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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속초 - 용문 라이딩 후기


초록색을 제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장마철 산, 들이 내뿜는 형광색 파릇한 새 초록빛을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매년 그때 즈음이면 꼭 한 번은 구실을 만들어서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을 방문하면서 한참 창밖을 구경한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가지런하게 정렬되어있는 벼도 산에 빼곡히 자라 있는 소나무도 시원한 계곡가에 촘촘히 서 있는 나무들도 모두 좋다.

16년 인제 상남면 근처에서 열린 설악 그란폰도에 참가한 적이 있다. 몸에 당이 부족하면 혼수상태가 올 수 있구나를 208km를 타면서 직접 체감했었는데 그 힘든 와중에도 대회 전후로 오갈 때나 대회 도중에 지나쳤던 아름다웠던 경치가 기억에 깊이 남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속버스 대신 자전거를 타고 대회 때 다녔던 경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볼 생각을 해보았다.

인제 주변을 훑다 보니 간 김에 동해도 갈까? 가는 김에 대관령이나 미시령도 갈까? 이런 식으로 점점 더 넓어져서 결국에는 속초 - 용문 구간을 라이딩해보기로 했다. 차로 간다면 창문 프레임 안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 운전해야 해서 흘끔흘끔 제한적으로 봐야 하기에 대신 땀을 좀 흘리더라도 천천히 새소리 물소리도 즐기고 풀냄새도 실컷 맡고 올 수 있겠다 싶었다.

속초 - 용문 코스는 자전거 동호인에게 많이 사랑받는 구간이다. 총거리는 150km 정도 되는데 서울에서 한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행주대교 - 팔당대교를 한 바퀴 도는 거리가 100km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아주 무모하게 길지 않다. 누군가가 속초에 껌 사 오기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이게 되면서 더 활발해진 듯하다. 나는 까먹고 껌을 안 사 왔다..


라이딩의 시작은 또 늦잠이었다. 30분 늦게 출발했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10시 즈음 버스로 속초에 도착했다. 해안선이 오밀조밀한 동네에서 유년시절을 보낸지라 이렇게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을 보면 항상 반갑다.



여름날이라서 땀을 많이 흘릴 것 같아 무얼 먹으면 좋을까 고민하는데 문득 전에 속초에 왔을 때 줄이 너무 길어 방문하지 못했던 물회 집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거의 영업 시작 시간에 맞춰서 만난 지라 줄이 없었다. 들어가서 든든하게 한 그릇 든든하게 먹고 난 뒤 사이클링 컴퓨터에 저장해둔 경로를 따라 11시 즈음 드디어 출발했다.



여행지에서 가끔 예전의 추억을 만나곤 한다. 속초 해변에 가면 튜브 모양의 안내판이 있다. 전에 동생과 동해안 라이딩을 왔을 때 딱 저 앞에서 마무리를 지었는데 우연히 저 자리에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친구를 마주친 적이 있다.



이 코스는 대체로 평지이나 맨 처음 미시령을 만난다. 땡볕이라면 굉장히 힘들었겠지만 다행히 미시령에는 운무가 걸려있었다. 바닥이 젖어 있어서 반대편을 내려갈 때 약간 조심스러웠지만 덕분에 시원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전에 갔을 때 미시령 정상에 쓰러져 가는 버려진 휴게소만 있었는데 이번에 가 보니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자전거길 표시도 잘 되어있었고 차량들도 잘 배려해주어서 갓길로 위험하지 않게 올라갔다. 나 역시도 지그재그 주행 등 방해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얌전히 올라왔다.

흐린 날씨 탓에 아쉽게 정상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정상에는 관광객들이 제법 있었다. 역시나 아주머니들께서 나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어주셔서 어깨가 으쓱거렸다. (에??! 자전거를 타고 올라왔다고요? 대단해요 x 9 정도를 들었다. ㅎㅎ) 응원을 뒤로하고 정상 사진만 간단히 찍은 뒤 언덕을 내려왔다.



미시령에서 내려와서 양구까지는 자전거 길이 조성되어있어서 중간중간 들른 자그마한 시골 마을을 지나며 경치 감상하면서 다닐 수 있었다.
특히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강줄기 옆 옛길로 지나면서 초록색을 여유롭게 구경하면서 지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는... 인제를 지나자마자 지방도를 타고 쭈욱 오는데 차량 통행이 너무 많아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지나는 차들에게도 방해를 준 것 같아 미안함이 가득했다.
다행히 배려를 모두들 잘해주셔서 굉장히 감사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배려받는 만큼 교통 법규를 잘 준수하며 통행해서 어서 자라니라는 단어가 드물어졌으면 한다.

항상 80km 이상 타게 되면 근육경련이 날 찾아온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보충제를 사용하는데, 처음에는 겁도 없이 아스피린을 먹다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서(만약 사고 등으로 출혈이 생기면 피가 응고되지 않는다고 한다.) 포도당이 포함된 마그네슘 보충제를 먹기 시작했는데 효과가 참 좋다.

인제군 북면, 남면, 홍천군 시내 등을 지나(원래 그런 건지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덜 해서 그러는지 시내가 텅 비어있었다. 한적해 보여서 보기에는 좋았지만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했다) 오후 7시 즈음 용문역에 무사히 도착하여 거하게 식사하고 중앙선을 타고서 집으로 복귀했다.

몸무게가 3kg 정도 줄은걸 확인하고 기분 좋게 잠들면서 주말을 마무리했다.

총평

-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 볼거리가 다양한 구간
- 길이 대체로 좋으나 자전거 도로는 양구에서 끊기고 지방도를 오래 타야 해서 대부분 구간 차와 흐름을 같이 해야 하는 부담스러움이 있음
- 미시령을 먼저 해치우고 나머지를 즐기는 편이 내게는 다 맞았음. 속초 - 용문 방향들 더 추천함
- 용문역이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라이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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