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15
남서울미술관이 가까워서 퇴근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주변을 수없이 다녔음에도 몰랐었는데 가까운 곳에 있는 미술관을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겨울인지라 도착하니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고 미술관 앞 뜰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전시정보를 모르고 갔더라면 전시 시간이 끝난 것으로 오해할 만큼 건물 자체가 어두웠습니다. 건물 유리창 안으로 빛이 보이고 사람 머리통이 지나다니길래 들어가보았습니다. 오래된 건물답게 끄으윽 문 여는 소리부터 무언가 기분 좋게 들렸구요.
본래 벨기에 영사관으로 쓰이기 위해 회현동에 지어졌는데 재개발로 인해 80년도에 이곳으로 이전해왔다고 합니다. 상설 전시관에는 이러한 건물의 연혁이 담겨있습니다. 예전 모습도, 이전하던 시기에 작업하던 모습들, 건물 샵도면 등이 빼곡히 담겨있습니다.
모던 로즈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대중적이지만 내막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점에서 장미와 이 미술관 건물이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층 왼편 1관 전시실에서는 건축부재의 3d 모델링, 단면도 등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완성된 건물에서는 인지하기 어려운 건축부재의 세세한 모습을 조명하려는 의도인 듯합니다.
2층 오른편 전시실에서는 목재 건축부재들이 배치되어있습니다. 건축 부재들이 뜬금없이 관련없는 장소에 덩그러니 놓은 부조화를 통해 본래의 장소에서 이탈한 건축물이 새로운 장소와 충돌하며 발생하는 이질감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관람하면서 이따금 창문 바깥으로 근처 술집과 떠들썩한 분위기가 보였는데 그 이질감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2층의 깊숙한 전시실에서는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인류가 극소수만 살아남아 AI가 지구의 주인으로 활동하면서 인류의 멸종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변의 애매하게 생긴 상들은 미술품인지 아닌지 굉장히 애매한 외형을 택하고 있습니다. 미술의 정의, 미술과 제도의 관계를 풍자하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전시품 뿐 만 아니라 건물 자체로도 감상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계단장식, 높은 층고, 창문틀, 끅끅 소리내며 밟히는 나무바닥 등 좀처럼 볼 수 없는 건물 양식이기에 모두 인상깊었습니다.
이제까지 예술품 감상은 그 작품의 표현 방식이 내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작가가 남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독하는 방식으로 감상해왔지만 이번 전시전은 거꾸로 작품이 품은 의미를 미리 안내받고, 그 의도를 표현하는 방식에 집중하여 곱씹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설치미술, 영상 미술을 낮게 평가해왔는데 어떤 면에서 의미가 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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