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시 관람기

탄생 100주년 기념 : 박래현, 삼중통역자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0/10/22

1920년에 탄생한 우향 박래현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진행중이다.

현대에 어울리는 한국화를 창작하겠다는 목표로 서양의 현대화 기법을 가져다가 한국화로 풀어내는 많은 시도를 한 인물이다. 추상화류의 현대미술 하면 대부분 외국 그림을 떠올리기 쉬운데, 많은 한국 화가들이 현대미술 장르로 많은 작품을 이뤄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여기에는 박래현 선생, 이쾌대 작가, 김환기 작가, 그리고 요즘 단색화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홍종현 작가, 김우방 작가 등등 굉장히 많았다.

우향 선생은 색의 배합에 굉장히 민감했다고 한다. 또한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했다. 그의 작품에는 그래서 1940년대 ~ 70년대에 보일 법한 토속적인 물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내 머릿속 공식에는 현대미술 = 신선한 기법과 낯선 사물(외국에서 사용되는 물건들) 이 성립되어 있었는데 그림 속 요소들이 너무 친근해서 신기했다.
그리고 특히 색체 조합이 굉장히 편안하다.

내 기준에서는 우향의 작품은 크게 면 중심의 작품과 선 중심의 작품 두 가지로 구분된다. 뭉개진 색을 통해 면을 채운 작품과, 선을 그림으로서 생기는 좌우의 면을 만들어내어 표현한 작품이 있다. 전자는 '작품'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구도로 작업된 주황색 얼룩과 아교가 물에 퍼져나가는 특이하고 고유한 무늬를 담은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고, 후자는 인물의 치마자락 등을 그릴 적에 구겨진 면을 직접 그리지 않고 텅 빈 공간에 운율있는 검은 선으로 표현된 작품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다. 전자는 유일무이한 면이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후자는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창의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

전시에는 그 외에도 김기창 화백과 박래현 화백에 대한 잡지 내용, 연혁 등이 소개되어있는데, 과연 예술가 부부답게 그들이 남겨둔 기록들에서도 선망할 만한 뜻과 문체가 느껴졌다.

그 외에 부부가 합작했다는 작품, 친목 모임에서 지인들과 친분을 나타내기 위해 각자가 함께 그린 그림 등에서도 간접적으로 친분과 화합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멋지다는 느낌을 받았다.

궁궐을 밤에 가본 것은 항상 덕수궁이 유일하다. 흙길 바스슥 소리와 함께 창호지 너머로 은은히 퍼져 오는 불빛, 담장 너머의 빌딩 조명, 간판 불빛, 가느다란 상현 초등달 등 모든게 너무 멋진 밤에 진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