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9

무질량의 질점이 무수히 모여 선분을 이루듯,
이 책을 통해 얻은 경험이 나 라는 선분을 이루는 기틀이 되길 바라며
20/09/12 흙서점에서
0. 동기
나는 책을 사면 날짜를 기록해둔다. 이 책은 2020년 9월 12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날 나는 귀가하면서 집 앞 자주 가던 중고서점에 들렀다.
보통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혹시 여기에 있는지 싶어서 살 것을 정해서 방문을 하곤 했는데 그날은 별 용건이 없었다.
러셀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실용주의를 내게 소개해준 감사한 저자여서 제목을 보았는데 철학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사실 철학이라는 단어를 먼저 보고 난 뒤 저자를 알아본 것인지 반대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내 관심사가 제목에 담겨있고 반가운 저자가 적은 책이기에 일단 집어들었다.
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보긴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책갈피만 남기고 덮기는 싫어서 후감을 미루다가 6년이나 지나버렸다.
마침 고립된 환경에 다시 놓이게 되어서 책만 진득하게 볼 수 있는 여력이 되었고 드디어 내게 의미 있는 결론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정의에 관심이 많았나보다. 비슷한 제목의 책을 여러 권 산 기록이 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사르트르) / 영혼에 관하여(플라톤) 라는 책을 비슷한 시기에 샀는데 마땅히 후감이 없다.
두 권도 이 고립지에 가져온 만큼 시간이 허락할 때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겠다. 서재에 쌓인 재고를 가볍기 비울 필요가 있다.
1. 내가 생각하는 철학과 나의 철학
나는 내가 일관적이었으면 한다. 그 어떤 외란에도 영향받지 않고 내 방향으로 계속 시선을 뿌리는 자세를 갖고 싶다.
거꾸로 말해서 나는 내가 일관적이지 못하다고 느낀다. 나는 외란에 의해 자주 흔들리고 항적이 자꾸 튄다. 너무 가볍다.
아침마다 내가 정한 규칙을 읽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나의 모습을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덕분에 내가 현재 가진 것 중 유지하고 싶은 건 더 굳어지고 개선하고 싶은 것은 바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하나. 나는 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생존한다.
나는 나의 삶의 방식을 정돈하여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후손이 이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둘. 나는 주도적이어야 한다.
나는 그간의 궤적과 현재 위치를 명확히 인지하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셋.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끝이 어딘지를 알아야 내가 가진 시간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때에 맞는 일을 하자. 이 순간보다 더 좋은 상태인 막연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넷. 본능을 따르는 것은 내 의지에 반하는 것이다. 본능을 경계하고 이성과 자유의지를 추구하자.
다섯. 양의 기울기를 유지하도록 힘쓰자.
여섯. 외부에 꾸준히 시선을 던지자. 동시에 나의 과거기록과 계속 접촉하자.
일곱. 시작은 가벼운 계획과 홀연히 시작할 수 있는 자세 그리고 초기의 영점조절 세 가지면 충분하다.
여덟. 대화의 목적을 정확히 인식하자. 생각하지 않고 말을 뱉지 말자. 그럴거면 침묵을 유지하자.
아홉. 근거를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근거를 항상 내비칠 필요는 없다. 나만 알고 있으면 된다.
열. 나는 오류가 많다. 제출하기 전 최소 세 번의 검토를 통해 2개 이상의 오류를 찾아내야 한다.
열 하나. 미루지 말자. 그리고 마무리시 요약정리하자.
이 책 제목을 눈으로 읽기 전까지 나는 철학이라는 단어를 바닥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따르는 행동규범(이웃을 사랑하는 것, 살생을 하지 않는 것 등의 종교 규범의 올바른 사례들)을 은연중에 철학의 정의로 생각했다.
내게 철학 / 철학있는 사람 / 나의 철칙 / 일관된 사람은 동의어였다.
2. 철학의 사전적 정의
철학은 밝다 철 자에 학문 학자를 사용하여 지혜를 밝히고 사리를 빠르게 분별하는 학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philosophy는 사랑하다라는 뜻의 philos와 지혜라는 뜻의 sophia의 합성어이다.
애초에 철학이라는 단어는 19세기에 일본의 한 학자가 서양의 philosophy를 번역한 단어이므로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단어이다.
서점에서 철학을 분류해둔 것을 보면 동양철학이 있다.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는 19세기에 만들어졌지만 그렇다고 그 전에는 동양에 철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여 바르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수련하는 학문이 당연히 있었다.
도학도 성리학도 실학도 그리고 불교 교리도 그 관점을 다루는 학문으로 나는 생각한다.
3. 저자가 말하는 철학
내가 이해한 러셀이 말하는 철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무조건 있다. 내가 아는 지식들은 불완전하다. 이를 인정하고 새로운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
내가 가진 지식에만 기운 편견 가득한 삶보다는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답변을 찾으려는 자세를 갖추어 궁극적으로 발전을 얻자.
확실성을 줄이고 가능성을 넓히자.
아래는 책에서 철학에 대해 언급하는 주요 내용
--------------------------------------------------------------------------------------------------------------
이 세상에는 합리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지식이 과연 있는가?
철학이란이와 같은 궁극적인 질문에 대답하려는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가장 성가신 문제로 현상과 실재, 요컨대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과, 사물의 실재는 무엇인가 하는 구분이다.
철학의 가치는 대부분 그 불확실성에서 찾아야 한다. 철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은 상식이나 나이 및 국적에 의한 습관적 신념,
그리고 사려 깊은 이성의 도움이나 동의 없이 마음속에 싹튼 확신에서 생긴 편견에 사로잡혀 평생을 보낸다.
이러한 사람이 판단한 세계는 분명하고 유한하며 확정적이다.
확실한 대답이 가능한 문제는 이미 과학으로 옮겨져있으며 당장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는 것만이 남아
철학이라고 불리는 잔재를 이루고 있다.
본능적인 사람은 그 생활이 그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의 범주에 한정되기 마련이다.
가족이나 친구는 그 안에 포함되겠지만, 외부 세계는 그것이 본능적 욕구를 돕거나 방해하지 않는 한 무시하고 만다.
이러한 생활이 광적이고 한정된 것인 데 반해 철학적 생활은 안정되고 자유롭다.
철학은 그 문제에 명확한 대답을 얻기 위하여 연구되는 학문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명확한 대답은 진리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철학의 연구는 문제 그 자체를 위하여 전개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가능한 것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확대하고 우리의 지적 상상력을 풍요롭게 하며 사변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드는 독단적 확신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
4. 결론
총각 시절,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외딴 곳으로 여행을 가서 숙소에 틀어박혀 그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기록하는 습관 덕에 당시에는 후감이나 고찰만 연간 수백건을 적었기에 기록들을 모두 다시 읽는데만도 한참 걸렸다.
계획과 결과를 비추어서 실행률을 점검하고, 해둔 것을 기반으로 새 해의 계획을 올리는 굉장히 중요한 일정이었다.
당시에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하다 만 것들이 소멸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린 숙제처럼 해치우는 것도 있었다.
아마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으로 기억한다.
분명히 읽은 기억은 있는데 남겨둔 후감이 없기에 이상하다 생각하고 조용히 시간을 들여 독서를 했다.
그리고 후감을 열심히 적은 뒤 책을 들어서 짐에 도로 넣으려는 순간 책 속에서 연습장 몇이 쏟아져 나왔다.
내 기억에 없던 과거의 내가 적어두었던 후감이었다.
헛웃음을 지으면서 둘을 비교해보았는데 잠시 뒤 엄청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것을 방금까지 내가 적은 것과 비교해보니 관심가진 내용, 결론, 말투, 심지어 후감으로 적은 글씨의 양까지
거의 베낀 것처럼 일치했다는 점이다. 무의식의 영역에 나 가 존재하긴 하나보다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둘은 5년의 시차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느꼈던 기분이 지금 다시금 들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랑 내가 평소에 따르는 나의 규칙에서 공통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철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초창기 맨 처음 기준점을 잡고 읽기 시작한 게 러셀과 그의 동료들의 저서였다.
피천득의 인연에서 딸과 주고받는 편지가 소개되는 구절이 있었고 거기에 적힌 이름들에 관심을 쏟는 것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 소개된 것은 아니고 다만 부녀지간에 그런 추천과 화답을 받는 모습이 소중해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러셀, 오토 바이닝거, 윌리엄 제임스, 화이트헤드의 책을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중 화이트헤드의 이름을 언급하기에는 나는 그의 책을 사기만 했지 이해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영혼이란 특별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개인이 과거에 겪은 경험이 우연히 겹치는 순간 발현하는 현상과도 같다.
당시 그들의 의견을 접하면서 특히 이 경험주의적 견해에 굉장히 공감했다.
나는 남들의 평가가 이미 확고한 것이라 하더라도 깡그리 무시하고 내가 직접 경험해보는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우연히 옛 스승을 만나 가르침대로 살고 있느지를 점검받은 느낌이다.
마침 현실에 지쳐 스르르 게으러지던 참이었는데 다시금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책을 막 샀던 시점에는 마땅히 흥미를 얻지 못하고 내려두었던 게 순리가 아니었나 싶다.
적절한 시점에 잘 가지고 있다가 내게 딱 맞는 용도대로 도움을 받았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Why nation fails - Daron Acemoglu (0) | 2026.01.01 |
|---|---|
| 장자 - 장자 (0) | 2025.01.05 |
| 왜 글은 쓴다고 해가지고 - 백가흠 (0) | 2024.11.09 |
|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발터 벤야민 (0) | 2024.11.05 |
| 사회계약론 - 장 자크 루소 (0) | 2024.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