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4
오래 전 옐로우스톤을 가게 된 배경도 같다.
2012라는 영화를 보고서 막연한 관심이 생겼다가 마침 서부를 갈 일이 생기자 일정에 추가해서 갑작스레 다녀왔다.
세밀하게 일정을 짜지 않았던 까닭에 가보고 싶었던 곳 일부를 빼먹긴 했지만 소중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조수석에 꽂아두고 하염없이 찍었던 동영상을 가끔씩 틀어두고 기억을 되살려본다.
분명한 동기와 치밀한 계획으로 임하는 여행만큼 가벼운 동기로 시작해서 다녀오는 여행도 좋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언젠가 덴버를 가보아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때가 옐로우스톤으로 여행을 갈 때였다.
솔트레이크로 향하는 비행기 창 너머로 높은 산맥이 보였고 휑한 곳에 공항이 있었는데 그게 콜로라도 덴버 공항이었다.

두 번째로 덴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2021년 LIFE 사진전에서 보았던 한 사진을 만났을 때였다.
사진에는 비스듬하게 솟은 거대한 단층을 병풍삼아 건설한 Red Rock Amphitheatre 라는 공연장을 배경으로 스트라빈스키 부자가 함께 담겨있었다.
유명한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집안은 3대가 모두 음악가이다.
둘째 아들은 유명한 피아니스트, 그리고 이고르의 아버지도 굉장히 유명한 오페라 극작가였다고 한다.
아들 스트라빈스키는 무대 리허설 중이고, 아버지 스트라빈스키는 그 높고 거대한 청중석 맨 꼭대기에 멀찌감치 앉아
아들의 연주를 바라보고 있다.
개미같이 보일 정도로 끝이 아득한 맨 꼭대기의 아버지.
그로부터 흘러나와 밑에서 무대에 닿는 거대한 암석층 그리고 맨 밑에서 피아노를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중인 아들.
구도에서 피아니스트 스트라빈스키가 느꼈을 헤리티지와 함께 선대를 이어서 예술혼을 태우는 상황 속 중압감 등
긍정과 부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이 부자의 배경 설명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청중석 옆으로 비스듬하게 솟은채 무게를 아래로 흘려보내는 암반은
위압감과 무게를 뿜어내고 있었고
작고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찍힌 맨 꼭대기의 하얀 점은 세상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절대적 권위를 보여주는 듯했다.
거기에 더해 암반의 방향은 피아노 리드의 방향과 암면의 방향도 일치했다.
음악이라고 적힌 단어 표시가 바위에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하나 둘 덴버를 가야 겠다는 동기가 하나 둘 쌓이는 동안 최근에 친구로부터 덴버의 이야기를 한번 더 듣게 되었다.
추천해주고 싶은 햄버거 가게가 있는데 당시 체류하던 곳 근처에 있다면 꼭 들러보라며 직접 가까운 곳을 찾아주었다.
그 햄버거는 인앤아웃이었고 다만 검색해보니 가장 가까운 지점이 1300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덴버였다.
농담으로 넘기려다 생각해보니 보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레드락 앰피시어터, 로키산맥, 인앤아웃, 콜로라도 등등..

비행기표를 출발 1주일 전에 구매했다. 구매하자마자 표값은 가파르게 뛰더니 나중에는 3배가 넘어가고 있었다.
친구가 나의 계획을 듣고 동행하려 했으나 표값에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 잠만 잘 싸구려 숙소와 작은 렌터카도 예약했다.
일정은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즈음부터 슬렁슬렁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교훈을 몇 얻었다.
#교훈 1. 미국의 국립공원도 이제는 예약제이다. 휴가철에는 예약 접수 당일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서둘러야 한다.
#교훈 2. 미국의 몇몇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주말이 아니라 뜬금없이 평일이 휴관일인 경우가 꽤 있다.
이번의 US mint (조폐국)도 그러했다. 하필 딱 그날 걸리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

악명높은 미국 저가항공사를 이번에 처음 탔다.
말로만 들었던 등받이 조절 안 되는 의자, 랜덤게임 방식의 좌석 선정 등 저가항공사다운 모습이 분명했던 반면
짐 사이즈를 엄청 엄격하게 재지 않았고 비행기도 깨끗하고 쾌적했다. 적어도 내가 탄 비행기는 연착도 없었다.
다만 국내선인데도 3시간이나 걸린다는 점, 그것도 본토의 절반 정도의 거리만 가는 것인데도 이 정도라는게 놀랍다.
여행 가기로 마음먹고 초반에 차로 갈까 생각을 잠깐 했는데 편도가 25시간 걸린다고 나왔던 것이 다시금 생각났다.
3시간 동안 책도 잠시 보고 가족에게 편지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은 졸았다.
우리나라랑 지형이 정반대여서 그런지 미국에서 비행기를 탈 때면 항상 창 밖을 오래 보게 된다.
처음에는 무슨 미스터리 서클인가 싶었던 동그라미를 오랜만에 만났다.
미국말로 'center pivot irrigation system' 이라고 부르며 농작물에 물을 대기 쉽게 하려고 가운데에 축을 두고 물 호스를 동그라미 모양으로 돌리면서 물을 주는 장비라고 한다.
그리고 사진에는 담지 못했는데 중부 지방 평원에 풍력발전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공항은 덴버 중심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숙소도 한참 깊숙한 곳에 있었다.
차는 비용을 아끼려고 내일 오전부터 예약해두었기에 숙소에 가기 전에 모든걸 다 해결하고 가야 했다.
그래서 공항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를 먹는데 아저씨가 다가와서 내게 치킨 없는 샌드위치도 여기서 파냐고 물어봤다. 뭔 말인가 암구호인가 싶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으쓱했는데 점원한테 물어보는 걸 들어보니 패티가 치킨이 아닌 샌드위치가 있는지를 묻는 듯했다.
전에는 숙소에 체크인을 하는데 직원이 내게 비자가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체류허가 형태가 뭐냐는 질문인 줄 알고 아니다, 이스타로 입국했다라고 대답했다가 정색하는 표정을 마주해야 했다.
그 사람이 말한 비자는 신용카드를 뜻한 거였고 신용카드로 결제할 거냐고 물은 것이었다는 뒤에 알았다.
덴버에서 떠나는 날엔 리프트 드라이버가 내게 인사를 건네며 'You going out of town today sir?' 라며 물었는데
난 이 말의 의도를 한참 뒤에 이해했다. 외국어로 영어를 쓰는 사람들과만 이야기하다가 오랜만에 이런 말들을 들으니
어버버하는 상황이 몇 번 더 있었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머쓱하다.
# 미국에서는 분쇄육으로 만든 패티만 버거라고 부르고 나머지는 모두 샌드위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잠시 고민하다가 대중교통 대신 리프트를 타고 숙소로 가서 바로 쉬었다.
리프트 기사는 흑인이었는데 정말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숙소 앞 도로에는 도움이 필요하다며 매직으로 박스에 글씨를 써서 구걸하는
걸인이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항에서 숙소로 오는 짧은 순간동안 많은 기억을 남긴 걸 보니 오랜만에 여행이라서 들떠있었나보다.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이틀이었고 하루는 오전 일찍만 잠시 시간이 있을 뿐 차 반납 후 바로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래서 첫날은 남쪽으로 내려가서 Colorado Springs라는 곳에서 Pike's Peak / 신들의 정원을 보고
다음날은 하루종일 로키산맥국립공원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 Red Rocks Ampitheater를 방문하기로 했다.
물론 중간중간에 햄버거도 많이 먹어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관광객들이 꽤 많이 보였다. 일본인 부부도 있었다.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었다. 빵을 토스터기에 구웠는데 튀어오르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기계가 고장났는지 석탄화 된 빵을 직원이 치우고 있었다.
식사하고 숙소 가서 짐을 좀 챙겨 차를 찾으러 내려왔다. 차 찾는 동안 리프트로 조회를 몇 번 했는데 가만 보니
리프트는 동일 구간을 여러번 검색하면 스르르 가격이 올라가는 듯했다. 밀당이 통하지 않는 어플인가보다.
렌터카 가게에는 직원이 세명 정도 있었다.
내 앞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인도인 두명이 500미리짜리 물병 20개들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세명 중에 일하는 직원은 한 명 뿐이었다.
인도인들은 아이오닉 5를 받고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떠났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인도인들이 당황한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나는 전기차를 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주행거리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은 충전소간 거리가 100키로 정도씩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예약할 때 내연기관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직원은 가솔린 차는 이미 다 나가고 없다고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받은게 황송한 머스탱이었다. 갑자기 머스탱을 받았을 때는 황당함만 가득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언젠가 머스탱을 타보는 것도 내 소원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물론 다른 머스탱이긴 했지만
전기차를 타본 적이 있냐고 묻길래 그냥 타본 적 있다고 했다.
알려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시간에 그냥 내가 알아보는게 훨씬 빠를 듯했다. 일단 10시에 예약했는데 차를 받은게 11시였다.
다만 충전소 어플을 어떤 걸 쓰면 좋겠냐고 물어봐서 세 가지 어플을 추천받았다.
지역마다 충전소 배치가 잘된 어플이 조금씩 다른 듯했다. 충전소가 많은 1순위 어플은 외국인 계정으로는 다운받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electrify america라는 어플을 다운받았다.
차를 받을 때 보니 배터리 잔량이 60% 정도였고 190마일을 갈 수 있다고 되어있었다. 완충시 주행거리가 300마일인 듯했다.
내가 오늘 가기로 한 Colorado Spring는 이곳에서 편도로 80마일이 넘었고 왕복을 해야 한다는 점, Pikes Peak가 아주 높은 산
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가자마자 충전을 꼭 해야 했다.
차를 받아서 우선 생수 등을 사려고 한아름 마트를 목적지로 설정했다. 비싸지만 추억이 가득한 곳이라서 꼭 들러보고 싶었다.
전에 탔던 사람이 회생제동을 가장 강력하게 해 두었다. 엑셀을 떼면 브레이크가 거의 바로 걸렸다.
그래서 한아름마트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회생제동부터 풀어야 했다.
차는 머스탱 답게 굉장히 잘 나갔다. 다만 엑셀을 끝까지 밟으면 즉각 1%씩 배터리가 줄었다.
안정적인 만큼 차폭이 꽤 넓었다. 정말 딱 넓은 접시를 몰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에어컨은 고장나 있었다. ㅡㅡ
내 갤럭시 S22는 더위에 약한 편이었는데 구글 맵의 발열을 이기지 못해서 가끔씩 먹통이 되었다. 환장할 뻔했다.
한 번 당한 다음에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경로를 미리 머리속에 넣어둬야 했다.
# 머스탱 E Mach 차문 걸쇠는 전동식이다. 주행중에 설마 열리나 싶어서 운전하다가 살짝 눌러봤는데 문이 열렸다..
놀래서 차를 세워야 했다. 그 뒤로는 절대로 그 근처에 손을 대지 않았다.



간단하게 장을 봤다. 생수, 새우깡, 컵라면 정도를 샀다. 뭘 많이 사려다가 그러지 않았다.
여행을 출발할 때 나무젓가락을 챙긴다는걸 까먹은 덕분에 컵라면은 커피 젓는 얄쌍한 나무조각으로 먹어야 했다.
고속도로를 타는데 여기는 유독 도로폭이 좁았다.
익숙하지 않은 차라서 두리번거려야 했는데 좌우로 몇 번 출렁대었더니 차들이 나를 비켜갔다.
간신히 적응하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에어컨이 꺼지지 않았다. (에어컨이지만 사실은 뜨거운 바람만 나오는 선풍기)
이것도 간신히 껐는데 여전히 더웠다. 알고보니 핸들 열선이 켜져 있었다.
이것을 끄고도 더워서 결국 창문을 열고 주변의 속도에 맞춰 75마일로 달렸다. 귀가 떨어져 나갈 뻔했다.
가끔씩 고속도로를 창문열고 다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그분들의 사연과 어떤 심경이었는지를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에어컨이 고장난 차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정해둔 일정대로 먼저 Pikes Peak로 향했다.
콜로라도 지역은 누가 봐도 지각판이 밀려서 생긴 지형이다.
거짓말 같이 남북으로 길게 산맥이 형성되어있고 이게 또 동부 평원이 쭉 있다가 뜬금없이 올라와 있는 모양이어서
한참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덴버에 있는 동안 항상 산맥이 저 멀리 보였다.
Pikes Peak는 그 산맥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점이었다. 꼭대기에서 보이는 경치가 어떠할 지 기대를 많이 했다.
미리 Pikes Peak 홈페이지에 가서 보니 역시 사전예약이 필요한 듯 했다. 편도로 좁은 길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인 듯하다.
너무 늦게 알아본 까닭에 표가 이미 매진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신해서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표는 남아있었다.
그래서 얼른 예약했다. 만약에 차로 오르는 표가 남아있었더라도 경사로를 몇십분 올라가는 길을 전기차로 갔다가는
중간에 멈춰버리는 경우도 있을 듯했다.
다만 어디로 가서 셔틀을 타야 하는지가 제대로 안내되어있지 않았다. 한참 헤매야 했다.
내 상식으로는 공원 입구 매표소 근처에 차를 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그 근처에 차를 댈 수 있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가서 보니 셔틀버스를 타는 곳은 공원 입구로 7마일은 훌쩍 들어가서 있었다.
셔틀을 예약해두고 올라가버리는 차도 분명 있을 듯하다.
# 혹시 나중에 Pikes Peak를 가실 분들은 꼭 직접 운전하지 말고 셔틀버스를 타기를 추천한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그날의 마지막 일정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정상에서 많이 밀린다.
# Pikes Peak를 특히 혹서기에 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두터운 긴팔을 가지고 올라가야 한다.
제일 더운 날 올라갔는데도 정상에서는 찬 바람에 비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얼어죽을 뻔했다.
# 버스 탑승시간이 2시 반이었고 도착은 1시 반이었는데도 입구에서 보내주었다.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하다.


내 앞에 한 가족의 일원이 있었는데 일행이라고 아무 말 없이 그 사람 주변으로 5명 정도가 붙었다.
매너가 다들 있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곧 스쿨버스가 왔다. 스쿨버스를 타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람이 꽤 되길래 다 못타면 어쩌나 했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길 50명이 넘게 탈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버스에는 그 때 기다리던 사람이 거의 다 탔다. 대신 의자 간격이 정말 엄청 좁았다.

1시간을 올라가면서 버스 기사는 간단히 풍경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해발 4300미터라서 산소 농도가 지표에 비해 60%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올라가는 길 초입에는 최근 토네이도가 지나간 탓에 나무가 다 뜯겨나간 곳이 두 군데 있었다.
최근에 공원 정비를 막 마쳤다고 했고 실제로 넘어진 나무들은 대부분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스키 슬로프가 몇 군데 있는데 지난 수요일에 허가받은 스키어들이 실제로 스키를 탔고 그 자국이 슬로프에 남아있다고 했다.
매년 유월에는 이 길을 막고 경주를 하는데 안 그래도 기사를 통해 현대 아이오닉 5도 참여했다는 걸 본 것 같다.
중간에 1000피트 낭떠러지가 있는 곳도 지나왔는데 내 자리 반대편이라서 볼 수 없었다.
다음에 누가 셔틀을 타고 올라간다면 올라갈 때는 오른쪽에, 내려갈 때는 왼쪽에 타는 걸 추천한다.
날씨는 수시로 흐리다 맑다를 반복하다가 정상에 가까워져서는 구슬아이스크림이 한가득 하늘에서 떨어졌다.
정상에 도착했더니 굉장히 날씨가 추웠다. 긴팔을 안 입었더라면 큰일날 뻔했을 정도였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직접 차를 몰고 올라온 사람들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고 차에 갇혀 있었고 이 때문에 셔틀버스도 지연되고 있었다.
버스 타는 줄이 실외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잠시 뒤의 내 모습이 상상되어서 덜컥 겁났다.
전기차가 여기서 고립되어 배터리까지 방전되었더라면,, 나는 정말 다른 의미에서 잊을 수 없는 여행을 했을 것이다.
가운데 돌무더기가 있는 곳을 둘러보고 방문객 센터로 얼른 들어갔다.
방문객 센터는 굉장히 따뜻했다.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고 기념품 가게, 카페 등이 있었다.
음식은 먹지 않고(미리 빵을 먹고 올라왔다.) 기념품점 둘러보고 전시관 본 뒤에 돌아왔다.
설명 자료를 보니 초기 탐험대 등의 역사를 대략 소개해주었다. 초기 탐험가들이 1900년대에 이 곳을 마차를 타고 올라왔다고 한다.
그 이후로 조금씩 개발이 되었다고 한다. 기후가 혹독한지라 도로 침하가 자주 일어나서 도로 공사를 자주 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아스팔트 포장을 10여미터 단위로 끊어두었다. 안 그러면 늘어지고 줄어들면서 더 빨리 손상된다고 한다.
이 도로를 트랙 삼아 자동차 경주, 사이클 경주도 하고 요새는 마라톤도 한다고 한다.
록키산맥은 약 7천만년 전 지각 운동으로 지각이 융기하며 생긴 산악지대라고 한다. 이 때 저 밑에 있던 고대 지각이 위로 노출되었고 지금의 로키산맥지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아까 보았던 돌무더기는 약 18억년 전 형성된 암석이라고 한다.
이곳은 해발 4,300미터 정도이다. 천왕봉, 한라산 등이 1,900미터대이고 백두산이 2,700미터대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지대이다. 핸드폰 기압계로 확인해보니 600hPa 정도로 나왔다. (상압이 보통 1013.25hPa)
일반인은 어지러움을 느낄 수도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다행이 나는 그런 증상은 없었다.



내려올 때도 나는 왼쪽에 탔다. 이 자리가 훨씬 더 잘 보이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버스는 내려가는 동안 리타더라는 기구가 있으므로 브레이크가 터질 일은 없다고 했다.
아까 사람들에 가려서 못 봤던 풍경들을 실컷 보면서 내려왔다.
수평선이 보이는 평원을 한참을 보고 내려왔다.
한라산에서 내려다보는 경관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스케일이 두어배는 차이가 나 보였다.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차를 찾아서 다음 목적지인 신들의 정원으로 향했다.
출발할 때 주행가능거리가 190mi이었는데 어느새 78mi만 남아있었다.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다행이 다음 목적지까지는 계속해서 내리막이었고 회생제동 덕분에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에는 오히려 91mi로 늘었다!


신들의 정원은 붉은 바위들이 특이한 형태로 분포되어있는 공원 같은 곳이었다.
원래는 개인 사유지였는데 모두를 위해 개방했다고 한다. 개방된 곳 경계에는 멋진 개인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기암석이 잔뜩 펼쳐져 있었다. 단층이 지표에 노출되었는데 일부는 수직으로 솟아있었다.
이런 것들이 뭉탱이로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산책로가 길게 나 있었다.
이 지역은 2억7천5백만년 전 즈음부터 누적된 지층으로 구성되어있다.
17번 주차장에 먼저 차를 대고 올라갔는데 그 바로 위에 있던 곳은 정말 입이 안 다물어질 정도로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붉은 바위가 푸른 침엽수 밭이 삐죽삐죽 솟아있었고 그중 일부는 흰색을 띄고 있기도 했다. 하늘은 한 없이 푸르렀다.
넓은 바위 위로 사람들이 갈매기처럼 오밀조밀 앉아있는 곳을 산책하듯 돌면서 2억년의 세월을 느껴보았다.










이곳에서 본 붉은 갈색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한참을 즐겁게 보고 나와서 내일을 위해 충전소로 향했다.
충전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먼저 마침 근처에 있던 인앤아웃버거에 가서 햄버거를 샀다.
직원들도 친절했고 하얀 의상을 하고 있는게 인상적이었다.
메뉴는 많지 않았다. 치즈버거, 햄버거 정도만 있었다.
음료 등이 뭐가 더 있나본데 나는 그냥 감자튀김에 다이어트 콜라만 먹었다.
음식을 받아다가 충전소로 가서 충전하면서 식사를 했다. 다행이 내가 갈 때즈음에는 충전소가 여유가 있었다.
처음 충전을 해보는데 81kwh에 요금이 거의 51불이 나왔다. 깜짝 놀랐다. 왜 전기차를 안 사는지 이해가 되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미터링 유닛 고장으로 과금이 잘못 된 거였다. 리포트 보내고 1주일 지나서 환불을 받았다.
그래도 충전시간(50% 채우는데 20분 걸렸음)도 오래 걸리고 가격도 내연기관에 비해 전혀 메리트가 없다.
당분간은 전기차는 안 살듯 하다.




충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여독을 풀었다.
다음날. 늦잠을 시원하게 자버렸다.
로키산맥 국립공원은 예매를 해야 하지만 방문 전날 오후 7시에 별도 티켓을 또 판다.
하지만 전파가 안 터지는 곳에 있던 바람에 결국 예매에 실패했다.
대신 9시까지만 도착하면 timed ticket 없이도 공원에 입장 가능하다고 되어있었다.
하지만 늦잠 때문에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검색해보니 9~14시까지 입장제한이어서 14시 이후라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오후 2시까지 돌아볼 만한 곳을 찾아서 미리 가서 돌다가 2시에 맞춰서 로키산맥을 가기로 했다.
조식은 먹지 않고 어제 h mart에서샀던 육개장을 먹었다.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었더니 적당히 익어있었다.
다만 젓가락이 없어서 커피 스터를 꺼내서 사용해야 했다.
짐 챙겨서 출발. 중간에 지도를 막 뒤지다가 발견한 곳은 horsetooth라는 산이었다.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지형이 신기해보였다.
깊숙히 들어가야 나오는 곳인데 마침 바로 근처에 충전소도 있었다. 차를 몰고 출발해서 50분 정도를 달려서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나와서 20여분 15마일 정도를 더 안으로 들어갔는데 단층이 튀어나와서 이어진 지대가 펼쳐졌다.
엄청 멋있었다. 매 순간을 계속 남기고 싶어서 계속 카메라를 사용해야 했다.
예전에 배를 탈 적에 상선 정박지를 지나면 중생대 대평원에 서 있는 엄청 큰 초식공룡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는 단층의 등이 그렇게 느껴졌다. 생명체 같은 모습이었다.
어제부터 느꼈던 게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이 곳에는 굉장히 많았다.
사이클리스트가 사방천지를 누비고 있었다. 이 산 가는 길에도 자전거가 특히 더 많았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할 만한게 하나 더 생겼다.
지도로 찾았던 주차장에 도착을 했는데 주차비를 받는 곳이었다. 유료인 것 보다도 만차여서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다른 곳을 가야 하나 생각해봤는데 또 전파가 터지지 않았다.
차를 정차할 수 있는 곳도 없어서 조금 더 내려가다가 곧 공터를 만나 우선 차를 세웠다.
전파가 안 터지니 할 수 있는게 없어서 한번만 더 가보고 안되면 다른 진입로를 찾아서 차를 대자 생각했다.
다시 가보니 그 5분여 차이로 문이 열려있었다. 먼저 들어간 차를 보니 돈을 내고 있었다. 유료인 듯했다. 10불이었다.
주차장은 꽤 넓었다. 지불했다는 표지를 대쉬보드 위에 올려두고 나왔다.
민둥산 처럼 보였는데 말 농장처럼 되게 평평해서 넓게 보였다. 안내도를 보니 트레일이 아주 여럿이었다.
크게 폭포 보는 코스 / 정상 보는 코스로 나뉘어 있었는데 둘 다 하고 생각하고 등산을 시작했다.
안내판에 지도가 있길래 하나 챙겨서 올라갔다. 안내판 앞에는 rattle snake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실제로 풀벌레 소리인지 스르르르 하는 소리가 정말 많이 들렸다. 벌레 소리인지 진짜 뱀소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트레일 근처를 지나는데 내가 가까이 왔다며 나를 위헙하는 진짜 뱀소리는 한 번 들었다.
소름이 확 끼치는 소리였다.
등산객끼리 마찰이 있었는지 어떤 아주머니가 레인저를 불러서 레인저 한 명이 와 있었다.
아주머니가 마찰을 일으킨 사람의 인상착의를 레인저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초반은 야트막한 동네 뒷동산 같이 시작했다. 초반 언덕이 넓어서 산꼭대기가 어디인지 모른채 등산을 시작했다.
이렇게 2시간 반짜리 11키로 등산이 시작되었다.
날이 좋아서 경치가 정말 좋았다. 형광 초록과 짙은 푸른하늘 덕분에 행복했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안 보이던 게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산의 동편 언덕을 통해 정상으로 올라갔기에 먼저 덴버 동편의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처에는 단층대 두개가 간격을 두고 솟아있었는데 그 사이 틈에 물이 고여서 호수가 있었다.
지도로 볼 때는 작은 저수지인 줄 알았는데 위에서 보니 실제로는 웅장했다.
유원지 같은 곳인지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놀고 있었다.
정상에 가까워지니 동편은 거의 180도가 다 수평선으로 뻗어있었다. 마음이 벅찰 정도였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모습이 상상이 될 정도로 넓게 보였다. 이렇게 끝없는 평원을 넓게 본 적이 있나 싶다.지구를 한 눈에 보고 싶은데 우주여행할 돈이 없다면 말이빨산에 오르면 된다. 정말 이곳은 나중에 가족과 같이 다시 오고 싶다.
그 위로도 계속해서 봉우리가 보여서 위에서 보면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었다. 한참을 바라다보면서 올라가게 되었다.


정상의 말이빨 바위는 다소 위험했다. 안전고리 이런게 전혀 없이 낭떠러지 위에 우뚝 솟은 바위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떨어질까봐 바위 안에 깊숙히 손을 넣었다가는 방울뱀 덕분에 골로 갈 수도 있었다.방울뱀이 왜 그런 사나워보이는 색을 하고 있나 싶었는데 말이빨산 바위들 패턴이 가만 보니 걔네들 색과 똑같았다.
반대편 모습이 궁금해서 올라가보았다. 다만 무서워서 진짜 꼭대기까진 가지 않고 적당한 곳까지 올랐다.
나보다 조금 뒤쳐져서 웃통을 깐 20대로 보이는 백인 남자무리가 있었는데 무슨 깡인지 뛰어서 그 좁은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허세 가득한 소리를 막 해댔다.
개마고원을 직접 보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엄청 넓고 평평한 고원이 있었다. 산 안 쪽에 그렇게 넓은 평원이 있는건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넓은 간격을 두고 개인 주택들이 떨어져 있었다.
저 멀리 어제 갔던 Pikes Peak도 보였다. 가져온 물을 마시면서 한참을 눈에 담았다.
여기서는 또 전파가 아주 잘 터졌다. 집에 홈캠으로 가족을 보면서 풍경을 보니 위안되었다.
20분 정도 있으면서 구경하고 사진찍고 하다가 스르르 내려왔다.
같은 길로 가지 않기 위해 루트를 좀 조정해서 중간에 산악자전거도 가는 트레일로 내려왔다.
탠덤 바이크를 한 대 보았고 사이클 타는 사람도 한 명 만났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모습도 되게 멋졌다.
다만 내려올 수록 점차 시야가 좁아져서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산 건너편에는 단층 두 줄 사이로 호수가 있었는데 꼭 가보고 싶어서 가는 길을 일부러 그쪽으로 미리 설정해두었다.




내려와서 손 씻고 차를 타자마자 깊은 피로가 몰려왔다.
마음만 먹으면 로키산맥 국립공원도 갈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만큼 감동을 이미 받은 뒤여서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다음번에는 꼭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와서 함께 나누고 싶다.
햄버거를 사서 집에 와서 그대로 잠들었다.
7시 즈음에 깬 것 같다. 문득 덴버 발신으로 집에 편지를 보내서 나중에 아이가 자랐을 때 같이 읽으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서둘러서 편지를 5통 정도 필사했다. 여기서 쓰는 편지와 전에 써둔 편지들을 휘갈겼다.
우체국이 다행이 닫지 않고 있었다. 들어가니 아시아계 여직원과 백인 남자직원이 있었다. 여직원이 내게 일본에서 왔냐고 물었다.
본인이 일본계 미국인이라고 했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남자직원이 한국말로 인사해주었다.
나중에 글씨가 엉터리라고 핀잔을 받긴 했지만 나머지 네 통을 먼 훗날 같이 다시 읽을 때는 얼만큼 감동스러울지..
하고 싶었던 미션을 성공하고 돌아와서 마저 쉬었다.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체크아웃하고 나와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다.
Red Rocks Ampitheater를 가기로 한 날이다.
사실 이곳을 두 번 오려고 했는데 전날 늦잠을 잔 탓에 마지막 날 한 번만 들르게 되었다.
도착하기도 전부터 솟아오른 지층들이 계속 보였다.
아침 햇살에 붉은 벽이 뻘겋게 보이는 모습이 정말 멋진 공연장이었다.
공연이 없는 시간대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다.
산스장처럼 동네 사람들이 아침일찍 와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단체 에어로빅등을 하고 있었다.
나처럼 공연장 전경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활기가 넘쳤다.
곧 있을 공연을 위해서인지 고압수로 직원들은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예전 사진에서 본 모습과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다소 작긴 했지만 멋진 모습 하나만큼은 내가 짐작했던 감동을 훨씬 넘어섰다.
왼쪽 위에서 한 번 지긋이 보고, 왼쪽 열 맨 밑으로 내려가서 한참 바라보고, 그리고 오른쪽아래로 내려가서
한참 바라본 뒤에 다시 맨 위에, 이번에는 오른쪽 맨 윗부분에서 공연장을 감상했다.
시간에 안 쫓겼다면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떠올려서 공연장에서 듣고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공연장 너머로는 어제 보았던 모습과 비슷한 고평원과 함께 저 멀리 수풀지대와 쭉 뻗은 도로가 보였고
우측에는 멀지 않은 곳에 호수가 보였다.
시간만 있다면 몇시간이고 가만히 앉아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horsetooth에서 본 경관만큼 아름다웠다.









딱 요렇게까지 하고 마지막 인앤아웃을 산 뒤 차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돌아왔다.
계획한 것은 많지 않았지만 보고 싶은 만큼 충분히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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