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9
동곡미술관으로부터 조선 백자에 관한 특별전이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마침 광주에 있었어서 일요일 오전 잠시 미술관을 방문했다.
마침 최근에 중국 남경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자기의 본고장다운 다양한 자기들을 보고 온 터였다. 비교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연초에 다녀온 파리의 기메동양박물관에서 본 도자기들도 떠올랐다.
일요일 오후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보문고로 향했다. 미술관은 여느 때처럼 한산했다. 덕분에 여유로운 템포로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동곡미술관을 맨 처음 방문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우리를 유심히 보시던 학예사께서 재킷으로 갈아입고 오시더니 하나하나 친절하게 소개해주시던 베풂의 여운이 지금까지도 굉장히 길게 이어지고 있다.
뿐 만 아니라 매번 상설전시에 담긴 민족 역사에 대한 애착, 보전하고자 하는 열망, 세심한 설명 등에서 많은 배울 점을 느끼고 있다.
내 취향과 습성의 근원에는 부모님, 조부모님, 고향, 지역 그리고 민족관으로까지 닿는다. 클래식을 좋아하고 피자를 좋아하는 또 다른 취향들은 먼저 말한 습성을 기반으로 나중에 조성된 후천적 취향일 것이다.
국가관을 지우고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세계의 수많은 인류 유산을 감상하더라도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곳은 아무래도 우리 겨레의 유물들일 것이다.
고향 곳곳에 마련된 우리 과거의 족적을 소개하는 곳에서 내 속성들에 대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나 - 현재의 내가 함께 교류할 수 있다.
최근에 이러한 나와의 대화를 주선해 주는 주요한 장소는 아무래도 여건상 동곡미술관이 유일하다. 그래서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이 가치를 계승하고 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는 정영현 이사장님, 김대환 관장님의 인사말을 감사하게 읽고 전시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처음 마주한 유물은 연적이었다. 앵무새 모양이었고 1차로 물을 잔에 따라낸 뒤에 그걸 벼루에 붓는 식으로 사용하게 되어있었다.
잔의 물을 벼루에 부을 적에 몸통 안에 물도 따라 나와서 흐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구멍 두 개 중 하나를 손으로 막으면 몸통 내부의 물은 압력차로 새지 않으므로 편히 사용할 수 있을 듯싶었다.
만듦새나 정교함보다도 실제 사용하던 유물이라는 점에서 좀 더 친근하게 바라볼 수 있고 역사적으로 조선시대에도 앵무새가 외부로부터 수입되어 고급 애완동물로 사랑받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명기라는 종류의 자기를 소개받았다. 역시 정교한 만듦새보다는 이러한 유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집트의 미라 유물 전시를 보면 우샤브티라는 것이 항상 있다. 사람 모양의 토기인데 왕이 저승으로 가서도 직접 노동을 하지 않고 이를 대신할 노예를 데려간다는 뜻으로 함께 부장 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노동 마다 이들을 전담하는 수많은 우샤브티들이 있다. 이러한 비슷한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소개에 따르면 명기는 보통 자기, 토기, 목기 등이 있는데 보통 목기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 삭아버리기에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것들은 거의 나오지 않고 대신 자기나 토기 형태의 명기들이 출토된다고 한다.
삼국시대 - 고려대에 성행한 순장 풍습을 없애기 위해 대안으로 삼게 된 것이 이러한 명기의 시초라고 한다. 전시되어 있는 명기는 바닥의 모래도 채 제거되지 않은 채 사용되었는데 이를 미루어 급히 필요하여 제작되자마자 바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17세기경 경기도 관요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보는 유물을 보면서 당대 생활을 가늠할 때 꼭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대다수는 당대의 일상생활용품이 아닌 부장용품이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유물이 남아있을 정도로 신경 써서 부장 할 정도의 매장 자라면 권세와 부가 상당했을 것이고 그러므로 부장 할 때 물건은 특별히 주문해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유물을 당대의 일상생활용품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물 중 실제 사용하던 것과 제례요 부장용품을 구분하여 소개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둘을 가늠해 보기가 편했다.
중국의 청화백자를 보면 시퍼런 문양의 패턴기 가득 담겨있는데 이 코발트는 주로 중동지방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짙은 푸른색의 문양을 선호했지만 중국에서 나는 코발트 염료는 중동의 그것만큼 쨍한 푸른빛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기를 수출하기 위해 염료만큼은 해당 지역에서 수입해서 사용해야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역시 마찬가지로 푸른 염료가 마땅한 게 없어서 중국을 통해 수입했다고 하는데 이 값이 같은 무게의 금의 배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가 재정 상황과 당대 생산된 자기의 코발트 염료 사용 정도가 상당히 관계있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왜란과 호란으로 재정이 피폐해진 당대의 자기에서는 수입 염료를 사용한 자기 대신 철화백자나 국산 염료를 활용한 자기가 많이 보인다고 한다.
백자 청화동채 양각 사군자무늬 각병은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에 있던 조선 왕실관요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표면이 온통 갈색빛을 띠고 있는데 이는 기물의 몸통에 동화채, 철화채, 청화채를 하여 붉은, 밤, 파란빛의 도자기처럼 보이게 하는 기법을 당대에 시도하면서 나온 작품이다.
동화채는 이 중에서도 가장 희귀하다고 한다. 이 유물은 각져있으며 각 8면에 병풍처럼 사군자무늬를 가지고 있다. 넓은 면적이 균일하게 색을 갖기가 굉장히 어려운 기법인데 이렇게 표면이 균일한 색을 갖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고 한다. 백자는 이렇게 후기에 이르러 다양한 기법을 통해 점점 발전하고 있었지만 국운이 기울어감에 따라 오히려 흩어져서 결국 단종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전시품 내내 장군이라는 형태의 처음 보는 병을 자주 만났다. 보통의 병과는 달리 몸통 중간에 주둥이가 달린 형태의 자기였다. 데굴데굴 굴러갈 법도 하지만 주둥이를 한쪽으로 고여둘 수 있어서 따로 구르지 않도록 하는 형태는 보통 설치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고려대에는 보이지 않는 조선대에만 존재하는 형태의 자기이다. 이 이유로 장군을 유교관과 연관된 물건으로 추측한다고 설명에는 나와있었다. 임란 이후에는 나무나 옹기, 도기 등으로만 만든 장군이 보인다고 한다.
이 설명 덕분에 옹기, 도기, 자기의 차이가 궁금해서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았다.
먼저 도기는 질그릇이라고 하며 도토, 즉 진흙으로 만든 자기이다. 도기는 소성시 1200도를 넘어서면 무너지게 되어 1000도 전후로 굽는다고 한다. 1000도 이하에서 굽는 도기는 물러서 연질도기라고 하고 1000도 이상에서 굽는 도기는 경질도기라고 하고 단단하다고 한다.
도기 중에서 유약을 발라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독 형태의 도기를 옹기라고 한다.
자기는 자토로 만든 그릇이며 자토는 돌가루가 주성분이라고 한다. 자토로는 대표적으로 고령토가 있다. 이는 중국의 고령산에서 나오기 때문에 산의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자토는 돌가루의 유기질을 녹여서 굳혀야 하므로 12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내야 한다. 사기는 자기와 같은 말이라고 한다.
도기는 진흙을 통해 만들면 되므로 비교적 세계 곳곳에서 제작되었으나 자기는 자토를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동아시아 이외의 지역에서는 굉장히 늦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령토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굉장히 편중된 지역에서만 나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이 내구성 좋은 자기를 얻고자 무던히 노력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중국에서만 수입하던 것이 진흙에 소뼈 분말을 함께 섞어서 구우면 자기와 같은 품질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차츰 서양도 자기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다. 영국의 유명한 자기브랜드 본차이나의 본은 소뼈를 뜻하고, 차이나는 자기의 고유명사라고 한다.
나는 점묘화를 좋아한다. 가까이선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한 걸음 뒤로 갈 때마다 어떤 모습의 일부로 들어가서 전체가 어떤 한 주제를 표현하는 형태가 마치 사회를 투영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양성, 팀워크 등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고 나는 느낀다. 그래서 나는 카미유 피사로나 조르쥬 쇠라가 좋다.
최근 다녀왔던 국현미의 다양한 전시에서는 김환기 작가나 우향 박래현 선생의 그림을 자주 접했는데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점들에서 묘한 매력을 느껴왔다. 이번 전시에서 보았던 다양한 그릇들에서 보였던 문양을 보고 이러한 무늬의 근원을 찾은 것 같아 반가웠다. 특별한 무늬를 나타내지 않지만 단정하고 균일한 모습에서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시골동네의 돌담벼락, 한옥의 띠살창 등에서 자주 본 문양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편병, 완, 장군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들을 소개받았다. 장군이나 편병 등은 이번에 처음 본 종류였다. 당대에 어떤 종류가 쓰였는지, 그리고 그중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백자는 조선대에 성행한 자기 형태이다. 자기가 전체적인 공통요소였지만 이를 통해 조선 사회의 풍습과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주제와 담는 내용을 이렇게 활용하다니 참 기획이 참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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