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모습이 언제 어떤 경험으로부터 발현되었는지 종종 짚어보곤 한다. 긍정적인 모습은 대부분 긍정적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지만 돌이켜보니 그것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어쩌면 각각의 경험을 무심하게 넘겨버리지 않고 잘 다듬어서 활용하려는 자세, 성찰하는 자세에 달려있는 듯하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영어 단어 퀴즈에서 답을 했지만 선생님이 못 알아듣고 무시해버리는 바람에 시험에서 꼴찌를 하고 한시간 동안 무거운 가방을 들고 벌을 서야 했던 경험이 있다. 서럽게 울면서 마음속으로 괜찮다고, 남들은 내가 답을 알고 있다는 걸 모르지만 나만큼은 그걸 잘 알고 있다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이후부터 주변의 평판에 개의치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오롯이 집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첫날 밤 숙소 연락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폭설이 온 도로 가에서 밤을 보낼 뻔 한 경험에서는 좀 더 꼼꼼한 성격을 갖게 되었고, 직장 생활과 사회적 교류 와중에 마주친 불량한 사람들과의 숱한 대립 덕분에 스트레스 받는 민감도가 굉장히 낮아지기도 했다.
어른으로서 독립하고 스스로 길을 헤쳐 나가는 중인 나는 이런 풍파들을 잘 견뎌내고 나름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아이가 태어나고 이 친구를 지도하는 순간이 올 때 과연 나는 물가에 내 놓은 듯한 이 친구가 내가 했던 경험들을 반복하는 모습을 냉정히 바라만 볼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라면 과잉보호하는 여느 극성의 부모가 될 게 뻔했다. 그래서 Design Basis같은 기준점을 하나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걸 하나하나 세세하고 구구절절하게 쓰진 않겠지만 큰 틀의 교육 방향은 정해두고 원칙으로 삼고 싶다.
이 책은 비오던 날 비를 피하려다가 문득 들어간 중고서점에서 무의식적으로 골랐지만 대부분 그러했듯 마침 조명이 필요했던 시점이었기에 반 의도적으로 고른 책이라고 생각한다.
에밀이라는 가상의 어린이가 작가의 의도대로 올바르게 성장해 가는 생활이 아이의 시점별로 특징을 구분하여 담고 있다. 대체로 방임주의적인 양육 방식을 보인다.
읽고 난 후 언젠가 교사인 친구에게 에밀에 소개된 방식의 양육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에ㅁ.. 까지만 말했는데도 단호하게 그렇게 아이를 방임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비교적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한 친구에게도 자신의 유년기를 어떻게 돌아보는지 물은 적이 있는데 방향을 잡아주는 이가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그 친구는 답했다. 친구의 형에게 집중된 덕에(또는 때문에) 대비로 인해서 더 크게 그렇게 느낀 것일수도 있다.
반면 나는 대체로 강한 손에 이끌려서 자라왔다. 대학교 고학년이기 전까지 이러한 기류가 이어져서 순수하게 무언가를 내 스스로 당위성을 세워서 주체적으로 실행하기 시작한 지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덕분에 내 스스로라면 절대 닿았을 수 없었을 능력을 갖추고 기회를 향유할 수 있었고 지금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 이는 절대적으로 감사한 일이다. 다만 막연하게 주체성을 좀 더 일찍 가질 수 있었다면 어떻게 생활이 바뀌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가끔은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막연하게 긍정적일 것으로 상상하게 된다.
머지 않아 맞이하게 될 아이에게는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에밀의 삶에 가까운 환경을 선사하고 싶다. 물론 크고 작은 방향의 틀은 갖춰져 있을 것이다. 대신 투명하게. 그리고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미리 선별해두고 기다리기 위해서 친한 친구와 함께 많은 것들을 계획하고 실행해보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 만큼 행복한 순간들이다. 부디 이 시도가 의도 대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는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4가지로 구분했다.
*루소는 아이를 제대로 양육한 적이 없다. 다 고아원을 보내버렸다고 한다.
*여아를 비하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고전은 꼭 한 번씩은 깜짝 놀랄만한 견해를 보여준다.
1부 : 출생기 ( ~ 5세)
모든 것은 조물주에 의해 선하게 창조되었음에도 인간의 손길만 닿으면 타락하게 된다는 기조 하에 출생에서 다섯 살까지의 발육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이 시기는 본능적 욕구의 시기이므로 아이의 발육을 억압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젖은 반드시 모유를 먹이는 것이 좋으며 신체발부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 배내옷은 입히지 말아야 한다. 아이는 도시보다 시골에서 키우는 것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훨씬 더 바람직하다. 인간은 한 곳에 모여 살면 모여 사는 그 만큼 더 타락한다.
루소는 또 아이의 변덕에 휩쓸려 아이가 원하는 것이면 무조건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것이 결국은 아이의 장래를 망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무엇이든 갖게 하면 욕망은 날로 증대될 것이고 그에 따라 당신의 능력은 고갈될 것이다. 언젠가 당신은 아이의 요구를 거절해야만 할 시기각 올 것이고 그러면 아이는 미칠 것이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고통보다 익숙하지 않은 당신의 그 거절 때문에 아이는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었던 아이는 그 거절을 배신으로 여길 것이다. 아이는 이치를 따질 줄 모르므로 당신의 어떠한 설명도 변명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사방에서 악의를 볼 것이고 이는 아이의 본성을 비뚤어지게 해 모든 사람들을 미워하게 할 것이다.
2부 : 아동기의 교육 (5세 ~ 12세)
이 시기는 아이가 말을 배우면서 경험을 학습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지식을 주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관념보다는 사물에 대한 관찰을, 추론보다는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 더 필요한 시기이다. 읽고 쓰는 것에 몰두하게 하기보다는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 감각 기관을 훈련하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
이 시기의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빨리 가르치고 싶다면 오히려 느긋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아이를 가장 빨리 깨우치는 길이다. 에밀이라면 분명 열 살이 되기 전에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열다섯 살이 되기까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염증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아직 학문을 사랑할 수 없는 아이에게 학문을 싫어하도록 만들지 않아야 한다.
3부 : 소년기의 교육(12세 ~ 15세)
앞서의 아동기가 소극적 교육의 시기였다면 이 시기는 적극적 교육의 시기이다. 감각에 이성을 더한 훈련을 실시해야 하는 시기, 즉 학문을 가르쳐야 할 시기이다. 그러나 이 때도 책 속의 지식에 의존하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지식이나 경험보다는 자신의 관찰에 의해 체현된 지식이 중요하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4부 : 청년기의 교육 (15세 ~ 20세)
인간으로서 제2의 탄생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때의 청년은 도덕적이며 종교적 감정이 싹튼다. 또 성욕에 눈을 뜨는 시기이기도 하다. 기질의 변화와 함께 신체는 더욱 성숙해져 성인으로서의 징후가 나타난다. 때때로 정념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격랑을 일으킨다.
윤리적 자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그는 이제 정념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규제나 억압을 통해 이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감추어 보호하기보다는 체험을 통해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을 에둘러 설명하지 말라. 설교로서 감화시키려 하지 말라. 자연에 의탁하라.
책갈피 (머지 않아 아이를 기를 때 뿐 만 아니라 내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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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안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필연의 법칙에 저항하지 말고 그곳에 힘을 낭비하지 말라.
자신의 의도를 남의 도움 없이 행동으로 옮겼을 때만이 진정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행복은 권력이 아닌 자유에 있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되, 하고 싶은 일만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아이는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가르칠 시점에 동기 부여를 잘 시키려면 그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꺠닫게 하면 된다. 현재의 이익이 아이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교육의 핵심은 많은 지식을 주입하는 데 있는 게아니라 그의 두뇌 속에 보다 명료한 관념을 심어주는 데 있다. 진리 대신 배울지도 모를 오류로부터 그를 보호해주기 위함이다.
학생이 ‘유용하다'라는 관념을 배움받게 되는 순간 교육은 진일보하게 된다. 이 말이야말로 그의 현재를 진단하고 파악하는 데 가장 확실한 ,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관념이다.
고대인들의 경우를 보라 그들은 상징의 언어로 경건함과 권위를 세웠다. 현대인의 언어가 책에 기록되어 있다면 그들의 언어는 대지에 기록되어 있따. 신성시 여겨졌던 나무나 바위, 무덤 등이 그들의 책장이었고, 기념비였으며 증인이었다. 왕권을 상징하는 징표만 있으면 비록 병사 한 명 없었을지라도 위엄을 지킬 수 있었고 사람들은 그에 복종했다. 고대인들의 웅변은 잘 정리된 말로서가 아니라 생생하게 표현된 상징 언어로 충만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에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하더라도 진부한 말로써 설명하는 대신 그의 상상력을 일깨워 주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권위를 확립한 뒤 가장 주의해야 할 일은 그 권위를 행사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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