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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22/10/05

퇴근길 주에 한 번은 종각역 알라딘 오프라인 매장을 들러 훑곤 하는데 최근부터 계속 눈에 띄던 책이 있었다. 유시민씨가 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근래에 국가, 정부의 실체와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관심두고 있었는데 굳이 사서 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서 가끔씩 들떠 보기만 했다. 그렇게 잠시 기억 속에서 잊고 있었다.
이번에 휴가차 한국에 돌아와서 근처에 볼 일을 본 후 자연스레 서점을 방문했다. 여전히 이 책은 가판대에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땅히 살 책을 정하고 오지 않았던지라 이번 차례는 자연스레 이 책이 되었고, 집어와서 휴가 복귀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으면서 왔다.

국가의 형태는 시대를 따라 계속 바뀌어 왔다. 조선대의 기록을 보면 국가와 구성원이 한 몸처럼 느껴진다. 농부, 군인, 문인, 상인, 승려, 귀족, 임금 등 모두가 국가의 정상적 운영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생활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의 사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를 바라보면 점차 집단주의적 국가관이 옅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각자의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다. 미국에서 본 그들의 생활은 우리보다도 훨씬 더 다원주의적 삶이었다. 게다가 거기에서는 국가관이 주와 혼재되어 있어서 더 존재감이 낮게 느껴졌다.
유럽은 각각의 국가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EU 라는 공동체 이름으로 화폐를 통일했으며, 국가가 아닌 EU 마크를 단 생산물도 늘어나고 있으며 국가간 교류도 경계를 넘어 활발하다.

세계화에 맞추어 나가면서 언어간 외래어를 주고받으면서 많이 섞여왔듯 국가관도 점차 옅어질 것으로 추측한다. 피터 드러커도 next society라는 책에서 그간 국가가 개인에게 해오던 소속감을 주는 이미지는 점차 기업에게로 넘어간 뒤에 그 뒤에는 아마 비영리기구등 다른 대체 집단이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 역시도 물론 국가 체계 안에서 지금의 나를 완성하는 동안 보호받고 혜택을 받은 만큼 소속을 위해 내 몫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사명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맹목적인 헌신이나 집단주의 등에는 굉장한 거부감을 느낀다. 애국 / 집단주의 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일부 집단이나 주변의 독재정부등을 보면 굉장히 잘못된 방향으로 악용되고 있는 사례가 훨씬 많다.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내용은 공산주의에 관한 내용이다. 반공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가장 증오하는 사람 중 한명이기에 그들이 물론 이 책을 들여다 볼 생각과 능력은 없어보이지만 책 내용을 접한다면 특히 이 대목을 보고서는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득권층은 작가를 좌파나 빨갱이로 규정한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국가주의의 관념을 거스르는 모습을 보여서이기 때문이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세력에게 피해를 끼치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 남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그가 북한을 추종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작가는 북한을 동경하지도 않고 마르크스 주의가 왜 말이 안 되는 것인지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그의 소개로 다시 한번 더 상기할 수 있었다.

작가의 말대로 마르크스 주의는 결과론적 이라서 망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알맹이, 즉 실천법은 모두 빠뜨리고 ~~ 이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책임감 없는 이론을 그렸다. 가장 힘들고 책임감이 높게 요구되는 실행에 관한 이론이 빠져있었고 결과만 내세웠기에 장미빛일테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에 동경을 느낀 것으로 생각한다. 당연히 역대 이 기조를 내세웠던 국가들은 현실에 맞닥뜨려 고스란히 다 망해버렸다. 마르크스주의의 사회를 이룩하는데 실패했고 독재주의로 변절하여 결과적으로는 극소수의 집권층만 배불리 먹고 사는 자본주의의 못된 점만 다 가져온 사실상 악성 자본주의나 다름없는 형편없는 '집단'을 이루었다.
마르크스가 내세우는 국가가 이루어지려면 성장을 이루지 않고도 그 현상 유지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때가 된다면 누가 마르크스처럼 제시하지 않아도 자연히 그 삶을 우리는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정도에 언제쯤 이를 수 있을까

가계부를 통해 산출해 낸 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한달 평균 지출은 270여만원이었다. 여기에는 저축이나 특별한 경우의 지출은 제외되어 있다. 내게 고스란히 달에 270만원 정도가 주어진다면 나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은 할 필요 없이 내가 추구하고 싶은 일만을 오롯이 매진하며 살아갈 수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 정도의 생활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연에 최소한 270만원 * 12개월 * 5150만명 = 대략 1700조원의 재화가 절로 발생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뚝딱 나와야 하는 양이 최소한 그만큼이다. 그리고 이는 해를 거듭하고 계속 나와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 2021년도 명목 국내총생산은 2057조원 정도였고 일인당으로 나누면 4천만원이 조금 넘는다. 서비스업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까지 다 태워서 집계한 금액이 저만큼이다. 세상에는 의식주 너머로 지출을 요구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무조건 의식주의 비용보다는 크다.
금액만을 놓고 판단하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 갑자기 휙휙 바뀌지 않고 점진적으로 순서를 이어서 발전한다는 걸 감안하면 과거의 그 사람들이 꿈꾸던 그러한 사회는 내 생애 안에 절대로 오지 못 할 것이다. 또한 경쟁을 통한 미래 발전이라는 속성도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경제적 자유가 찾아온 상황에서 나태해지지 않고 삶의 원동력을 꺼뜨리지 않는 삶이 어떨지 나는 상상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날이 찾아오더라도 그들이 꿈꾸던 형태의 삶을 모든 생명체가 영위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정치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현대사회의 필수 요소중 하나인 에너지 자원을 풍부하게 지녔음에도 대다수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국가에서 상당기간 지내오면서도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정치 체계의 발전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과제이다.

대부분의 현대사회 국가들이 받아들인 민주주의는 작가가 언급한 대로 인간이 발명해 낸 오류가 가장 적은 최선의 정치방식이다. 작가가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현재의 방식에서 조금 더 형태를 발전함으로써 오류를 더 줄일 수 있는 방식에는 어떤게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고 소개받은 원문을 통해 직접 판단내려보고 싶은 내용들도 많이 소개받았다. 적기에 유익한 소개를 받을 수 있었다.

책갈피 —---

*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사회계약을 국가의 기원으로 보는 이론을 세웠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이다. 그는 국가의 합법적 폭력에 무제한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국가가 없는 상태에 놓은 곳을 참고할 수 있다. 소말리아의 상황은 국가 없이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와 같이 경쟁하는 자연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홉스의 이론에 힘을 실어주기에 충분한 증거가 된다.

* 이념형 보수 - 국가주의 : 냉전시대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메카시즘 광풍의 이면에도 이 이론이 작용하고 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 셋 중 한 사람은 국가주의 국가론을 확고하게 지지 한다. 이런 유권자들은 치안과 국방을 유일한 또는 적어도 다른 모든 가치나 목표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국가 목표로 간주한다.

*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인간사회에서 누구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라고 말한다.
자유론에서는 국가는 선을 행하려 하기보다 악을 저지르지 않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밀은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의 영역이 있다고 보았다.

* 로크가 시민정부론에서 펼친 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 헌법의 기본 원리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현하지 못하도록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원칙이다.

* 애덤 스미스는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해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이끈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연간수입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러나 그가 의지했던 '보이지 않는 손'은 사실상 파산한 지 오래다. 경험적 파산은 1930년대 세계대공황 / 이론적 파산을 선고한 인물은 1994년 뒤늦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였다.

* 장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칸트에게 깊이 영향을 미친 저서라고 한다.

* 마르크스는 국가를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의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다. 현대의 국가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이것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마르크스의 대답이었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오로지 노동만이 새로운 가치를 가치를 창조한다.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사회는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였다.
내부에 적대적 계급관계나 계급투쟁이 존재하지 않으므로이 사회에는 운동과 변화의 동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투쟁의 역사가 종결됨으로써 결국 역사 그 자체가 종결된다.

* 플라톤은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맹자는 덕이 있는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플라톤은 국가의 목적은 정의실현이라고 생각하며 텔로스(정의) 를 실현하려면 국가의 주권을 철학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철학자는 단순히 철학을 탐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정의인지 아는 사람이다. 플라톤의 철학자는 겸허하게 진리를 찾는 구도자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거만한 진리의 소유자이다. 그는 영원한 천국의 형상이나 이데아를 보고 그것과 교류할 수 있다. 지혜로나 능력으로나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는 신과 같다. 신은 아니더라도 신성한 존재이다. 전지전능자에 가깝다. 그는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라 철인왕이다. 결국 플라톤이 요구한 것은 학식의 지배 또는 현자의 지배였던 것이다.

* 맹자가 말하는 덕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측은지심, 나와 타인의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 사랑과 정을 다른 사람에게 적절히 표현하는 사양지심, 그리고 그런 마음을 때와 장소에 따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시비지심이다.
이 주장은 덕이 없는 왕은 왕이 아니며 그런 왕을 덕이 있는 자가 처단해도 된다는 말이 된다.

* 트라시마코스 :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며 법은 큰 고기만 빠져나가는 촘촘한 그물이다.

* 악을 최소화하는 방법 - 민주주의 : 정말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인간이 발명한 가장 부작용이 적은 정치제도라는 점을 알고 주권자로서 참여하여 그것을 발전시켜나가는 일이다.

* 피히테는 언어야 말로 민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믿었다. 살아있는 민족어를 말한다.
피히테에게 애국심은 외부의 힘에 맞서 자기를 주장하기 위한 민족의 단결을 의미한다. 그런데 피히테의 세계에는 민족만 존재할 뿐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 톨스토이는 애국심이 인위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유해한 감정이라고 확신했다. 애국심은 자기 국민만을 사랑하는 감정이다. 자기 마음의 평정과 재산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면서 적의 침략과 학살에서 국민을 보호한다는 신조이다.

* 르낭에게 애국심은 어느 민족 또는 국가에 귀속되어 함께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는 자신의 의지에 대한 사랑이다. 피히테는 독일인이었고 르낭은 유럽인이었으며 톨스토이는 지구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서는 애국이라는 단어는 국가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상징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진보주의자들은 이 단어를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않으려는경향이 있다. 이 경향은 오히려 애국주의에 잘못된 이미지만 굳힐 뿐이다. 굳이 기피할 필요가 없다.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함께 귀속되어 훌륭한 삶을 영위하고 공동의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정당과 정치인은 국민들 속에서 이 의지를 복돋울 책무가 있다.

*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한계급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하위 소득계층 유권자들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베블런은 그 둘이 약탈하고 당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생활환경 변화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면서도 학습하고 사유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에서 주로 가장 뚜렷한 진보주의 성향이 형성되고 표출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진보주의는 새로운 사유습성을 창조하여 지배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운동이다. 진보는 본능을 거슬러 간다. 그래서 쉽게 단결하지 못하며 작은 오류만으로도 쉽게 무너진다. 한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어렵다.

* 개인에게는 이타성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반면 국가에게는 정의가 최고의 도덕적 이상이다. 이것이 니버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실현해야 할 정의란 무엇인가. 또한 국가는 직접 행동하지 않는다. 정부가,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행동한다. 그들이 정의를 판단하고 결정하기에 그들은 여기에 필요한 것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전지전능한 신만 알 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신이 없다. 어쩔수 없이 사람이 대신해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의 한계는 여기였다. 철인왕이라도 하더라도 신을 대행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
국가가 정의하는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헌법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 우리의 헌법에서 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것들에는 자유, 복지, 평등, 안전, 평화, 환경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