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관련된 곳, 음식 메뉴 그리고 산책 위주로 여행 일정을 잡다보니 방문한 관광지는 많지 않다.
기메 동양박물관 / 베르사유궁 / 시내 산책 / 생제르맹 성당 / 루브르 박물관 정도를 계획하고 방문했다.
기메 동양 박물관
에밀 길레라는 사업가가 리옹에 세워두었던 아시아 유물 박물관을 정부가 지원하여 파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한국관이 오래전부터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고 해서 관심이 생겨 희망 방문지에 담아두었다.
100여년 전 한 한국인이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노력한 덕분에 일찍부터 한국관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홍종우이며 나중에 김옥균을 암살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프랑스와 우리나라가 수교를 맺은 시점 즈음 샤를 바라라는 인물이 고종 황제의 허가를 얻어 프랑스인 최초로 전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전국 각지에서 돈 주고 수집한 물품들이 여기에 와 있다.
그들의 시선에서 신기하거나 특색있어 보이는 것들 위주로 담겨있을 것 같아 그 시선이 궁금했다.
한국관은 크지 않다. 하지만 수장고에는 2천점이 넘는 한국 관련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국내 박물관에서 보지 못한 문양의 막새기와들, 신라 왕관, 민속적인 스타일의 세련된 가구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샤를 바라가 안동을 지날 적에 하회탈에 관심을 두고 몇점을 수집해왔는데 설명에 보니 지금의 하회탈 이전의 양식은 한국에는 자취가 남아있지 않아 샤를 바라의 수집만이 전 세대의 양식이 어떠한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기록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안동에서 보는 양식과는 굉장히 차이가 있었다. 극단이 직접 만들어 사용했을 법한 친숙한 모습이었다.
이웃해 있는 중국관, 일본관도 한 번 둘러보았는데 중국의 유물들은 양으로도 압도되었고 대체로 굉장히 화려했다.
유럽과 도자기로 무역을 한참 했으니 당연하다. 도자기가 90%를 차지했는데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다 보기에도 벅찼다.
정교하고 화려한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중국이(공산당 말고) 가지는 문화적 우월감이 이해되었다.
동시에 우리 시대에는 나름 선전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모습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만약 한국을 가요나 패션, 아이돌 등이 아닌 이러한 역사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현지인이라면 여기에 있는 유물들 등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이미지가 될 텐데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이미지일지, 또는 우리나라에 있는 박물관 또는 국내 유적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그들이 특정 시점에 수집하여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계속 생각해보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우리나라의 흔적을 보고 있노라니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베르사유궁
루이 14세는 자연도 자신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베르사유궁과 샹젤리제 거리의 가로수가 네모 반듯하게 관리되기 시작한 것도 이 취지로부터 영향받았다고 들었다.
조경의 모습과 궁전 장식이 궁금해서 이곳도 방문해보았다. 규모로도 엄청나고 파리로부터 1시간 약간 넘게 떨어져 있어서 거의 하루를 들여야 했다.
당대 최고의 세를 떨치던 국가의 궁 답게 천장, 기둥, 건물 외관, 정원 모두가 지나치게 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화려했다.
베르사유는 벽이나 그 어떤 조그마한 부분도 가만히 두질 않았다.
덕분에 나중에 저만의 공간을 꾸밀 기회가 있다면 곳곳을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 참고할 만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궁에서 자주 보이는 천장 용장식이 되게 탐나서 나중에 꼭 하나 마련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기둥이나 벽장식에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대 프랑스의 주요 수입원이던 유리와 거울을 홍보하기 위한 용도로도 거울의 방이라는 곳을 만들었다고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었는데 정말 화려했다.
왕과 왕비의 방들이 나란히 나열되어있는 구조도 인상깊었다. 프랑스 혁명때 왕비가 도망갈 때 사용되었다던 쪽문도 남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쉽게도 겨울에 찾아간지라 정원은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에서 조성, 운영에 들 막대한 맨아워가 머릿 속 주산으로 계산되었고 유지가 감당했던 그들의 여력이 가늠되었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루브르, 오랑주리 중에서 별 고민하지 않고 루브르를 선택했다. 지금 다시 선택한다면 오르세를 선택하고 싶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것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지만 그 몇 점 외에 나머지는 크게 기억에 남을 만한 걸 못 만났기 때문이다.
유물이 너무나도 많아서 오히려 관람에 애를 먹기도 했다. 너무 많아서 그 가치가 다소 퇴색되는 느낌이었다.
내부가 되게 더울 줄 알고 외투며 모든 것을 다 라커룸에 두고 입장했는데 웬걸 바깥보다도 더 쌀쌀해서 감기에 걸렸다.
수많은 대리석상과 금제 유물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것보다도 기억에 남는건 우즈베키스탄 특별전이다.
전에 근무했던 현장이 우즈베키스탄에 있어서 사마르칸트, 부하라, 타슈켄트 등 실크로드에 걸려있는 유명한 지역의 유적지를 몇 다녀본 적이 있다.
하지만 현지 박물관 등에 가 보아도 마땅한 유물은 보이지 않고 인골, 오래된 농기구 등만 보이길래 짐짓 그들의 문화를 낮게 보았던 터였다. 이번에 우즈베키스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득하게 걸려있는 수많은 화려한 유물들을 보고는 생각이 짧았다는 걸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대부분 국외로 반출이 되었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당대 세계 교역의 중심에 있었던 국가이기에 세계의 모든 기술과 지식들이 드나들었을텐데 유물이 인골만 있다는게 말이 되지 않는다.
화려하고 섬세한 문양들과 그 출토지(제가 있던 곳과 멀지 않은 곳들이었다)를 눈으로 읽으면서 섣불리 판단했던 걸 반성했다.
그 밖에 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이 궁은 사용된 지 천년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도 알아가고 유명한 피라미드 조각상은 중국계 미국인이 디자인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생제르맹 성당
생제르맹 성당을 찾은 것은 건물 내부 분위기와 구조를 감상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데카르트가 잠들어있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다.
여느 성당과 마찬가지로 내부는 천장이 굉장히 높고 넓었고 장식은 화려했다. 다른 곳과 다르게 이곳은 채색이 되게 진하게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경건해 보이는 대리석 구조물이 알록달록해서 이질적이었는데 쉬어갈 겸 찬찬히 바라본 천장과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실내로 전해지는 여러 색의 햇빛을 통해 다시 비교해보니 잘 어우러졌다. 채색 덕분에 내부 공간에 특별하게 느껴졌다.
스테인드글라스도 창마다 가득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딱 하루만 해가 떠 있었는데 마침 이날이었다.
채광창에 담기는 빛이 스테인드 글라스와 만나 보여주는 그 찬란함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종교를 믿진 않지만 일부 클래식 음악에서 가끔씩 느껴지던 숭고함이 시각적으로 느껴졌다.
기도중인 신도들의 자세와 굉장히 잘 어우러져서 저도 조심스럽게 걸으며 주변을 감상했다.
데카르트의 묘도 특별한 게 없었다. 오히려 다른 2명과 함께 합동으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버렸습니다. 심지어 이름도 라틴어로 적혀 있어서(RENATI DESCARTES) 몇 바퀴를 돈 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위치를 확인하고서야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렴풋이 띄워둔 모호한 개념을 일찌감치 문장으로 완성시켜둔 사람이나 제가 생각의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을 책을 읽으면서 만날 때마다 굉장히 짜릿한 공감을 느끼곤 하는데 데카르트와의 공감은 그 중 가장 큰 축에 속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찌릿한 공감을 느꼈었다. 그렇기에 전날 방문했던 쇼팽 무덤만큼 의미가 컸다. 마찬가지로 무덤은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의외였는데 어쩌면 이 거룩하고 거대한 성당의 별도 공간에 따로 그가 안치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고 해야겠다.
생각도 정리하고 분위기도 마음으로 눈으로 느끼고 하느라 1시간은 머물렀다. 마음이 되게 편했다.
시내 산책
하루는 시가지를 산책하는 날로 잡고 느근하게 둘러보았다. 루브르 박물관 쪽까지 대중교통으로 가서 남쪽으로 찬찬히 걸으면서 생트 샤펠 - 퐁뇌프다리 - 생줄리앙 성당 - 생제르멩 성당 - 에펠탑 등등을 다니면서 찬찬히 구경했다.
생트 샤펠은 예약을 따로 하지 않아 들어가지 못했다. 내부에서 낮에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이 엄청나게 아름답다고 하고 주 3회 정도 저녁시간대에 가면 공연을 만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 외에 몽쥬약국에 들러서 이것저것 살 것을 샀고 산책하던 중 빠리바게뜨도 목격했다. 안에 사람이 꽤 있었다. 굳이 들러서 먹어보진 않았다.
마지막 날 아침에는 약간 부지런을 떨어서 일찍 나와 시가지 조깅을 해 보았다. 아주 이른 시간도 아니고 6시였지만 아직은 겨울이라서 그런지 해는 늦게까지 뜨지 않은 채로 어두운 시내길을 자유롭게 달릴 수 있었다.
숙소에서 20분 정도 뛰어 에뚜알로 간 뒤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직선길을 쭉 달린 뒤 콩코드 광장에서 꺾어서 센느강 강변을 따라 쭉 뛰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에뚜알에 닿기 전까지는 숙소 근처의 주거지를 달렸는데 당일 장사를 위해 식료품을 받는 식당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숙소 돌아오기 직전에 미리 봐둔 빵집에서 빵을 구매해서 가려고 하는데 근방에 와서는 냄새만으로 빵집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 6시 50분 정도였던 것 같다. 마침 내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가게가 열리는 듯 철제 스크린이 스르르 열렸다.
마지막 베이커리 방문이기에 심사숙고해서 많은 양의 빵을 욕심껏 구매했다. 빵가게 주인에게 눈빛으로 시간이 걸릴거라고 했더니 흔쾌히 기다려주었다.
내가 빵을 고르는 동안 현지에서 노동일을 하는 덩치 큰 사내가 들어왔는데 흘끗 보았더니 크로와상 한개에 커피 한 잔만을 시켜서 소중하게 후후 불어 마시고는 자리를 떠났다.
소중히 골라온 빵을 친구와 함께 숙소에서 맛있게 먹고난 뒤 짐을 챙겨 공항으로 떠났다.
쿠르드족 시위가 한참이라고 뉴스에서 듣고 소매치기도 빈번하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하고 간 여행이었는데 오히려 만나는 사람들마다 따뜻하게 교류할 수 있었고 과거의 자취에서는 아득한 아름다움을 가득 느끼는 등 만족도 100점짜리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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