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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무박 서울 - 부산 라이딩 후기

2020/09/07


1. 기획하게 된 동기

취미 중에서는 자전거 라이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취업하고서 근 6년 동안 매년 열심히 즐겁게 타고 있다. 차를 이용한 드라이브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와 시야를 쏟는 제한이 덜 한 상태로 여기저기 감상하는 것도 좋고 특히 경사가 있는 곳을 오르는 게 즐겁다.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 즐기던 달리기에는 못 미치지만 숨 막힐 때까지 힘을 쏟고 난 뒤 느끼는 특유의 상쾌함이 있다.
어느 정도 서울 근교의 모든 곳을 질리도록 다녀본 뒤인지라 작년부터는 좀 더 바깥으로 눈을 돌려 즐기는 중이다.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출발해서 새벽에 안반데기에 도착한 뒤 눈부시게 펼쳐진 별을 보고 왔었고 속초까지 껌 한 통 사 먹으러 서울에서부터 다녀온 적도 있었다. 이것저것을 하고 나니 자연스레 남은 도전 과제는 무박으로 서울에서 부산 가기였다. 최단거리 기준 420km 구간을 24시간 내에 도착하는 미션이다.

19년도 비슷한 시기에 먼저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연휴 남는 시간에 무얼 할까 하다가 가볍게 생각하고서 동네 마실처럼 급작스럽게 출발했었다. 성취욕이 높은 편도 아닐뿐더러 굳이 죽을 고생 해 가면서 끝까지 갈 필요도 없었기에 예상하던 풍경이 보이지 않고 엉덩이 통증으로 인한 짜증이 제법 높아질 때 즈음 속도계에 300km라는 숫자가 뜨자마자 이 정도면 되었다 하고 영천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버스를 타고 돌아와 버렸었다. 당시에는 나름 만족했다.

1년이 지난 즈음 지인들과 라이딩을 하던 중 쉬는 시간에 무용담 이야기로 자연스레 흘러갔고 내 무박 부산 실패기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상대방도 마침 그 코스에 관심이 많았는데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할 만한 사람이 없어 아쉽던 차였다고 했다. 순간 긴밀한 눈빛이 몇 차례 오고 갔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뒤에 우리는 카톡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프로젝트가 꾸려졌다.


2. 준비 과정

다행히 작년에도 이번만큼 아주 상세하게 후기를 글로써 남겨둔 터라 참고할 자료가 많이 남아있었다. 교훈을 바탕으로 준비물 리스트 / pre-requisition / 예상 타임라인을 짰다.
굉장한 거리인 만큼 사전 연습의 필요함을 느껴서 이야기 한 날로부터 한 달 뒤 즈음 출발할 계획에 훈련 일정을 더해서 고려해두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코로나로 인해 개인 일정이 뒤틀리면서 일주일 뒤로 일정을 변경했다.


1주일의 시간만 남아있었기에 빠르게 챙겨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우선 휠셋을 바꾸고 싶었다. 원래는 듀라 에이스 c50 카본 튜블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장거리 동안에 펑크라도 나게 되면 말썽을 크게 일으킬 게 뻔했다. 직전의 장거리 라이딩에서 별 문제가 없긴 했지만, 마침 오래 사용하기도 했기에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어 급하게 매물을 알아보았다.
로우림 알루미늄 힐을 가지고 싶었다. 직전에는 듀라 에이스 C24를 사용했었으므로 이번에는 알루 3 대장 중 나머지인 캄파놀로 샤말이나 펄크럼 레이싱 제로 둘 중 빨리 나오는 매물을 알아보기로 하고 준비했고 동시에 파워젤, 마그네슘제, 후미등, 튜브 등등을 구매했다.

예전에 슈발베 원을 처음 쓰면서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해서 이번에도 슈발베 원을 온라인에서 구매했는데 당일까지 도착하지 않아서 쿠팡에서 벨로또라는 처음 듣는 브랜드의 타이어를 구매해야 했다..
휠은 새 제품을 사려다가 찾아보니 박스만 뜯은 민트급 상품을 판다고 하길래 새것 치고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사은품으로 받으셨다는 캄파놀로 컵과 캄파놀로 벽시계도 함께 받았다.
급하게 스프라켓까지 한 번에 사느라 서울을 부지런하게도 돌아다녀야 했다. 무리를 했는지 고관절이 약간 부었는데 다행히 출발 전날이 되자 원래대로 가라앉았다. 스프라켓 조이는 공구는 다행히 어디선가 다시 발견해서 집에 있는 플라이어를 이용해 단단히 조였다.
새 걸 사지 않고 중고로 모두 구매한 덕분에 새것 대비 휠은 140 -> 105, 스프라켓은 10 -> 4로 많이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기존 휠셋은 처분해서 새 휠 구매 비용에 보탰다. 3년여 동안 눈으로 성능으로 모든 면에서 만족한 카본 튜블러였지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업힐을 주로 하다 보니 내게는 로우림 알루미늄이 맞다.


우여곡절 끝에 준비물을 다 손에 넣고 전날 밤 목요일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조립을 완성시키고 준비물을 조금씩 확인해보았다. 클린처 타이어 작업을 정말 오랜만에 하는 까닭에 타이어 주걱이 어디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맨손으로 타이어를 끼워야 했는데 덕분에 죽을 뻔했다. 낑낑대면서 튜브가 상했을지도 모른 채 바람을 집어넣었다. 어김없이 바람을 넣자마자 튜브가 순대처럼 스멀스멀 튀어나왔고 투덜대면서 바람을 빼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전날 라이딩에서 우연히 알람이 들어온 덕에 케이던스 센서 배터리가 방전된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전날 밤 다이소에 들러놓고는 배터리 사는 걸 까먹는 바람에 급한 대로 집의 탁상시계 배터리로 갈음했다.

당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타이어를 확인해봤는데 앞바퀴의 바람이 빠져있었다. 그렇지 모든 게 순조로우면 나의 삶 답지 못하다.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다른 튜브로 갈음을 해두고 출근 준비하고서 다시 확인해보니 또 바람이 빠져있었다. 준비한 튜브 4개 중에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당일 퇴근하자마자 대충 챙겨서 약속 장소로 갈 생각을 했는데 튜브도 새로 사야 했고 짐도 아직 안 꾸렸으며 튜브도 교체해야 했다. 그래서 출근해서 오전 중에 한참을 생각해보다가 그냥 오후 통으로 반차를 쓰고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고 회의 가시는 과장님께 말씀드리고 기안을 올렸다. 11시 반에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퇴근길에 동네 다이소에 들러 반사판을 사려했는데 팔지 않았다. 포기. 할매순대국에 가서 최후의 만찬으로 순댓국 특을 먹었다. 살을 뺀다고 짠걸 거의 안 먹어왔는데 곧 땀을 얼만큼 흘릴지 알고 있기에 하나도 남기지 않고 꾸역꾸역 다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짐 더미를 뒤져서 나온 남은 튜브로 앞바퀴를 다시 조립하고, 페니어 가방을 달고, 짐들을 다시 점검하면서 짐을 꾸렸다.
2시 반즈음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4시 반쯤 일어났다. 나가서 햄버거를 억지로 좀 더 먹고 약국에서 맨소래담을 사려다가 너무 커서 파스로 갈음하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마무리지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타임테이블을 탑튜브에 붙여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서둘러 인쇄해서 코팅까지 하고, 7시쯤 집에서 나왔다. 작년에는 짐을 욕심껏 다 태운 덕에 거의 무게가 평소의 두배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들 만한 정도의 무게였다. 샤말은 원래 매미 울음 같은 우렁찬 라쳇 소리로 유명한 휠인데 엄청 조용했다. 아마 돌아와서는 소리가 커지겠지 기대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작다 뭐가 문제일까)

바람이 차진 않았지만 가을이 느껴질 정도는 되었다. 새 휠의 새로움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뒤에 실린 짐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크게 느낄 게 없었다. 나중에 완주하고 나서 따로 짐을 비운 채 남산을 타봐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도 타이어 폭이 두꺼워져서 안정적인 느낌은 확실히 들었고 무엇보다 이제는 레버 부러질 정도로 꽉 브레이크를 움켜줘도 버텨줄 든든한 알루미늄 림이 내겐 있다. 든든하다.

낙성대에서 반포 한강공원으로 향하던 중 주변을 훑다가 열려있는 자전거 가게를 발견하고 들렀다. cst라는 회사의 튜브를 8천 원 주고 2개 구매한 뒤 다시 반포로 향했다. 약속 시간이 8시 20분이어서 약간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해서 일행을 기다렸다. 곧 동행하는 분들의 지인분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일행분들도 한 분 두 분 도착하기 시작했다. 초면인 세분과 인사 나누고 참석자들 자전거 탑튜브에 타임테이블 붙여주고 파워젤을 나누면서 출발 준비를 했다. 30분에 모였지만 이것저것 하다가 거의 9시가 되어서 출발할 수 있었다. 일부러 이것 때문에 30분 일찍 당겨 두었던지라 괜찮았다.


참가자 지인분들께서 응원차 플래카드를 준비해주셨던데 응원해주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뒤에 다시 적겠지만 이번 라이딩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애매하거나 어색한 관계를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최근에 많이 놓아버렸는데 그분들 덕분에 내가 거추장스럽다고 여겼던 것들과 필연적으로 공존하는 긍정적인 것들을 발견했다. 사진 촬영과 쏟아지는 응원을 뒤로하고 드디어 21시 반포 한강공원을 떠났다.


3. 라이딩 전개

이번 라이딩을 함께 기획한 분(이하 A로 칭함)은 이미 몇 번 라이딩을 함께 한지라 충분한 체력임을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3분은 초면이라 정보가 전혀 없어 걱정이 앞섰다. 길어져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건 분명하기에 특히 저녁이라서 서늘할 때 최대한 누적거리를 뽑아두어야 했다. 하지만 초반에 예상치 못하게 정차하는 일이 너무 잦았다. 초반 25킬로미터 시내 구간에서 신호를 받거나 이런저런 일로 자꾸 멈추게 되었다. 계속 머릿속 타이머에서 미끄러졌다. 초반 110킬로를 4시간에 주파할 생각이었는데 성남시계를 벗어나기도 전에 이 계획은 버렸다. 24시간보다는 다 함께 안전하게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움직였다.


A의 체력은 라이딩 막바지에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선두는 대부분 내가 섰다. 오버 페이스를 방지하기 위해 순간속도를 꼭 30km/h 밑으로 유지하려 했는데 지체된 것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속도를 점점 올리게 되었다. 35, 38 점점 속도가 올라가니 뒤에서 일행분들께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밟다 줄이고 밟다 줄이고를 반복하다가 물이 떨어져 곤지암에서 잠깐 쉬어 가기로 하고 세웠다. 콜라 등을 마시고 잠깐 있다가 출발하려는데 이미 페이스가 굉장히 떨어진 것을 느꼈다. 나는 속으로 초조했다. 다시 출발했는데 이천 즈음에서 일행이 펑크가 나 또 멈춰야 했다. 얼른 조치하고 파워젤 등을 최대한 먹은 뒤 다시 출발.


열심히 밟은 덕에 3시 즈음 (사실 그 전이다.) 주덕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서울로부터 누적거리 110km 지점이며 전체 구간의 약 1/4 되는 지점이다. 조금 거리를 두고 오시던 한 분께서 쥐가 난 데다가 다리까지 잠겨서 더는 안될 것 같아 적당히 타고 복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중간 복귀를 하더라도 버스를 타려면 문경까지 가야 한다고 좀만 더 힘내자고 말씀드려서 합류시킨 뒤 편의점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라면을 먹고 밖을 보는데 제비들이 그 새벽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새벽에 새가? 이렇게나 많이?
신기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편의점 사장님께서 실제로는 훨씬 많다면서 가로수를 뻥 찼는데 진짜 만 마리도 넘어 보이는 제비가 놀래서 온 동네를 날아다녔다.. 살면서 제비 떼가 아니라 새떼가 그렇게 많은 걸 본 건 처음이었다. 앞으로 주덕 하면 제비만 생각날 것 같다.

대로변이 모두 제비로 가득 차 있었다.


1시간여를 쉬고 다시 출발했다. 원래의 계획상으로 1시 반에 출발해야 했는데 4시에 출발했다. 문경새재 만나기 전 즈음 동이 텄고, 이화령 오르기 직전에 해가 뜨는 시간이 지났다.  주변 경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습해서 안개가 산허리 중간중간에 걸려 있었다. 경치에 눈이 닿을 새가 있었다니 이때까지는 멀쩡했나 보다.




이화령은 셋이서 먼저 올랐고 약 1시간이 지나서 후미가 도착했다. 그동안 거의 1시간을 잤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후미가 도착하자마자 사진만 찍고 내려갔다. 9킬로 다운힐 끝에는 다음 포인트인 문경 버스터미널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후미에서 고생하신 분은 엄청 힘드셨을 것 같다.


일행이 식사를 하자셔서 식사를 했다. 시장 근처에 서 계시던 할머니께서 시장 순대가 문을 열었다고 말씀해주셔서 그 가게로 향했다. 과연 열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1시간 동안 쉬고, 선크림도 바르고 밥도 맛있게 먹었다. 순대가 다른 곳에서 먹는 것과 굉장히 차이가 있었다. 되게 맛이 좋았다. 그래서 다음에 친한 형과 라이딩을 다시 갔을 때 다시 방문했다.


8시 반쯤 되어 출발했다. 다음 지점까지 거리가 60km 정도였는데 너무들 힘들어하셔서 (나도 중간에 고개 숙이고 반수면상태로 타기 시작했다. 힘든 것보다도 너무 졸렸다.) 원래 지점인 안계면 보다 10킬로 앞서서 있는 다인면에 잠깐 멈췄다. 농협 하나로마트를 찾아서 바나나 20개짜리 한 손, 과자, 콜라, 물을 잔뜩 사서 먹으면서 40여분을 쉬었다.

너무 졸려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가게 되었다.


그리고 힘을 내서 다시 시작. 영천 신녕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때 즈음 부산에 비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쪽도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일요일 오후부터 내려야 하는 비인데, 그러지 않고 지금부터 오고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이 온다고 해서 우선 기존 계획상 40, 40, 35로 되어있는 정차구간을 70 45로 해서 중간 언양에서만 한 번 쉬기로 하고, 언양에서 만나기로 하고 영천을 나와 10킬로 지점 즈음에서 다시 찢어졌다. 두 팀으로 나뉘기 전 즈음 작년에 내가 포기하고 버스를 탔던 터미널을 만났다. 느낌이 묘하긴 했다.

저번 도전때 이 정류장에서 1시간은 잠든 것 같다. 이번에는 그냥 슝 지나갔다.


마찰 통증은 다시 시작되었고, 졸리고 춥기 시작했다. 우의를 안에 입었고, 엉덩이에는 생채기가 생겼는지 너무 아파서 댄싱으로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비는 점점 엄청나게 쏟아졌고, 전조등은 하나 둘 나가고, 하나만 남게 되었다. 흐린 날씨 덕분에 다행히 해는 아주 잠깐만 떴지만 반대로 해가 되게 빨리 저물었다. 경주 닿기도 전에 해가 졌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안 그래도 시골길이라 어두운 상황에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찌어찌 경주에 도착했는데 정말 최악의 라이딩이었다. 갓길에, 장애물에, 빠른 속도로 다니는 화물차에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길도 좁고 비는 엄청나게 쏟아지고 추웠다. 경주에 도착을 언제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힘이 거의 다 빠졌을 즈음 도착해 있었다.
마지막 경주 - 언양 - 부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무 생각 없이 탔다. 사진도 없다. 비는 쏟아지고 춥고 배가 고팠는데 웬만하면 1시 버스를 타야 했기에 계속 갔다. A의 격려 + 나눠준 음식 덕분에 힘낼 수 있었다. 중간에 A의 변속기가 말썽을 일으켰는데 비를 맞으며 이것저것을 고치는 A를 도와줄 힘이 없어서 그냥 누워서 쉬어야 했다. 되게 미안했다.
나중에 정산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100킬로가 넘는 구간을 안 쉬고 댄싱으로 왔었다. 힘들 만했다.


적산계 상으로 곧 버스터미널을 만나야 하는데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업힐이 2개나 나와서 (데이터 상 3개라는데 나는 2개만 기억난다.) 너무 힘들었다. 특히 마지막 업힐은 그 뒤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모습인 데다가 공사장이 한없이 이어져서 대상이 없는 원망이 가득했다.
꼭대기인 것 같으면 또 다음 언덕이 보이기를 몇 번을 당한 끝에 진짜로 부산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리막을 한참 내려와 하마터면 쭉 갈 뻔하던 걸 간신히 좌회전해서 반가운 터미널을 만났다.


패스트푸드점이 열었길래 햄버거를 우선 샀다. 서울에서 나눔 받았던 샤워용 물티슈?로 몸을 대충 씻고 다시 그 쳐다도 보기 싫은 옷을 입는데 그 찝찝함은 절대 못 잊을 거다.
편히 오고 싶어서 슬리퍼 하나 사서 버스에 시간 맞춰 올랐다. 코로나로 인해 원래 스케줄에 있던 버스가 몇 빠지곤 하는 듯했다. 1시 차를 타고 올라왔는데 중간 기억이 없다. 아주 깊이 잤다.

5시 즈음에  서울에 도착했다. 버스 닿자마자 내려서 자전거를 빼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A가 나오지 않았다. 한참 뒤에 허겁지겁 내리는데 버스 기사님이 깨워줘서 간신히 일어났다고 했다. 사둔 햄버거를 두 손으로 쥔 채로 잠들었다고 했다. 많이 피곤한지 멍해있길래 자전거를 꺼내 주었는데 건네받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듯했다. 간단히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철 첫 차를 탈 수 있었다.


출발할 때 많은 걱정을 했다. 사고가 제일 컸다. 아무래도 과격한 차들이 많은 걸 본 터라 걱정이 많이 당연히 되었는데, 다행히 그런 차들을 실제로는 만나지 않았다. 타이어 펑크도 나는 없었고, 멤버의 사고도 없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엄청 계속 든다.

이번 라이딩은 순전히 구성원들 (특히 A) 덕분에 끝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마지막에 A가 재촉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A를 내가 의식하지 않았더라면 (일행 없이 나 혼자였다면) 이번 역시도 중간의 포기로 끝났을 것이 뻔했다.

이렇게 시간 개념이 희박한 채로 돌아와 주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한없이 자다가 다음날 1시간 차를 내야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큰 일 없이 완주했다는 데 대해 안도감을 느낀다.

이렇게 내 장거리 라이딩은 마무리되었다.


4. 라이딩 후감

이전까지 라이딩 결과를 구간별 평속 분석 등까지 구체적으로 남긴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나 혼자 가볍게 하는 라이딩이 아니라 모임을 통해 진행한 터라 문서로 결과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다. 덕분에 상세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고 다음으로 다녔던 라이딩 일정을 잡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랜만에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시골 출신이기에 정의 양면을 잘 알고 있다. 내 것 = 네 것이라는 식으로 개인 간 경계가 희미해져 있는 사회. 좋은 점도 있지만 집단주의적 특성 때문에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단체의 굴레에서만 돌아가는 그 모습이 내게는 버겁다.
거기에 최근의 일련의 일들 덕분에 냉정한 인간관계 정리를 단행한 터였다. 현재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목적을 매개로 한다. 단순히 친목을 위한 관계는 좀체 없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찾아 이성적인 대화를 하고자 추구했으나 이 역시도 바보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그런 오아시스 같은 모임은 없다. 사람들은 주제를 매개로 모이지 성향을 주제로 모이지 않는다. 인간성, 성품은 모임의 주제가 될 수 없다. 이는 마치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것과 같다. 성공은 목표의 부산물이지 목표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이번 라이딩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사실상 완전 남이었다. 그런데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모습에서 뭔가 움찔한 느낌을 느꼈다. 라이딩 초반 플래카드까지 준비해오셨길래 지인들끼리 준비하셨을 것으로 짐작하고 사진 찍을 수 있게 빠져드렸는데 알고 보니 내 닉네임까지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감동스러웠다. 물론 이 모임 역시도 갈등도 있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보는 그 아기자기함에 나의 냉정한 현재 상황을 빗대어 보게 되었다. 인간성 없는 삶을 지금 내가 살고 있구나..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깨달은 것은 오랜만이다.

200907_무박부산 라이딩_X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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