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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열하일기 - 박지원

20/03/03

 

본가에 법고창신이라는 글씨가 언제인가부터 걸려있었다. 온고지신이 계승에 무게가 실렸다면, 법고창신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비중이 몰려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의미에 호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접하게 된 박지원 선생의 저서인지라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진 것 같다. 학창시절에 언젠가 접해보았겠지만 전문은 이번에 처음으로 읽었다.

 1780년 정조 4년에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축하 사절단에 속했던 박지원 선생이 청을 방문하며 남긴 기록으로 압록강 넘기 전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견문이 박지원 선생의 감상과 섞여있다. 
비슷한 책으로 고려도경을 읽은 적이 있다. 서긍이라는 송나라 사신이 고려에 사절로 한달여간 머무르며 보았던 천년 전의 고서였는데 굉장히 객관적인 일기 였던 것에 반해 이번 책은 그 책보다도 관찰 대상에 대한 기술이 상세하고, 감상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견문록을 쓰는 방식에서 나와 공통적인 면이 많이 느껴져서 반가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신문물을 접한 후 왜? 어떻게? 개선점은? 등의 공대생 감성 위주의 기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사대주의적 시선, 옛 기자조선, 고구려 등에 대한 이야기, 중국의 문물 중에서 우리나라가 참고하여야 할 점 등이 주로 등장한다. 
천재지변 등의 사정이 있던 날을 제외하면 기록상 거의 매일 70리 정도씩 이동했다고 나와있는데 그 와중에 꼼꼼히 남긴 기록이라니,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인생 중에서 다양한 종류의(성격, 가치관적 측면에서) 사람들을 제일 많이 접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동시대에 존재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이와 정 반대로 나와 성향과 가치관이 상당부분 일치하지만 시점을 달리하는 사람의 기록에서 무언가 많이 배운 느낌이어서 신기한 경험이었다.

 실학자로서 조국의 발전을 위해 어떤 것들이 적용 가능한지 면밀히 바라보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다음은 책을 통해 얻은 일부 지식들이다.

 고려의 마자수는 말갈의 백산(백두산)에서 나오는데 빛이 마치 오리의 머리처럼 푸르므로 압록강이라고 불렀다.

 패강 서쪽과 압록강 동쪽에는 예전에 고구려가 도읍한 일이 있던 국내성이 있다. 명나라때 진강부가 되었다가 청나라때 함락당하고 거의 다 죽임당했다. 그 이후로 고을 사람들 자체가 없어져 버린 땅처럼 남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글 배우는 과정이 글 외기(장구)와 뜻 파악(강의)하는 것 두 길이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부터 음과 뜻을 배우는 것과 달리 처음 배우는 사람은 입으로 단순히 음만 외우고(장구) 그 이후에 스승을 구해 뜻을 배우는(강의) 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설령 죽을 때까지 강의를 하지 못했더라도 입으로 익힌 장구가 바로 그들이 매일 사용하는 표준어이기 때문에, 세계 여러나라 말 가운데서 중국말이 가장 쉽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고 적혀 있었다. 문정아 중국어를 할 게 아니라 이 장구 자료를 빨리 찾아보아야 겠다.

 봉황성이라는 중국 지명이 있다. 고구려 옛말에 큰 새를 안시라고 했는데 이 지역이 바로 안시성이다. 나중에 안시성이 중국식으로 봉황성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 안시성주 양만춘이 당태종의 눈을 쏘아 맞히자 태종이 성 아래에 군사를 집합시켜 시위하고 양만춘에게 비단 100필을 하사하여 그가 제 임금을 위하여 성을 굳게 지키는 것을 가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당시 중국은 바퀴 간격의 기준 등이 상세히 정해지는 등 수레의 규격이 표준화되어있고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덕에 물류가 원활했는데 이 덕분에 부유한 나라일 수 있었다고 작가는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우리나라는 수레 제작 기술이 좋지 않아 널리 사용되지도 않고 이 덕에 정어리 등의 해물은 서울에서는 굉장히 값비싸게 거래되었지만 바닷가 마을에서는 거름으로 사용되는 등 지역간 교류가 원활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벽돌등 규격화를 통한 기술의 보편화에 대하여 많은 고찰이 적혀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