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18
친작, 그리고 진품에 대한 논란은 한 번쯤 깊이 생각해봄 직한 주제인 것 같아요. 이번 기회를 통해 양측의 주장을 찾아보고 제 입장도 정리해보았습니다.
책을 소개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미처 책에 담기지 못한 부연 설명을 조금 더 얻은 것 이외에는 강연이라고 내용적으로 크게 독서와 차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미학을 깊게 공부하신 분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고, 또 그 분이 제가 생각하는 이 시대 지식인 중 한 명이었으며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그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에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지요 :)
이런 탓에 후감을 정리하려면 독서를 마무리 지어야 했고 반대편 사람들이 써둔 글을 찾아보고 싶은 욕심도 생겨 종합적으로 결론 내리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2016년 5월, 다른 작가를 시켜 그린 그림을 자신의 이름으로 팔아 이익을 챙겼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된 조영남씨에 대한 판결 결과가 2018년 8월 2심에서 무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조영남씨는 미술계의 관행을 따랐을 뿐이라고 대작은 인정하지만 무죄임을 주장했구요.
2심 판결문에는..
‘문제가 된 해당 미술작품은 조씨의 고유한 아이디어이고, 대작화가는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보조일 뿐 고유한 화풍, 기법을 그림에 부여하지 않았음.’
‘구매자에게 작가가 직접 그렸는지 여부를 반드시 고지해야 할 의무는 없음. 중요한 정보라고 볼 수 없음. 대작이라는 게 알려졌을 경우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명백하지 않음.’
등을 담고 있습니다.
추가 기소된 다른 사건에서도 19년 2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검찰에서 항소하여 현재 공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진중권씨는 진품 여부를 가려내는 데 있어서 친작 여부를 잣대로 내세우는 것은 현대미술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라며 조영남씨가 관행이었다고 변한 부분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책에 소개된 미술사적 연혁에 따르면 특정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는 친작의 개념이 중시되던 시기가 굉장히 적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진작품, 팝아트 등 현대미술에서는 작가가 작품에 불어넣는 노력이 물리적인 것에서 개념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미술협회 등 미술계에서는 관행이지도 않을뿐더러 작가가 직접 그리지 않은 미술품은 본인 작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논문과 학술지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내용에는 공통적으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자의 작품' 또는 '미술을 책으로 배운 사람의 주장'이라는 표현이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조영남, 진중권씨가 그들에게 안 좋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서 느껴졌습니다.
강연에서 들은 것과, 독서한 내용과, 반대편의 사설을 읽어보고서 이리저리 생각해본 결론으로는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편들기보다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필연적으로 주장이 나뉠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무죄로 사건이 마무리되었지만 판결 결과가 조영남씨에게 주는 의미는 법적 면책 외에는 큰 의미가 없어보입니다.
양 측도 이번 사건이 과연 법적 잣대를 통해 심판받아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입니다.
다만 감상자, 작가, 구매자 그리고 일반인 등 모두에게 본인 위주의 시선에서 벗어난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데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감상자의 입장에서 물질적 결과물보다는 작가가 담으려고 했다는 개념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지만, 작가와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번 사건이 다르게 다가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반대편의 글을 보며 느꼈습니다. 본인들이 무던한 노력으로 단계를 쌓아온 뒤 활동하는 영역에 외부인이 다른 명성을 활용해서 활동하려는 모습은 좋게 보일 수 없지요. 구매자 입장에서도 별 다른 설명 없이 대작을 받았다면 기분이 나쁠 수 있을 겁니다.
예술품이든, 사람이든 어떤 것이라도 판단을 위해서는 여러 방향으로돌아보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 상기와 여러 미술사적 지식 습득을 이번 강연과 독서를 통해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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