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4
역사서를 읽다가 중간중간 소개되는 책들에 관심이 생겨 기록해두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였던 징비록이 서점을 둘러보던 중 눈에 띄어 읽어보게 되었다.
징비록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대비한다는 뜻으로 임진란에 겪은 수모를 상세히 기록하여 후일에 똑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자는 저자의 의지를 담고 있다.
징비록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특히 고향 여수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여수는 전라좌수영이 있던 곳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유적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다. 거북선을 만들던 선소, 빠른 물살로 왜적을 무찌른 무술목, 충무공의 글씨가 보관된 흥국사, 훈련용 건물이었다는 진남관, 충무공을 기리는 고소대, 고니시 유키나가가 순천에 세웠던 왜성 등등.
윗대 할아버지께서는 정유재란에 참전하셨다가 전사하시기도 했다. 또한 어렸을 적부터 소풍 나들이 등에는 임진란과 연관된 장소를 방문하는 일이 많았다. 고향 근처에는 임진왜란 말기에 심은 굉장히 큰 후박나무도 남아있고, 정유재란 당시 몰살된 민간인들을 모아서 묻어준 큰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귀무덤도 남아있어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참 전에 난중일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개인의 주관적인 내용임과 동시에 지방에서 적은 기록이어서 그랬는지 전쟁의 양상을 알 만한 내용의 비중이 아무래도 해전에 몰려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반해 징비록은 조정에서 국정을 주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정보를 다 받아들인 상황에서 적은 기록인데다 목적이 전황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위함이기에 굉장히 상세하고 전반적인 전쟁의 양상이 굉장히 상세하게 담겨있다. 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당대에 이렇게 모든 정보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왕래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임진란에 있었던 전투 중 수군 전투에 대해서만 일부 들었기 때문에 전반적인 전쟁 양상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알 수 있게 되었다. 충무공이 누명을 쓰게 된 사유, 임진란과 정유재란이 연결되는 과정, 왜가 침투한 양상, 파죽지세로 올라왔던 연유, 그리고 명군이 들어와 원조를 한 내막, 신립장군, 권율 장군의 항전 과정 등등..
물론 조총과 화살의 구도에서 올 수 밖에 없는 전투능력 격차가 미치는 필연적인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전쟁 초반부터 거의 싸움조차 하지도 않고 무작정 달아나기 바빴고 싸워서 질 바에야 자살을 시도해버리는 등의 기술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다. 의병과 수군의 활약 그리고 후기의 육군 관군의 승리가 있긴 했지만 명군에 기대는 형국인데다 수도인 한양내의 금군마저 왜군의 소식만 듣고 무기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기록에서 당대의 국가적 기강이 어떻게 저정도에 이르렀을지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왜구의 정세를 파악해서 조정에 보고했다가 괜히 거짓을 퍼뜨려 장안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처형해버린 뒤로 보고가 끊긴 일,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스파이를 자청하여 40여명이 활약하던 중 우연히 발각되어 처형당한 변절자들의 이야기 등등.. 현세에 교훈을 줄 만한 기록도 많았다.
원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옹졸한 패장정도인 데에는 임진란 당시를 기록하는 기록물 중 우세한 난중일기, 징비록 등의 주요 기술이 모두 당시 원균 세력과 갈등이 있었던 것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인물 평가에 대해서 만큼은 이번에 방문한 조선왕조실록의 예에서도 보듯 작가의 입장에 의해 객관적이지 못한 내용이 섞일 수 있으므로 경계하면서 참고하였다.
7년여간의 연이은 임진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조선은 굉장힌 피해를 많이 입었다. 사찰 문화재도, 궁궐도, 한반도 전반적으로 이 시기의 피해로 인해 이 이후로 재건되거나 한 문화재들이 굉장히 많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이어지고 이어지다보면 끝없다는걸 알지만, 이러한 생각의 타래가 이어지면 제목에 담긴 의미처럼 이번의 과오를 통해 미래세대가 얻게 될 교훈을 많이 전해주기도 하다.
특히 많은 케이스들이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도 대입할 만한 것들이 많았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평균 9.5년 정도에 한 번 정도에 달하는 외란이 잦았다고 전한다. 그리고 임진란에 전국이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은 그 평균 기간이 지나도록 오랫동안 변고가 없이 평화로운 나날이 오래되는 탓에 기강이 느슨해져 준비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잦아들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고, 이는 현 시대의 오랜 평화로 인해 국방력에 대한 무용론이 솔솔 올라오는 현대에도 많은 의미를 시사하기도 한다.
주로 임진란에 관한 상황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얻을 수도 있었고, 연관되는 생각을 많이 해볼 수 있게 되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임진란에 관한 명의 입장에서 적은 양조평양록이라는 고서도 전해지고 있다고 소개받았는데, 한번 다른 견지에서 적은 기록으로서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 구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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