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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브



21/11/08

CIS권역이라고 불리는 문화권이 있다.
현대 러시아를 필두로 우즈벡, 까작, 투르크메니스탄 등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으나 지금은 독립한, 하지만 지금까지도 국제표준보다는 고스트라는 그들만의 규격을 따르는 국가들이다.
그들의 문화는 서구권과는 사뭇 다르다. 꼬부랑 키릴 문자 속에는 비록 꼬리꼬리하고 세련되지도 않았지만 특유의 매력이 있다.
실제로 마음이 맞는 작품이나 작가들을 숱하게 만났다. 차이코프스키, 체홉, 무소르스키, 아시모프,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등등..
일하다가 사귀게 된 러시아 친구와도 이질적인 배경 너머로 찾아낸 공통 관심사를 통해 한국 친구만큼의 깊은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이념적으로 적진이 되어버린 까닭에 그들의 문화에는 항상 빨간색 음영이 편견으로 함께한다. 그걸 걷기까지가 굉장히 힘들지 일단 한번 걷어내고 난다면 생소하지만 친숙한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문화권 자체에 대한 친숙함으로 책을 접해볼 시도를 한 것이지 로리타라는 소설 자체로서는 전혀 읽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어느날 문득 라흐마니노프와 호로비츠, 스트라빈스키가 왜 미국인인지 궁금해졌고, 검색을 통해 볼셰비키 혁명과 연관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사연을 지닌 예술인 중 나보코브라는 이름을 발견하여 롤리타로 관심이 이어졌다.

오늘날 롤리타라는 단어는 마법사 나라의 볼트모트라는 단어 급으로 부도덕한 성향을 일컫는 금기어와 같은 단어가 되었다.
소설 자체도 자국 내에서 숱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고 작가는 제명을 당하기도, 작품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공포영화 보듯이 눈을 반쯤 가리고 보는 식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실상 소설의 내용은 우리가 오늘날 뉴스로 접하는 윤리적으로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여러 충격적 사건들을 모두 품어낼 만큼의 품을 가지진 않았다. (물론 험버트 험버트는 미친 사람이다.)

소설 줄거리

험버트 험버트는 과연 어떻게 해서 소아성애자가 되었을까가 가장 궁금했다. 소설을 통해 확인해보니 단순했고, 예상 외로 어느정도 인과가 이해되었다.
첫사랑이 문제였다.

어린 시절의 험버트 험버트는 일찍이 이성관계를 통해 인상 깊은 경험을 이뤘고 이를 토대로 이성관이 고정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의 이성관은 과거에 그대로 머무르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상형을 이리저리 물색하다가 당시 자신이 하숙하던 집의 딸아이 로리타를 만난다. 하지만 어떻게 해보진 못하던 와중 로리타는 기숙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실망한 그는 하숙집을 옮기려고 한다. 하지만 뜬금없이 로리타의 어머니가 그에게 고백을 한다. 역함을 느끼고 고백편지를 찢어버린 뒤 변기통에 던지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가 만약 의붓아버지가 된다면 로리타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게 아닌가. 그 생각 하나로 그는 롤리타의 어머니와 결혼한다. 그리고 아내가 단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로리타에게 손을 뻗치기 시작해 그로부터 수년간 전국을 떠돌며 부녀관계와 이성관계가 뒤섞인 굉장히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 관계가 한참 유지되다가 어느날 롤리타는 기회를 틈타 달아나고 3년여 뒤 어느 다른 남자와 정착한 뒤 편지를 보내 험버트에게 금전적 지원을 요청하면서 그들은 재회한다. 그 자리에서 그를 이성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말에 상처를 입은 그는 질투심에 어떤 남자를 살해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소아성애자적 경향이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었는지 현실적인 루트가 소개되어있다.
님펫이니 험버트 험버트니 하는 용어들을 최근의 소설에서 몇 번 접한 적이 있었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줄거리 외에 내용에서 얻은 것은 더 없다. 다만 자극적인 소재 덕분에 중간에 책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된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이외에 주목해본 내용

작가의 말을 통해 확인하길 사실 작가는 이 작품을 일찍이 러시아에서 먼저 구상했다고 한다. 다만 줄거리를 지인들에게 소개한 뒤 혹평을 받은 탓에 완성도 하지 않고 묻어버렸다가 나중에 미국으로 건너온 뒤 다시 끄집어 내 결론을 뒤바꾸고 일부 요소를 추가로 덧대어 소설로 완성지었다고 한다.
소재를 담은 씨앗을 일찍이 탄생만 시켜두고 품어두었다가 그 동안에 자신이 새로 경험한 배경을 접목시켜 성공(?)적으로 작품을 이뤄낸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소설의 배경과 소재는 모두 미국적이다. 집필을 미국에서 지내던 시기에 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적 본과 미국의 영향이 어떻게 버무려졌는지 느껴볼 기대를 해보았는데 아무래도 나를 과대평가한 듯하다. 러시아의 냄새도 맡지 못했다. 다만 지명을 지우고 이름들을 지워도 그냥 미국이 느껴졌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미국인임을 정확히 인식했다. (궁금해서 그가 플레이보이 잡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찾아보았는데 그곳에서도 이는 명확히 명시되어있었다.)

어떤 범죄자가 과거의 일화를 말했고 이를 누군가가 정리해서 기록하는 식으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기록을 정리한 사람의 이름은 나보코프가 아니었다. 덕분에 표지가 잘못 씌워진 고장난 책인줄 처음에 오해하기도 했다. 의도는 모르겠지만 신선하다.


직업병인지 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떤 개념에 대해 원문을 접해보려는 시도를 꼭 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궁금증을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