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는 범주에 어떤 것을 담아야 하는가
한 동안 한참을 이것만 고민한 적이 있다.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나 다움이었다.
나는 '미'에 나 다운, 또는 나와의 공통점이라는 정의를 담는다.
그 다음으로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미'를 확실하게 정의하기 위함이었다.
타인의 피조물들을 감상하면서 그 중 나의 시선이 오래 닿는 것들을 추려 여기에 왜 시선이 오래 머무는 지 나름의 추론을 사색하여 수집해왔다. 지금 이렇게 후기를 남기는 것도 결국은 나 다움을 쫓고 쫓아 아름다움을 반복하여 더욱 더 상세하고 명쾌하게 정의하려는 행위이다.
나 다움은 국적의 영향을 짙게 받는다. 외국 문물이 경계 없이 드나드는 시대이고 외국 생활도 숱하게 했지만 나 같은 경우 외부와 짙은 교류 이후에는 오히려 조국과 더 가까워지는 경험이 항상 이어졌다. 바깥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면 그간 당연히 여기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음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에 더해 외부에서 더욱 더 나를 굳게 다지고 싶면서 나를 알고 싶은 마음이 커져 내게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전통적 요소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을 살펴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우즈베키스탄에서 1년을 막 살았을 무렵이었고 전국의 고찰을 여행하고 싶은 생각도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할 때였다.
나는 사실 한옥을 선호하지 않는다. 겨울에는 너무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더운 데다가 손도 많이 가고 공간 활용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고향집에서 경험한 까닭이다.
하지만 고찰에서 만나는 수려한 처마선과 기둥의 굵은 나이테들에는 본능적으로 눈길이 간다.
특히 마치 산과 한 몸인 듯 배경과 조회스러원 산사의 모습을 나는 좋아한다. 그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산 안에 담겨있는 듯한 안정감을 느낀다.
거기에 더해 치밀하게 짜 맞춘 듯한 내부 천장 구조에서 나는 매력을 느낀다. 오래된 목조건물을 방문하면 내 관심사는 온통 천장 구조물이다. 언젠가 나중에 미니어처를 직접 만들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생각만으로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부 구조를 좀 더 상세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팔로우해둔 문화재청 계정을 통해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라는 곳을 소개받았다.
https://www.instagram.com/p/Cvbq_Cgy1-G/?igshid=MzRlODBiNWFlZA==
전국의 전통건축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그 동안 수장고에 보관해두었던 전국 각지 문화재의 수습부재를 상설전시관에 모아서 전시하기 시작했다. 올해 8월 1일부터 개방하고 있다.
다만 평일에만 개방하기에 시간을 내서 방문해야 한다.
마침 평일을 길게 쉬고 있는 상황이라서 리스트에 이곳을 담아두었다가 아침 일찍 다녀왔다.
이름이 아직도 읽어볼 수록 입에서 겉돈다. 출발 당일까지도 파주 언저리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검색을 안 해보았다. 자꾸 이름을 잊었다.
검색해보니 헤이리마을 초입에 바로 있는 곳이었다. 비가 꽤 오는 흐린 날 금요일이었다.
건물은 새단장을 해서 굉장히 깔끔하다. 무엇보다 내부에 방문객이 굉장히 드물어서 여유롭게 관람을 즐길 수 있다. 주차장이 굉장히 넓게 있는데 입구에서 수장고 상설 전시를 보려고 왔다고 말씀드리니 차단기를 바로 열어주셨다.
입구에는 방문객 통계를 작성하기 위한 용도로 인원만 파악하는 키오스크가 있다. 입장료는 없다.
입구 한켠에는 주심포 양식과 익공 양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모형과 조립키트가 마련되어 있다.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둔 것 같지만 목조부재의 구성이 궁금했기에 앉아서 열심히 조립해보았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서 주심포 양식과 다포 양식은 알고 있었다.
건물 외벽과 나란한 도리와 공간을 가로지르는 대들보가 수직으로 짜여 위로 지붕을 쌓고 이 구조를 기둥이 받치는데 이 기동과 도리-보의 지붕 구조물을 연결하는 부재가 공포이다.
북촌 등에서 볼 수 있는 한옥에는 공포라는 부재가 없다. 대부분 궁궐이나 고찰, 서원 등의 건물에서만 볼 수 있다.
기둥과 도리-보 구조물 사이를 공포를 통해 띄우면 층고를 높일 수 있고 건물 키가 전체적으로 커져서 웅장해보이게 할 수 있으며 장식을 통해서 건물을 화려하게 만들 수 있다.
층고를 높일 목적이라면 이렇게 복잡하게 하지 않고 기둥 자체를 길게 할 수도 있겠지만 기둥은 단일 부재로 길쭉한 자재는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설령 많은 재원을 들여서 긴 기둥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비율때문에 허우대만 길쭉하고 휑한 모습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하자만 일반 건축물과 시각적으로 차이를 둬서 돋보이게 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조선시대 일반인 집 칸 수에 제한이 있었던 것처럼 아마도 공포는 법으로 일반인들 집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주심포양식은 기둥 위로만 공포가 놓이는 반면 다포양식은 기둥이 아닌 곳에도 배치되어 지붕의 하중을 분산하여 받친다. 익공양식도 주심포 양식과 같이 기둥 위에서만 상부 구조물을 지지하는데 훨씬 단순하고 요소들 크기가 작다. 둘의 차이는 아마 건물 규모에 있지 않을까 싶다.
두 양식 모두 이런저런 부재들이 굉장히 많은데 결국은 상부 구조물의 하중을 기둥으로 몰아 내리기 전에 최대한 안정적으로 분산시켜서 내리는 데 목적이 있는 듯하다. 보나 도리를 직접 만나는 최상부 부재는 지지점이 굉장히 넓고 그 밑으로 놓이는 부재는 지지점을 점점 좁혀서 결국 기둥 하나로 하중이 합쳐지는 식으로 역삼각형 모양으로 구조가 짜여져 있다.
조립키트를 한참동안 요모조모 뜯어보고서 알게 되었다.
바로 옆에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주심포양식 실제 비율 레플리카가 있었다. 부재가 벌써 갈라져서 위태해보였지만 구조를 가늠해보기 좋았다. 실제 건물은 가려진 부분도 많거니와 건물 내부에서 대놓고 내부를 관찰하는 것이 경우에 맞지 않다고 느껴서 자유롭게 뜯어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려대의 건물 대부분은 맞배지붕인 경우가 많다. 내가 최근에 보았던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무위사 극락보전 그리고 무량수전(팔작지붕이긴 하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었는데 도리가 외벽선을 넘어서 외부로 한 줄 더 나와있다는 점이었다. 맞배지붕의 구조적 특성상 하중 지탱 보강이 필요해서 도리가 최하단에 한줄 더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
도리와 서까래를 연결할 때에도 못을 쓰지 않고 짜 맞추는 식으로 하는건지 궁금해서 상부를 보고 싶었는데 키가 작아서 볼 수 없었다.
본 전시실을 들어가기에 앞서서 로비에 진열된 건물 모형을 한참동안 살펴보았다. 이 전에 방문했던 건물들이 전부 있었고 가보지 못한 건물도 많았다. 직접 보았을 때에는 다 볼 수 없었던 지붕 및 건물 구조가 다 드러나 있어서 내부를 관찰하기가 되게 좋았다. 각 건물의 단면도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좀체 소개받기 어려운 부분인데 자세한 설명에 정말 황송했다.
경복궁 근정전 주간포의 살미 실물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본 전시관 내부에는 실제 유지보수 후 수습한 기존 부재들을 그대로 전시해두고 있었다. 해당 부재가 어느 건물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어떤 이유로 교체되었는지 소개되어 있었고 부재의 현재 상세 측량 자료도 소개되어 있었다.
내력과 정확한 용도를 소개받고 바라봐서인지 보통같았으면 그냥 유물처럼 생각되어 쉬 지나갔겠지만 오래된 과거의 생명체인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았던 어느 선대의 손길이 거쳐 있는 목재로 느껴졌다. 가깝게 느껴졌다.
해인사의 기와도 전시되어 있었다. 기와의 경우에는 제작 연도를 통상 적지 않기에 언제 올려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추정 연대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다음 전시관에는 숭례문 수습 부재와 복구공사 제작품 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장식기와들을 가깝게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천산갑, 손행자, 대당사부 등 각각의 이름은 알지 못했는데 덕분에 이름과 모습을 자세히 눈에 담아볼 수 있었다.
용마루 양 끝에 올리는 취두의 수습부재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크게가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컸다. 원래 일반 건물은 용두를 올리는데 궁궐 등의 일부 높은 격식이 필요한 건물의 경우 용두는 추녀마루로(어처구니가 자리잡는 곳) 자리를 옮기고 대신 그 자리에 취두를 놓는다고 한다. 독수리 머리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눈매와 모습이 용의 느낌에 더 가까웠다. 위엄과 동시에 친숙함이 느껴졌다.
두번째 전시관은 숭례문 수습 목재로 복원한 숭례문의 지붕 일부가 전시되어 있었다.
사찰 건물이나 일반 가정집 한옥이었다면 흙 등으로 메꿔졌을 부분도 궁궐의 건물은 모두가 나무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채운데다가 장식적 요소들로 빈틈없이 차 있다. 올해 초 보고 온 베르사유에서 느꼈던 그 뽁짝함을 느꼈다. 구조적으로도 기와 하부가 민 밑 나무껍질 - 2층의 진흙면 그리고 회반죽 위에 기와가 얹히는 층을 알 수도 있었다.
화마로 인해 목재가 탄화되고 표면이 둥글게 말려있는 모습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반면에 이 사고로 복원이 진행되면서 고증 차원에서 요소 하나하나가 세상의 주목을 받고 다시 전통건축물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되다니 역설적이다.
안내에 따르면 숭례문 고증 복원을 위해서 부재 195점의 연륜연대 분석을 실시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1396년 창건 당시부터 내려오는 부재, 중간중간 세종, 성종, 고종때 교체된 부재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시관 내 전시품 모두가 실물인 데다가 보호막 없이 모두 관람객과 바로 마주하게 되어있어서 소중했다.
직접 방문하기 전에는 평일만 관람할 수 있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는데 관람하고 나니 보존을 위해서라도 평일만 운영하는 것이 보존에 도움되겠다 싶었다. 관람하는 내내 우리 둘만 관람하고 있었음에도 직원분들이 수시로 드나드신게 의문스러웠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전시품 보호 차원이었던 것 같다. 충분히 그럴 필요가 있다.
그간 직접 만나봤던 건물들을 다른 방법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복제품이거나 일부였지만 교류는 직접 만났을 때보다도 더욱 값졌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정도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왜 등의 상세하고 무형이며 근원적인 부분을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레플리카를 직접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으므로 조만간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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