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30
비행기에서 식사하던 중 영화 한 편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목록을 내리다가 whiplash가 눈에 띄어 선택했다. 2014년 신입사원일 때 심야영화로 본 기억이 있다. 당시 자취방이 영화관에서 천천히 걸어도 3분이면 닿던 시절이라서 영화 시작시간에서 5분 정도 늦게 출발해 먹을걸 사들고 관에 입장하면 딱 광고가 끝나고 바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호시절이었다. 약간 서늘한 여름날의 밤이었다.
간단히 볼 요량으로 들어가서는 2시간 뒤에 전율이 가득해져서 나왔다. 주인공이 결국 원하던 경지에 이르르는 장면에서 대리만족을 느껴서였을까 아니면 영화 내내 보이던 간접 조명과 나무벽 등에서 느껴지는 온기 때문이었을까 둘 다 였을까. 당시에 이렇게 찐하게 감상했음에도 후감을 따로 남겨두지 못해서 아쉬웠던 차였다. 전에 조금 남겨둔 기록에 더해서 이번에 느낀걸 함께 정리했다.
드럼을 사랑하는 한 학생이 음악학교에 진학해서 한 교수를 만나 성장하는 내용이다. 다만 교수의 가르치는 방식이 과거 우리나라의 그것과 굉장히 비슷해서 혹독하고 성과 위주이며 인권이 다소 무시된다.
영화 내내 노력, 폭력, 배신, 들통, 몰입, 성공 등이 연달아 나오지만 나는 그 중에서 세대간 특징의 대비 / 카메라 구도의 처리에 집중했다.
- 등장인물간의 대비 (아버지와 아들)
이 둘을 직접 가까이 둠으로써 영화는 두 인물이 대변하는 타입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있는 현대사회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세대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친구중에서도 주인공 아버지 같은 사람도 자주 보고 또 거꾸로 아버지 세대의 사람에서 네이먼 같은 사람들도 자주 보기에 세대차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기성세대를 대표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사회의 큰 흐름에 몸을 맡긴다. 새로운 것은 시도하지 않고 예전 것들을 반복한다. 주변 의식을 많이 한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 내내 행동으로 대사로 나타난다.
(대사) that’s life / I’m saying you would have this perspective later.
(행동) 영화관에서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자신을 쳤는데 오히려 자신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모습 등
아들은 반면 열정이 있다.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높게 가치를 두는 것에만 맹목적으로 헌신한다. 될 때까지 하고 지치지 않는다.
이 가치에 대해서만큼은 자극에 굉장히 빠르게 반응하며 자신감을 이곳에서만 얻는다.
드럼으로 인정을 받던 날 그는 자신감을 풀충전했다. 평소에 관심있는 여자가 있음에도 다른 말을 걸 용기조차 내지 못했는데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날 그는 제일먼저 그녀에게 달려가 데이트를 신청한다.
무모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바쳐서 얻고 싶은 것을 일찌감치 찾고 끝끝내 그 꼭대기에 도달하는 삶 / 자연스럽게 주변과 비슷하게 살아가면서 시점마다 남들이 하는 대로의 절차를 거치며 그 무리에 속해있음을 만족해하며 사는 삶.
당연시 개개인마다 각자에게 알맞는 삶의 형태가 있겠지만 아마도 아마도 영화의 원작자는 네이먼 앤드류의 삶이 더 마음에 들었나보다.
네이먼에 영화 마지막에 악에 받쳐 자신의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의 아버지 표정은 아들에 대한 격려도 만류도 아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을 맞이하는 혼란과 염려로 나는 느꼈다. 빌리 엘리엇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빌리가 무용의 마지막을 장식할 때 보이는 아버지의 희열감 가득한 얼굴과 장면이 되게 비슷하긴 했다. 아마 오마주일 것 같다.
- 영상 처리의 관점에서 주목한 점
영화의 내용 외에도 장면의 구성과 화면의 색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짙은 갈색의 나무장식재로 가득한 실내와 간접 조명 특유의 누런 빛은 보는 내내 따뜻했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드럼의 박자와 맞게 떨어졌는데 덕분에 시각적으로 리듬이 느껴졌다. 박자 단위로 화면이 칼같이 전환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인물의 시선에 맞춰 카메라 구도가 맞춰진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교수의 지휘하는 손짓 사이로 네이먼의 긴장한 표정이 들어오는 모습은 네이먼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잘 표현했다.
그 외에도 네이먼이 처음으로 밴드에 합류하던 날 한참을 기다린 끝에 연습실에 단원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장면에서 바닥에 기어다니는 조그마한 파리와 저벅저벅 걸어다니는 발걸음들의 대비로 쫄아있는 네이먼의 처지와 얼마나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고 긴장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도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 줄거리상 인물로서 의미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은(a person, not 'THE' person) 눈을 보여주지 않고 하관만 보여주는 식으로 인물을 구분한 것도 인상깊었다.
세세한 곳 하나하나 의미가 가득 담겨있는게 느껴져서 만족스럽게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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