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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도덕경 - 노자

20/5/24

 

 노자 - 도덕경

맹자를 읽고 나서 다시 들른 서점에서 큰 이유 없이 이름에 끌려 집어오게 되었다. 시점이 적절했다.

노자 역시 정확한 활동연대가 알려지지 않았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동시대 인물이고 상대방에 대한 평이 서로 오가기도 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노자는 공자를 부정적으로 평한 데 반해 공자는 노자를 굉장한 위인으로 평가했다고 전해지는데 한 편으로는 타 사상이 유가와 도가를 모두 멸시하려는 의도로 꾸며낸 거짓일 수도 있다고 한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주요 사상에는 다음이 있다. 

무위자연 : 억지로 말고 스스로 진행하도록 두는 자세
공수신퇴 : 명성을 쌓을수록 자세를 낮추고 겸손해야 함.
반진귀박 : 사실이나 진리를 쫓기보다는 순박한 자연의 상태로 돌아와 살아야 함.
눈에 보이지 않는 도(엔탈피? 정도로 이해 가능)에 의해 세상 만물이 돌아가므로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인해 생겨나는 헛된 욕망을 경계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보다 근원적인 것들과 내면 생활에 대한 집중해야 함.
사랑, 검약, 경쟁의 우위에 서려 하지 않는 자세를 높이 삼.


인상깊었던 구절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

바퀴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공축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두고 유를 위해서는 무가 필요하다. 
또한 그릇용기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은 빈 공간이 있어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유의미한 물체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라는 형태가 필수적이다. 
‘유가 유인 까닭은 무가 쓰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이해가 되나, 논거에 모순이 있다. 나에게는 마치 단위가 다른 상태량을 비교하려는 시도처럼 부적절한 느낌이 든다.)


지식욕을 끊어 남보다 뛰어나려는 생각을 없애고,
명예욕을 끊어 남보다 중요한 사람이 되려는 의지를 없애고 대신 가족에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소유욕 끊어 경쟁심을 없애라.
(자연을 거스르는 문화를 멀리 하고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하자는 취지인데, 하향 평준화 하자라는 말로 이해되어 나로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은 죽이지 말고 남을 살림으로서 나도 살아야 한다.’
(전쟁의 필연성을 인정하되 무의미한 살육을 최대한 억제하고, 목적만 달성하자는 의의를 지닌다.전쟁관은 그래도 어느정도 현실적이다.)


남을 잘 아는 사람이 지자라면 나를 잘 아는 사람은 현명한 자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이 센 자라면 나를 이기는 사람은 강한 자이다.
(동의)


자연대로 살려고 노력하라. 현재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소중하게 여겨라. 염세적이어서는 안 된다.
(동의)


도를 깨닫더라도 구태여 남에게 나타낼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하되 남에게 구태여 내가 귀중하게 여긴다는 바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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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류가 항상 발전하는 방향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범인류적으로 삶의 존속을 위해 식량을 확보하고 거처를 마련하는 등의 근원적인 활동에 몰두하는 것에서 해방되어 좀 더 고차원적인 - 이를테면 도가사상에서 말하는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무형을 띄는 존재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을 걷거나, 나를 탐구하는 진지한 사색을 하거나, 종교에 대한 추구 등 -  뜻을 품고 삶을 영위하여 이상에 다가서는게 순수한 삶의 목적이 되도록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가사상에서 말하는 원시적 상황에서는 이러한 순수이상 추구적인 삶이 불가능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정치가들이 세를 덜 걷고, 제도가 없고 자연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더라도 삶의 원초적인 제반사항은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자연계에서 치열하게 생존만을 위해 경계하며 지내는 동식물의 삶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그들은 다른 사고의 능력 유무를 떠나서 그럴 새 없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 골몰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새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이상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후진국에서 오랜 기간 체류하면서 가까이서 본 삶에서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도 다시 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기원전 4세기 경의 중국 사상가나, 고대 그리스의 현자들이 먼저 꿈꾸었던 철학적 이상들이 기술적 발전이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현재에 와서도 실현된 바가 없기도 하고 인류의 삶의 구성적인 부분에서 혁신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은 아직도 요원하며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부조리한 삶을 사는 인구도 여전히 대부분을 차지한다.
과도기이기 때문에 아직 이상적인 세계가 찾아오지 못했고, 다만 점차 가까워지고 있지 않은가 하고 위안을 삼아보지만, 이걸 생각해보면 도가사상에서 말하는 바가 어느정도 일 리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어렴풋한 짐작이 들기도 한다.

도가사상 내게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대체로 나와 뜻이 같지만, 일부 내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을 계속 파헤치다 보면 결국 그들은 모두 내 안에 존재하던 모순적 사고이었던 게 드러난다. 나의 일부 잘못된 사고에 대해 내가 비판하고 있는 모습임을 느끼기도 한다.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도록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다스릴 규율을 만들어 사회에 도입하여 발전을 이루려는 유가사상에 비해 도가사상은 이상적인 사회는 자연에 가장 가까울 수록 실현 가능하므로 모든 인위적인 것들과 명예, 부 등의 욕구를 억제하고 원시적인 상태에서, 동시에 국가가 최소한의 역할만 하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읽는 내내 대체로 어리석어보이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내렸는데, 후감을 정리해보며 글이 쓰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기까지 하면서 어쩌면 이 사상도 말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도 떠오르기도 한다.

무형의 것을 추구하는 사상이다보니 내용중에 굉장히 모호한 표현들도 많이 들어있다. 흔히 길가에 돌아다니면서 도를 아십니까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들 하는데 도 자체가 모호한 의미이므로 그들로서는 맹한 사람을 꿰는 데에는 굉장히 적절한 단어의 선택이었다고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