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27
타지 생활을 하던 시절 한 번은 어머니께서 책가지와 함께 몇 마디 문장을 엽서에 적어서 보내주신 적이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생사의 거센 흐름을 건너는가.
무엇으로 바다를 건너며,
무엇으로 고통을 극복하는가.
그리고 무엇으로 완전히 맑고 깨끗해질 수 있는가.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엽서를 읽어보고는 무슨 뜻일까를 고민하다 결국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한참 뒤에, 반년도 더 지나서 한국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다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키워드는 행복이었다. 잠깐동안 목표를 세우면서 혼란했는데, 이 글 덕분에 많이 안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 인용문이 어디서 왔을까 찾아보니 숫타니파타라는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이었다. 소승불교로 분류되는 초기 불교의 경전인 까닭에 저급으로 중국인들에게 취급받은 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거라고 한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내용에 상관없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듯하다.
복잡한 용어 하나 없이 모두 이해하기 쉬운 글들로 구성되어있다. 말의 묶음이라는 뜻의 숫타와 모음이라는 뜻의 니파타라는 단어로 이루어진 책 답게 숫타니파타는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시같은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가사책처럼 리듬감과 함께 같은 또는 비슷한 말이 반복을 하기도 한다. 석가모니의 말씀을 제자들이 구두로 전하다가 이를 보전하기 위해서 글로 기록한 것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삶의 여러 이슈에 대하여 다루는 부분도 있고, 제자와의 대화를 기록한 부분도 있다. 이 책은 정독을 해서 한 번에 다 읽는 책이 아니다. 화장실에 두고 틈틈이 조금씩 보면 그때의 내가 처한 상황에 맞는 조언을 한두가지 얻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엽서에 적힌 아름다운 문구만큼 더 멋진 글도 아주 많았다. 다만 대부분 수행자로써 지녀야 할 다짐 등이 적혀있었으므로 내가 따를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사회생활 준비에 한창인데 모든걸 다 버리고 평온을 찾을 수는 없.. 물론 이것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다르게 적용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일지 형식으로 다가가다가 여덟편의 시라는 장이 나오는데 진리에 관한 글이 인상깊었다.
조별과제를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과 남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이 충돌하는 상황을 접한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내가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상대방의 아이디어에 의해 묻혀가는 것을 보고 불쾌한 적도 많았다. 이제 와서 보니, 그때 우리 조에게 필요했던 것은 절대적인 창조적인 아이디어(진리) 보다는 비록 보잘것 없을 지라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들의 반감을 사지 않고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조원'의 아이디어가 필요했던 거였다.
이 경험을 통해서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물론 존재하겠지만 그보다도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진리는 진리 그 자체의 진리가 아닌 자신의 진리를 잘 전파하는 '사람'의 진리라는 결론도 얻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남들의 주장을 어리석다고 상대방에게 말하는 사람치고 그의 진리가 올바른 경우는 없다. (이 다음 구절을 정확히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데) 유일한 진리는 하나뿐이고,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이러한 논쟁을 하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서로 추구하는 진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라고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인 즉슨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진리도 진리가 아니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이므로 자신에게는 옳은 진리가 된다.
고로 절대적인 진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 말을 하고 싶은건지, 단순한 오타인지 알 길이 없다..
불교라는 철학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어떤 답을 얻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답을 위한 답을 얻어야 할 때 조언을 구하기 좋은 철학이라는 느낌을 나는 불교에서 받는다.
집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고타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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