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30
어렴풋이 어렸을 적에 이모네와 함께 부석사를 다녀온 기억이 있다. 방학 때마다 전국여행을 다니던 시기였다. 그 때 서원들과 유적지를 숱하게 다녀온 덕분에 문화재에 무의식적으로 친숙함을 느끼는게 아닐까 싶다. 덤으로 오늘의 부석사와 같이 오랜만에 방문하는 곳이라면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꼬마의 나와 만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다시금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부석사가 여행 희망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은 사실 무량수전도 그 뒤에 떠 있는 돌도 아니다. 어렸을 적 기억 한 장면 때문이다.
당시 주차장에서 부석사 본채까지 거리가 굉장히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흙바닥으로 된 평평하고 긴 길로 이어졌고 양 옆에는 키는 얼추 2미터는 되지만 심은지 얼마 안 되었는지 둘레가 겨우 허벅지 만한 얇고 볼품없는 나무가 듬성듬성 간격을 두고 심어져 있었다. 길은 점차 완곡하게 왼쪽으로 꺾였고 점차 경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길은 듬성듬성 계단이 두 세단씩 중간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여름이었고 아식스 샌달을 신고 이 길을 헥헥거리며 걸었던 기억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으니깐 2000년도 즈음이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이 길을 다시 걷고 싶었다. 부석사를 찾은건 사실 이 이유가 전부였다.
봉정사 주차장에서 찾은 영주 시내의 모텔에서 간단히 쉰 뒤 아침 일찍 부석사로 출발했다. 시내에서 쉰 덕에 부석사는 30분만에 닿았다. 늦잠을 자버려서 생각보다 출발이 늦었는데 그래도 가까운 덕분에 절에는 7시에 도착했다.
안동호의 영향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굉장히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이 안개는 부석사를 떠날때까지도 계속 주변을 맴돌았다. 추억을 쫓아 방문하는 길이 모두 안개로 덮여있어서 말끔히 보이지 않았다. 풍경이 내 상황과 굉장히 잘 맞아떨어져서 느낌이 오묘했다. 나는 풍경 보기를 즐긴다. 그래서 평소같았으면 잘 보이지 않는 모습에 답답했겟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 더 기대되었다.
엠마 왓슨이 'The less you reveal, the more they would wonder.'이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가시계가 있고 가지계가 있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보고 맡고 듣고 감촉을 느끼는 감각적인 것에 더 의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가시계 역시도 실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몸이 신경계를 통해 받아들인 전기신호를 뇌를 통해 변환하여 얻은 가상의 데이터라는 걸 인지할 수 있다. 단 맛도 마찬가지다. 음식에게는 달다라는 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물에서 나온 입자가 침에 녹아 우리 미뢰에 닿고 그 입자의 모양에 따라 특정 미뢰를 자극시키면서 특정 전기신호가 우리 뇌에 닿아 우리는 단 맛을 느낀다. 이렇게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는 신호를 우리는 직감적인 것으로 오해한다.
안개 덕분에 경치는 시각적으로는 가려져 있었지만, 덕분에 그 직감에 방해받지 않고 나는 안개 너머에 숨어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부석사 역시 다른 산사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산사 배치를 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걸어간 끝에 천왕문이 자리하여 속세와의 거리적, 시간적 공간을 두고자 했고 본채들은 굉장히 경사 높은 위쪽에 위치해서 입장할 때부터 방문객은 본채들을 우러러 보듯 고개를 들어 봐야 한다. 부석사의 경우 본채에 이르는 천왕문까지의 길이 굉장히 가파랐다. 그래서 더 높게 떠받들어져 있었고 고개를 한참은 더 들어서 올려다보아야 했다. 길 옆으로는 은행나무가 제법 크게 자라있었고 그 가장자리로는 넓게 밭이 있었다. 길이 되게 멋졌다.
그리스의 신전에서는 신에게 질문을 할 적에 '신의 절대적 위치와 너의 위치 사이의 간극을 알고 어려움을 느끼고 방문하라. 쓸데없는 질문은 삼가라. 신을 높이 섬기고 너를 낮추라' 라는 취지로 Gnothi Seauton 이라는 글자를 새겨두었다. 영어로는 Know Thyself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산사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경고를 글이 아닌 법당의 배치로써 우아하고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런 여유에서도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을 나의 일상에서 따라야 느낄 자격이 생길 것이다.
부석사의 부속 건물들은 마치 담과 같이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 양쪽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배치되어 있었는데 길을 감싸고 있어서 올라가는 내내 산중이 아닌 보호받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받았다.
천왕문을 지나서 곧 범종루를 만났다. 올라서 바라보는 경관이 굉장히 멋졌다. 특히 운무가 가득해서 되게 신성한 장소에 와 있는 느낌이 좋았다. 신성한 장소 안에서 보호를 받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범종루는 바깥 방향의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이고 무량수전 방향의 지붕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이 모습의 건물은 처음 만나서 신기했다. 범종루의 기둥은 봉정사 만세루처럼 말라있었는데, 그래도 나이가 보일뿐 위태해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일찌감치 방문하셔서 사진을 찍고 산새를 감상하시는 신도분들이 몇 계셨다. 그래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기다리는 김에 탑과 먼 거리에서 구도를 감상하는데 어느 분께서 지나가시면서 가볍게 인사해주셨다. 일찍부터 왔다면서 묵례를 하시는데 내가 먼저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해서 죄스러운 느낌이 잠깐 들었다. 어제 봉정사에서 고집 센 어떤 사람이 계속 들으라는 식으로 내게 트집을 잡아대서 언짢았는데 이분 덕분에 스르르 풀렸다. 먼저 만난 사람이 승려의 복장을, 나중 분께서는 등산객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역시 직감은 항상 옳지만은 않다.
범종루 다음으로는 안양루라는 누각이 서 있었고 그 뒤로 무량수전의 실루엣이 보였다. 안양루는 오밀조밀하게 작은 건물 안에 수많은 요소가 가득하게 담겨있었다. 거기에 경사가 되게 높아서 작지만 엄청 당차보였다. 밑에서 보이는 기와의 각도가 어깨에 힘이 가득 자부심 넘치는 사람이 뽐을 한참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안개를 배경으로 산세에 묻혀 있는 모습이 되게 자연스러웠다. 태초부터 존재하던 건물 느낌이다.
안양루 밑을 통해서 올라가서 드디어 무량수전을 만났다. 건물 외부에서 보이는 지붕 전체적 높이가 건물 규모에 비교해서 낮게 보였다. 다시 말해 천장 윗부분 구조의 높이가 다른 건물에 비해 낮아보였다. 고려대의 건물 스타일 다웠다. 주심포 양식이라서 기둥 윗부분 장식이 단순해서 더 좋게 느껴졌다. 기둥은 봉정사 대웅전처럼 산의 습기를 가득 먹어서 붉은 갈색빛을 띄고 있었고 덕분에 분위기가 되게 무거웠다. 오래된 관록이 역시 느껴졌다.
거기에 봉정사와 달리 공간을 굉장히 여유롭게 쓰고 있는 데다가 건물의 규모 또한 굉장히 커서 굳이 속을 안 보더라도 굉장히 웅장했다.
불감이라는 유물이 있다. 절에 갈 수 없는 상황인 경우 집에 절 건물 모습의 조각을 두고 기도를 올리기 위한 용도로 가정집에서 두고 사용하는 조형물인데 내가 박물관에서 만난 불감 대부분 기와 경사가 굉장히 낮게 되어있어서 어색해보였다. 봉정사, 부석사를 다니면서 이 때 기와 경사가 떠올랐는데, 어쩌면 내가 본 불감들이 모두 고려시대때 유물인 탓에 그러했나보다 싶다. 이 비율의 층고와 낮은 지붕 경사도가 처음에는 낮설었는데 이제는 근정전이나 여타 보통의 대웅전 건물보다도 더 친숙하게 느낀다.
특이하게 앞마당에는 탑이 아닌 석등이 놓여 있고 탑은 중심부에서 훨씬 벗어나 무량수전 우측에 비스듬한 각도로 위치해 있다. 앞마당은 대부분 돌바닥으로 덮여 있고 한 켠에 있는 감나무 사과나무 열매가 익어 모두 떨어져 있었다. 참새들이 짹짹거리면서 이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다 즐긴 새들은 처마 밑에 보이지 않은 공간에서 수다들을 떨고 있었다. 고요한 아침인데도 덕분에 되게 부산스러웠다.
바닥에서 자연스레 삭고 있는 과일 숙성되는 냄새가 썩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절의 오래된 분위기에 한 몫을 더 하고 있었다.
무량수전 내부는 굉장히 웅장했다. 부처님이 가운데 모셔져 있지 않고 왼쪽에서 건물 우측을 바라보는 형태로 배치되어있다. 빈 공간이 그래서 더욱 더 넓었다. 천장도 몹시 높았다.
모든 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눈에 담고 싶었지만 한 분께서 백팔배를 하고 계셔서 방해하고 싶지 않아 마치실 때 까지 기둥 뒷편에서 가만히 천정부터 부처님 모습까지 한참을 눈에 담았다. 천장이 가려져 있지 않아 내부 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였는데 엄청나게 화려했다.불상은 진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개금불사 덕에 크게 차이를 느끼진 못한다. 후광 광배가 굉장히 얇고 화려하게 처리되어 있어 한참 감상했다.
무량수전을 감상하고 나서 옆에 부석사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는 어떻게 걸쳐있는 돌을 보았다. 여러 세월동안 비도 맞고 했을텐데 저 날카로운 면이 닳지 않고 그대로여서 신기했다. 모습이 되게 인위적이어서 사람이 옮긴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건물 우측의 탑으로 가서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운무 덕분에 엄청 분위기가 좋았다. 안개 덕분에 동편의 햇빛이 나무 사이로 부서져 들어오는 빛줄기가 그대로 보였다. 축복 받는 느낌이었다.
내려올 때는 같은 길로 오지 않고 사찰 좌측으로 나 있는 길로 내려왔다. 수덕사도 이러한 길이 있었고 봉정사도 비슷한 길이 나 있었다. 경내를 신성하게 여긴다면 사실 이옆길로 다녀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박물관이 있었는데 아쉽게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지나쳤다. 옆길을 따라 주욱 가니 천왕문 옆 위치 즈음으로 상당한 규모의 주차장이 보였다. 부석사 앞에 마을이 이루어져 있는데 마을길 끝과 이어져 있었다. 이 주차장에 차를 두고 절을 찾는다면 훨씬 빠르게 이동은 가능하겠으나 그렇다면 일주문부터 천왕문으로 이어지는 이 은행나무길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도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이 공간을 이용하는게 좋을 것 같다.
마을길로 해서 주욱 내려왔는데 사과밭이 많은 동네였다. 빨갛게 익은 사과와 길가에 떨어져서 나뒹구는 사과들을 보고 여기 새들이 부러웠다. 담벼락에 호박꽃, 호박들이 정겨웠다.
아까 들어갈 때는 시간이 일러서 매표소 관리인을 만나지 못했다. 내려오면서 보니 열려있길래 안 계신동안 올라와서 아까 지불하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내고 싶다고 말씀드렸으나 사양하셨다.
유홍준씨 말씀대로 액수를 떠나서 얼마라도 댓가를 치러야 이번 방문에 진지한 마음을 담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내고 싶었지만 실랑이까지 할 것은 아닌 것 같아 서로 사은을 나누고는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어렸을 적 도로를 드디어 만났다. 아까 올라갈 때에는 이 길이 맞나 헷갈려서 (늘 그렇듯 유년시절 기억들을 지금 만나면 한결같이 너무나도 규모가 줄어있다.) 일단 지나쳤는데 이 곳이 그곳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바닥은 포장이 되어 있었고 그 볼품없던 나무들은 지금도 간격이 듬성듬성하지만 많이 자라서 근사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역 주민께서 일찍부터 매대에 나물을 채우는 걸 구경하면서 관람을 마쳤다.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지도를 확인하고 바로 정암사로 향했다. 2시간 정도로 지도에서 나왔다. 일부러 전에 함백산에 오를때 들렀던 만항재를 통해서 가려고 지도를 설정했다.
중간에 1차로로 이루어진 경사가 말도 안 되는 포장만 간신히 된 산길을 한참 다녔다. 심지어 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외길 중간중간에 에 차들을 만났는데 아슬아슬하게 비켜간 뒤로는 차를 피하는 장소를 새로 만날때마다 다음 장소가 보일때까지 만일을 대비해서 거리를 머리로 가늠하면서 조심히 올랐다. 정상으로 보이는 곳에서 표지판을 보니 백두대간 등산로 시작부라는 안내가 있었다. 어쩐지 산줄기가 굉장히 굵었다. 차는 고생을 많이 했겠지만 후기를 적는 시점의 지금은 이런 풍경을 좀처럼 볼 수 없는 상황이라서 좋은 기회였다.
태백을 지나 만항재를 가는 길은 아마 내 생각에 풍력발전기를 짓기 위해 가설로 지어둔 길 같았다. 역시 경사가 굉장했고 중간중간 전기공사를 하는 차량과 발전기를 실은 특수차량이 거북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꼬불꼬불 전화도 안 터지는 오지를 지나는 와중에 풍력발전기가 푸른 들판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곧 만항재에 닿았다. 아마 3년 전 한겨울에 친구 네명과 왔었다. 잠시 회상하고나서 내리막을 한참 내려갔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탄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발전기가 돌면서 배터리가 충전되는데 보통은 60%만 차도 모터가 구동되면서 전력량이 내려가기에 풀충전된 모습을 볼 일이 없었다. 이번에 내리막이 하도 심했던지 배터리 게이지가 가득 차 있는 모습을 차를 사고 처음 봤다.
정암사는 만항재에서 내려가는 길에 있었다. 적멸보궁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유적이 7곳인가 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오늘 방문하려는 수마노탑이었다. 마노석이라는 보통 벼루 만들때 쓰는 반짝거리는 돌을 이용한 모전석탑인데 최근에 문화재청에서 보수공사를 해서 깔끔하게 다시 쌓아올렸다는 기사를 보았었다. 푸르고 투명한 표면을 기대하고 갔다. 탑은 사찰 내부에서 좀 더 벗어나 5분정도 산을 타야 닿는 곳에 있었다. 산길을 올라다가 왼쪽으로 꺾으니 나무 커튼 사이로 뻥 뚫린 하늘이 보였고 그 한가운데 탑이 딱 보였다.
생각보다 대로변에 가깝게 있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 시선이 닿지는 않았지만 눈이 좋은 사람은 한여름 녹음이 우거지더라도 계곡 도로에서 탑이 보일 것 같다. 경치가 되게 좋았다.
탑은 생각보다 얇고 높아서 비율이 가파라보였다. 주변부는 신을 벗고 다니라고 안내되어 있어서 신을 벗고 주변을 돌면서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탑을 바라보았다. 개보수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돌들 틈이 꽤 벌어져 있었다. 그래도 단단하고 푸른 하늘과 잘 어울러졌다. 상상했던 것만큼 표면이 투명하거나 푸르진 않았지만 되게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했다. 양말 너머로 느껴지는 차디찬 표면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탑 표면에 자기 이름을 새겨둔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그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욕을 심하게 먹어서 장수하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 싶다.
정암사는 오로지 이 탑만 생각하고 방문한 것이었기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일정을 생각해서 빠르게 내려왔다.
이렇게 버킷리스트를 오래 차지하고 있던 세 장소를 이번 1박 2일의 여행을 통해 모두 다녀올 수 있었다.
이제 다시 모래시계를 뒤집은 셈이다. 다음에 내가 이곳을 다시 들르게 된다면 어떤 모습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날까.
아마도 미래 밑그림을 지금 함께 그리는 중인 친구와 함께일 텐데 그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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