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

예산 수덕사 방문

20/06/20

친구를 만나러 천안에 갈 일이 생겼다. 약속 전후로 시간이 비어서 어떤걸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주변 사찰을 검색해보았는데 멀지 않은 곳에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몇 번 소개되었던 수덕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가 있다는게 기억나서 일찍 출발해서 들러보았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해서 충청도의 그 넓은 평야 를 지나다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우회전을 했다. 서해를 바라보는 방향이므로 바다가 보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곧 저 멀리 가장자리에 뜬금없이 깊은 산골이 나타났고 꼭꼭 숨어있는 곳으로 길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곧 큰 주차장과 시장을 만났다. 대부분의 오래된 사찰들이 이렇게 절 입구에 크게 상권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여수 흥국사도, 부석사도, 봉정사도 모두 산골짜기에 위치한 사찰인데도 시끌한 마을이 절과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다.

유홍준씨는 수덕사가 사찰측의 과한 꾸밈으로 인해 예전의 미를 잃어버린 절 중 하나라고 아쉬워했다. 가파른 돌계단이 원래는 흙으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직접 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는 했지만 그 경사가 흙바닥이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다.

일주문을 지나고 사천왕상을 거쳐 대웅전을 마주하는데 너무 아득하게 웅장하고 멋졌다. 채색하지 않은 단청과 흙벽, 나무결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기둥들,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된 전형적인 고려대의 건물이 높이 있었다. 아우라가 굉장했다. 황금색 같아보이기도 했다. 주변 색에서 볼 수 없는 황색으로 건물이 우뚝 보여서 그랬나보다.
지금 회상하면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대웅전 앞마당에 흙을 두지 않고 은은한 회색으로 잔들을 깔아둔 것은 흙색이 오롯이 대웅전에만 몰려서 더 시선을 끌 수 있게끔 한 의도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맑은 날이었어서 해가 좋았는데 그 덕분에서도 더 또렷히 대웅전이 보였다.
대들보의 길이와 기둥 길이간의 비율이 같아질 수록 지붕이 저렇게 위로 높이 솟나보다. 본 맞배지붕 중 경사가 제일 높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실제보다도 건물이 훨씬 더 커 보였다.
맞배지붕은 낮은 경사도 높은 경사도 모두 매력이 넘친다.

방문기를 정리하는 시점이 방문때와 2년의 격차가 있다. 고려대의 대표 목조건물 3가지를 다 보고 나서 셋의 공통점을 고민해보다가 예전의 이 기록도 다시 정리해보자고 시작한 것인데, 맞배지붕 / 주심포 양식 외에도 한가지 공통점을 더 찾았다.
바로 외목도리라는 부재이다.
도리는 지붕을 바로 밑에서 떠받드는 부재로 용마루와 같은 길이와 방향을 가지고 맨 위에서부터 간격을 두고 양 밑으로 줄지어 내려온다.
용마루 바로 밑에 위치하여 딱 하나만 존재하는 종도리 (그래서 구조물 최상부의 종도리가 설치되었다는건 건물의 구조물이 다 설치되었다는걸 의미한다고 함 상량식도 종도리를 올린 뒤 행하는 행사) 아래로 중도리, 그리고 외벽과 기둥 위에 마지막으로 위치하는 주심도리 등이 이 도리에 속한다.
맞배지붕의 건물은 옆면에서 보면 도리들이 데칼코마니처럼 양쪽으로 줄줄이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도리는 보통의 건물에서는 딱 공포가 위치하는 외벽면까지만 배치되는데 (용마루 밑에서 시작해서 건물 바깥 기둥의 상부까지만) 이번까지 본 고려시대 대표 목조건물인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그리고 추가로 황해도 황주군에 위치한다는 성불사 응진전의 사진을 보면 모두 이 외목도리가 보인다. ( + 정확한 연대가 밝혀지지 않아 검색되지 않지만 강릉에 있는 임영관의 삼문도 고려시대 양식의 목조건물이라고 한다. 여기에도 외목도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 지어진 궁궐 건물이나 사찰건물 등 대부분의 한옥에서는 이 부재를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게 보였다. 아마도 맞배지붕의 형상 특성상 지붕 하중 지지가 취약한 측면이 있어서 좀 더 뻗어서 지붕 하부를 튼튼히 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문득 세 가지 건물 중에 가장 비율이 마음에 드는 걸 선정해서 모형으로 지어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구조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기둥들의 결이 세월을 먹어 자연스레 갈라져 있었는데 호랑이 등같은 굉장히 거칠어보이면서도 기름진 듯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가운데 옹이가 낀 목재는 하중에 취약한 까닭에 좋지 않은 목재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기둥 하나에 깊이 돌아있던 옹이는 그 무늬가 굉장히 매력젹이었다. 이 옹이도 목재로 막 만들어져 세워졌을 때에는 평평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세월을 거치면서 저렇게 패이기 시작했을텐데 그 시간이 오목볼록한 무늬에 글씨처럼 씌여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법당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며 산의 경사와 조화를 이루어 배치된 모습, 새로 지어진 지원시설들이 내는 살아있는 소리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마당은 입자가 작은 돌들과 흙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일찍 도착한 덕분인지 마당이 잘 쓸어져 있었다. 걸어다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가깝다면 자주 찾아보고 싶은 절이다.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박 서울 - 부산 라이딩 후기  (0) 2022.11.16
창덕궁 오후 관람  (0) 2022.10.23
해남 달마산 미황사 방문  (0) 2022.10.13
부석사, 정암사 방문  (0) 2022.10.09
안동 봉정사 방문  (0) 2022.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