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6
고향 주변의 명소들로 시작하는 1권을 전에 엄청 재밌게 본 뒤로 다음 편도 아껴서 한 권씩 읽는 중인데 이번엔 푸르른 숲 배경을 하고 있는 산사편을 읽어보았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절을 많이 다닌 덕에 이따금 절을 들를때면 향냄새와 스님들 지나다니는 모습, 절의 배치 등에서 굉장히 친근함을 느낀다. 특히 사람이 만든 건물임에도 나무, 풀, 계곡, 큰 암석등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 자연스레 어울리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산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공식 취지문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분명 세계 수많은 불교사찰 중에서도 한국불교 특유의 대표적 상징성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구산선문 외에도 전국 곳곳에 위치한 절들을 여러 일화와 함께 자세히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 중 작가가 극찬하신 운문사를 조만간 꼭 가보고 싶다. 입구의 솔밭이 멋지다고 하고, 승가대학 덕분에 새벽이면 들을 수 있는 장엄한 예불소리, 석가모니가 모셔져있지 않음에도 대웅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조선 후기의 사연을 간직한 법당 등등 직접 보고싶은 것들이 가득한 절이다. (차를 살 명분이 생긴 것 같아 신난다.)
그 외에도 만덕산 백련사 / 무위사 극락보전(고향집 바로 근처인데 표지판만 보고 직접 가보진 못했다) / 정암사(수마노탑이라고 마노석으로 만든 석탑이 있다고 한다.) 등은 따로 적어두었다. 조만간 가볼 생각이다.
책 말미즈음에 본인께서 생각하시는 종교에 대한 견해를 나누셨는데 공감된다.
'종교라는 것은 인간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류의 정신적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이며, 그 죽음의 무서움을 볼모로 하여 인간의 삶 자체에 규율과 구속을 가함으로써 현실사회에 높은 도덕과 평온한 질서를 부여해준다. 그것이 신이 있는 나라의 강점이다.'
유홍준씨 특유의 구전체와 동네의 고지식하시고 엄하신 먼 친척 어르신 같은 친숙함이 나는 좋다. 방대한 지식과 본인의 의견을 펴는 방식에서 많은 배울점을 항상 만난다.
마침 오늘 일이 있어 내려가던 중 근처를 찾아보니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몇 번 소개되었던 수덕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가 있다는게 기억나서 일찍 출발해서 들러보았다.
충청도의 그 넓은 평야 가장자리에 갑자기 깊은 산골이 나타나더니 그 안에 꼭꼭 숨어있었다. 입구에 차를 얼른 대고 올라가니 주차장에서 그렇게 멀지 않게 일주문이 나왔다.
사실 유홍준씨는 수덕사가 사찰측의 과한 꾸밈으로 인해 예전의 미를 잃어버린 절 중 하나라고 아쉬워했다. 가파른 돌계단이 원래는 흙으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직접 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일주문을 지나고, 사천왕상을 지나 대웅전을 마주하는데 너무 아득하게 웅장하고 멋졌다. 고려대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걸 차치하고도 단청이 채색되지 않은 채 흙벽과 나무결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 자태와, 맞배지붕 양식에 주심포 양식으로 된 건물머리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굉장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건물이 굉장히 커서 위용이 대단했다.
기둥들의 결이 세월을 먹어 자연스레 갈라져 있었는데 호랑이 등같은 굉장히 거칠어보이면서도 기름진 듯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마당은 빗질로 정갈하게 무늬가 나 있었고, 석탑도 비율이 굉장히 세련되보였다. 법당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며 산의 경사와 조화를 이루어 배치된 모습, + 새로 지어진 지원시설들이 내는 살아있는 소리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가깝다면 자주 찾아보고 싶은 절이었다.
당분간 주말마다 소개받은 장소들을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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