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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안동 봉정사 방문

22/09/28

몇년 전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전국의 문화재를 상세하게 소개하는 와중에 작가의 말투와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이 마을 할아버지같은 친근함을 주는 책이었다.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곳들을 당시에 적어두면서 나중에 차가 생기면 하나 둘 방문해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생겼지만 지방을 돌아다니는 건 쉬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리스트를 쥐기만 하고 이따금 명절이나 근처에 들를 일이 있으면 하나 둘 겨우 방문할 뿐이었다.

긴 시간이 흐르고 이번에 길게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생겼다. 당연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리스트에 올라있는 문화재 방문이었다. 불국사 / 봉정사 / 정암사 / 부석사 / 해인사 등 고향과 멀리떨어진 장소에 위치하여 마음먹고 가야 방문할 수 있는 곳들이 떠올랐다. 석굴암을 가장 둘러보고 싶었지만 여건상 다는 돌아볼 수 없었기에 나중에 경주를 한 번에 방문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봉정사 -> 부석사 -> 정암사 순서로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고향에서 출발하여 17시 즈음 안동에 닿았다.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가는 길에 마주했던 짙은 노란색 벼가 가득 담긴 논과 푸른 산을 오랜만에 만났다. 장마철 즈음 볼 수 있는 형광색 뿜어내는 짙은 풍경을 좋아해서 해마다 한 번은 꼭 보러 다니는데 이번에는 여건상 보지 못하고 여름을 보내야 했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매표소에 주차를 하고 관리인께 여쭈니 절 바로 앞까지도 차가 들어갈 수 있지만 4시 반 정도에는 와야 가능하다셨다. 표를 끊고 주차장에 차를 댄 후 솔밭 가운데로 난 경사로를 올라갔다. 굽이 져 있어서 끝이 보이지 않은 길은 황장목 솔밭 가운데로 나 있었고 하늘이 보이지 않는 촘촘한 바늘들과 짙은 솔냄새 덕분에 든든했다. 경치가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봉정사는 전형적인 산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도 거리가 한참 되지만, 일주문에서 절까지도 거리가 꽤 된다. 일부러 성역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속세와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둔 것이 우리나라 산사의 특징이다. 또한 한참을 걸어서 절 입구에 도착하면 고개를 들어서 본채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러한 위엄도 절을 선성한 곳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효과가 있다.


절은 비교적 규모가 작았다. 종이나 운판, 목어 등이 담긴 만세루가 관문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밑부분이나 축대의 돌들에서 지긋한 나이가 느껴졌다. 만세루 밑으로 마련된 문을 통해 걸어 올라가면 본채들이 한 눈에 담긴다. 사진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최근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추모하는 전시였다. 99년도에 여왕이 안동을 방문할 당시 봉정사도 함께 다녀간 듯했다.

대웅전은 1400년대 세종 대에 지어진 건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건물의 비율과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 외부가 모두 강건하고 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습기가 가득 먹어서 더 단단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바로 옆 화엄강당과 오밀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지붕이 서로 겹칠듯 가까 있었는데 이 두 지붕을 사이로 하늘을 보는 구도가 굉장히 우아하게 느껴졌다. 대웅전 건물 앞에는 특이하게 마루가 마련되어 있었다. 만세루는 목재 질감이 굉장히 말라 보여서 나이듦이 느껴진 것에 반하여 대웅전의 부재들은 다 짙은 갈색을 띄고 있었고 기름이나 습으로 느껴지는 겉이 잔뜩 앉아 있어서 분위기가 무겁고 관록 넘치게 느껴졌다. 본채에는 단청이 거의 칠해져 있지 않았다. 공포, 서까래, 처마, 지붕선 구조를 한참 눈에 담았다. 짜임새가 촘촘해서 단청이 거의 없었어도 자체의 형상만으로도 굉장히 화려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겉에서 보았을 때보다 내부가 생각보다 되게 넓고 높았다. 오래된 건물을 방문하면 꼭 내부 천장에 표현된 문양을 구경하는데, 봉정사의 대웅전은 천장 이 ceiling으로 막혀 대들보 등의 구조가 가려져 있고 ceiling에는 크샨트리아 문자가 섞인 동그라미 패턴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있다. 내부 사이즈가 작고 천장높이가 비교적 낮은 덕인지 내부 기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부 구조는 굉장히 컸다. 옆면 뒷면 외벽은 아무것도 칠해져 있지 않고 맨벽으로 되어있었는데 산과 그래서 더 잘 어울려져 보였다.


그리고 난 후 왼쪽으로 가서 이번 방문의 주 목적이었던 극락전을 마주했다.
공민왕 12년때(1363)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실제 지어진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보통 우리나라 목조건물은 신축 후 100 ~ 150년 뒤즈음 지붕 수리를 하는 관례를 근거로 12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연대가 정확히 나와있지만 그래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연대가 정확히 밝혀진 오래된 목조 건물은 수덕사 대웅전으로 1308년 중건되었다고 한다.
고려대의 건물답게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지붕의 경사도 되게 낮다. 직전에 만난 대웅전과 같이 보통 우리가 절이나 궁에서 만나는 건물들은 조선대 건물이라서 지붕 경사도 꽤 가파르고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고려시대 디자인을 가끔씩 만나면 되게 낯설면서도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건물 내부는 공사중이었다. 게다가 등이 잔뜩 달려잇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내부도 아기자기하니 보통 보는 조선대 건물과는 확연히 달랐다. 건물 층고도 되게 낮아서 납작한 느낌을 받는다. 천정은 대들보 등이 모두 그대로 노출되어있고 구조가 단순하지 않고 이런저런 것들이 되게 많이 보였다.
돌이나 금속으로 된 고물은 본 적이 있지만 거의 천년이 되어가는 목조 건물을 보니 느낌이 또 다르게 다가왔다.

과거의 인물의 자취도, 건물 자체의 오래된 내력도 느껴보면서 시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보고 느끼는데 1시간을 위해 300km를 넘게 달려왔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고 의미가 깊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건물들의 기와가 서로 겹치는 모습도, 오래된 나무 부재의 주름들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일은 이어서 부석사와 정암사를 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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