸지 않는 뚝심 있는 시스템, 그리고 단 한명의 자국민도 버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연대감을 표시하며 국민을 안심시킨 리더십이다.
p279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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