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2
견해에 공감되는 분들의 글을 읽을 때에는 꼭 그 분들이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그 분들의 견해가 굳어지기까지 도움을 많이 받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기에 원문을 더 가깝게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예로 피천득씨의 인연에서는 자녀분과 왕래하는 편지에서 화이트헤드, 러셀 등 저명한 철학자들이 언급되어 있길래 따로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그들의 서적 원문을 접해서 실용주의에 대한 지식을 자세히 얻을 수 있었다.
김승옥씨의 이름은 우리나라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씨의 인터뷰에서 소개받았다. 1900년 중반대에 활동한 소설가라고 하는데 소개받기 전까지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선생님께서는 짐승의 몸으로 신을 갈망하는 존재인 인간의 특질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적는 것이 일본 문학의 특징이라면서 한국 작가로는 김승옥 작가가 이런 식으로 적는다고 소개했다.
지금이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이기에 예술은 숭고해야한다는 고루한 사고를 벗어던지고 틀에 얽메이지 않은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들이 등장하기 전에 그 문을 활짝 연 최초로 이런 것들을 시도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문학작품은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라는 추천사로 책이 시작했다. 추천사와도 잘 어울린다.
줄거리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술에 취해 시덥잖은 이야기를 계속 꾸역꾸역 이어나간다.
한 명은 대학원생이고 다른 한 명은 공무원인데 깊은 사색 이야기를 좋아하는 대학원생이 '꿈틀거리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물으면 상대방은 '네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들숨 날숨으로 움직이는 아랫배를 보기 위해 일부러 출근길의 버스에 괜히 올라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술냄새 나는 대화가 이어진다.
장소를 옮기기로 하고 그들이 계산하려고 일어서자 주변의 한 남자가 갑자기 접근하더니 자신이 술값을 계속 내겠다고 동석하게 해 달라고 애원한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중국집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하는데 그 와중에 옆에서 어떤 여성의 불그레한 신음소리가 이어져오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식사와 소리에만 집중한다.
식사를 하던 중 마지막으로 합류한 사나이가 별안간 자신의 아내가 오늘 죽었다고 고백한다. 그동안 행복하게 잘 지내오다가 별안간 급사했다면서 슬픔을 넘어서는 모습을 내보인다. 그리고 이어서 병원에 아내의 시신을 팔았다고 말한다. 생계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면서 동시에 지금쯤 해부되어가고 있을 지도 모르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안절부절한다. 죄책감으로 인한 듯했다. 그 마음을 없애버리려고 그들은 그 돈을 다 써버리기로 하고는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에 돈을 쓴다. 넥타이도 사고 귤도 사먹고 하다가 불이 난 가게를 발견하고는 그 장면을 주저앉아서 구경한다. 세번째 남자는 그 불구덩이를 보면서 아내의 환영을 본다. 그리고 남은 돈다발을 불구덩이에 던져버린다.
돈을 다 쓴 그들은 무섭다면서 밤새 같이 있어달라는 남자의 청에 못 이겨 여관에 각자 들어가 잠든다. 그 남자는 끝까지 방을 함께 쓰자고 애원한다.
다음날 아침 확인해보니 그 남자는 죽어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몰래 도망나와 이별한다.
후감
카뮈의 작품 같이 무슨 은유가 있는게 아니라 소설 내용만을 감상하면 되는 간단한 단편소설이다.
친구와 만날 때마다 유치하게 까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장면에서 친근감을 느껴졌다.
모두가 얼큰하게 취한 탓에 정신없이 전개되는 갈팡질팡한 이야기들, 그 와중에 뜬금없는 것들에 주목하는 주인공의 모습 등에서 동질감도 느껴졌다. 아내를 잃은 자의 슬픔과 공포에서는 안쓰러움도 느꼈다.
미국의 소설이 사건을 위주로 진행된다면 우라나라 소설이나 드라마는 인물간 감정 교류에 집중하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느끼는데, 역시 한국작품 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드는 와중에 솔직하고 마음 속 이야기들이 끄찝어져 나와 있어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보통의 꾸밈이 많은 소설이면 읽으면서 텍스트 모두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요한 키워드를 쫓아가며 읽는데 이번 소설은 자연스레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주르륵 읽을 수 있었다. 솔직함과 몰입감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
60년대 서울의 일상도 많이 비추겠구나 싶어서 등장하는 단어와 삶의 모습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군참새라는 안주가 등장하길래 군소 같은 무슨 해산물인줄 알고 찾아보았는데 구운-참새였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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