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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2020 신춘문예 당선시집

20/06/14

 

2020 신춘문예 당선시집

 약속시간 빈 틈을 서점에서 잠시 보내게 되어 가볍게 읽을 거리를 찾던 중 신춘문예 시집을 발견했다. 이따금씩 인터넷에서 당해 당선된 소설 등을 찾아보기는 했지만 시를 찾아본 적은 없었다. 흥미가 생겨 훑어 보았다.
 이병률 시인이 내는 산문집 정도는 자주 보지만 보통의 시집을 시간을 들여 보기 위해 서가에서 집는 과정이 내겐 굉장히 어렵다. 한 줄 한 줄 속에 담긴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미술작품 보듯 문장을 읽고 다시 읽고를 반복해야 하는데 거기서 오는 무의식적인 부담감이 있나보다.
 다만 예전에 마음에 들었던 시집을 우연히 만났을 때 느꼈던 그 동질감을 되돌이켜보면 작가와의 공감대를 느끼는 절묘한 기쁨이 시만큼 있는 것이 또 없는 것 같아 다시금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신기섭 시인의 '분홍색 흐느낌'이었다.)

 여러 신문사의 당선작을 한데 모아두어서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올해 주목을 받은 시인들, 시를 가볍게 접할 수 있었다. 작품 소개 뒤로 이어지는 당선소감과 당선평을 읽는 재미도 좋았다.

 우선 87년성, 96년생 등 젊은 작가들이 당선 명단에서 많이 보였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작품 속의 표현들과 깊이가 진중하고 깊어 작가의 연륜이 상당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젊어서 한 번, 그리고 세월이 이렇게 되었구나 싶은 생각에 한 번 신기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러고도 충분할 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가 철이 아직 덜 들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렇게 느낀 걸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전에도 몇 번 느꼈지만, 교고서를 통해 내가 가지게 된 시에 대한 관념_외형적으로 보이는 운율을 지닌 짧은 글_이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세상에 이르른 것 같다.
 
 시 당선작의 대부분은 외형적 리드미컬한 운율을 굳이 따르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주로 현재 통용되는 어학 범례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조합의 주어와 서술어를 시도하는 것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이를테면 실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민들레처럼 머리를 펄럭거리는~ 등. 
 또한 행을 끊는 단위의 기준도 종래의 글자수나 마디 수 등 보다는(물론 그렇게 끊는 경우도 많았다) 생각, 의미의 특정 단위 또는 주어와 서술어 조합의 특정 단위 기준으로 끊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일반적인 소설에서도 흔히 볼 법한 표현이었음에도 분별력있게 단위져 있어 쉬 읽혔다.

 당선 소감에 적힌 개인적인 이야기와 주변인들에게 사의를 표하는 훈훈한 모습에서 훈훈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고, '문학적 상투성을 답습하지 않는 동시에 시적 압축미가 돋보인다.' 라는 취지의 사유가 자주 등장하는 당선평에서 이들이 당선되게 된 의의를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 아쉽게도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을 만나지는 못했다. 괜찮은 작품이 없었던 것보다 내가 워낙 쫓겨서 읽는 바람에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 탓이다. 다만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인 김동균씨의 '우유를 따르는 사람'이 계속 기억에 남는데, 우유가 뜻하는 의미를 이해할 듯 말 듯한 애매한 상태로 책을 덮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김건홍씨의 '외투' 라는 작품에서 본 다음의 문장도 괜히 계속 머리를 떠 다닌다.
- 외투 안쪽엔 티슈가 있다. 그러니까 심장쪽에

 * 내가 떠올리던 전형적인 시들은 시조 부문에 담겨 있었다. 시조라는 형식과 현대의 요소가 만나 내 관념 속 시를 완성하는 모습이 당연해보이기도 하면서도 이질적이었다.

 듣는 음악도, 읽는 책 부류도, 하는 취미도, 먹는 것도 나이가 든 탓인지 하던 것만 쉽게 하려고 하는데, 이 와중에 이번처럼 가끔씩 겪게 되는 새로운 경험은 정말 소중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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